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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심리: 하느님 촉진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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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심리 칼럼] 하느님 촉진제
얼마 전, 다른 교구 신부님을 만나 며칠 함께 지내면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 분이었습니다. 사제의 삶을 바라보는 마음도 그렇고, 사제와 교회 공동체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지향점도 제가 바라보고자 하는 방향을 향해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또래의 젊은(?) 신부님이셨는데 어떻게 이런 좋은 마음을 지니게 되셨을까 혼자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하다 보니 남미 어느 나라에서 10년 동안 선교사로 지낸 경험이 있으시더군요. ‘아, 그래서였구나.’ 싶었습니다.
너무나 더워서 에어컨 없이는 살기 힘든 올여름을 보내면서, 신부님은 선교지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더랍니다. 더위든 추위든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오롯이 마주해야 했던 환경 속에서, 그래서 오히려 더 하느님의 크심을 느끼고 그분을 찾고 만나게 되더라고 하시더군요.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서 누리는 물질적 풍요와 안정이 하느님을 찾는 데에 유리한 조건은 아닌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말씀에, 내심 부끄러우면서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물질적 결핍이나 환경의 불안정함이 우리의 삶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교회도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이러한 사회적 ‘악’을 물리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적절한 결핍이 있을 때 그것을 채우려는 바람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언가 아쉬운 것이 있어야 그를 채우거나 극복하는 방안을 찾기 시작하니까요. 가까이에서 찾을 수 없다면 눈을 들어 더 멀리 바라보기 마련입니다.
사회적인 삶에서도 그렇지만, 우리 내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롯이 ‘나’ 자신으로만 만족한다면 바랄 무엇이 더 있을까요? 그저 나 자신에게 만족하고, 내 안에만 머물러 있어도 충분하겠지요. 그런데 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할 때, 내 안의 어떠한 결핍을 느끼는 바로 그때에만 우리는 자신을 ‘벗어나’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나의 부족과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또 다른 무엇, 혹은 또 다른 누군가를 찾게 되지요.
이렇게 보면, 내 안에 있는 결핍이나 약함, 어두움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 때문에 자꾸 나를 부정하고 단죄하고 책망하게 되지만, 그 때문에(덕분에) 우리는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하느님을 ‘찾아야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을 찾아야 내가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니, 절로 하느님을 ‘찾고 싶은’ 마음을 얻게 되는 거죠.
나의 욕구와 약함, 결핍과 죄스러움 모두, 하느님을 찾게 하는 ‘촉진제’가 아닐까요? 부끄러워서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 덕에 하느님을 더 찾고 만나게 되니 소중히 보듬고 간직하고 싶은 또 하나의 선물 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 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2코린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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