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24-02-25.....사순 제2주일 나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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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일 (나해) 창세기 22,1-2.9ㄱ.10-13.15-18 로마 8,31ㄴ-34 마르코 9,2-10 2024. 2. 25. 주제 : 우리에게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께 사람은 하느님에 관한 내용이나, 신앙에서 선포하는 하느님에 관한 여러 가지 사정을 듣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유를 말하자면, 사람이 하는 말에는 여러 가지의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라도 하느님에 관한 내용을 좋게 듣는 사람이거나 교회가 선포하는 하느님에 관한 가르침을 좋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정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내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문제가 없다는 자유를 말하거나,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온통 책임을 묻는다고 하느님을 느낀다면 무슨 표현으로 나를 옹호하겠습니까? 하느님에 관한 생각으로 우리가 하기 쉬운 것은, 하느님이 한 번 축복을 주시겠다고 나에게 선언하셨으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냥 축복을 주시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텐데, 하느님께서는 때때로 내가 가진 생각과 삶의 자세를 확인하신다는 것이 싫다고 말할까요? 사람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생각과 마음이 변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상대방을 내가 이해한다고 할 때, 내 마음이 여러 가지로 변하더라도 그 상대방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는 일은 아니지만, 내가 변할 때면, 상대방이 가만히 있어도 내가 행동하는 바와 그 판단이 달라집니다. 이때 변화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하겠습니까? 변하는 나에게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나의 변화를 이해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아서 나에게 맞출 줄 모르는 상대방에게 있다고 하겠습니까?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매우 가까이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아브라함보다 먼저 이방인들이 살던, 가나안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미래에 있을 일을 약속하셨으며, 나이가 많았던 아브라함의 가정에 약속을 보장하시며 90살이 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로 이사악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의 마음에 꼭 드는 행동을 하셨던 하느님이, 어느 날 갑자기 열 살이 된 이사악을 당신에게 번제물로 바치라는 청천벽력(靑天霹靂, =푸르게 갠 하늘에서 치는 날벼락/ 또 뜻밖에 일어난 큰 변고나 사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과도 같은 놀라운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신 하느님이신데도, 아브라함은 불만을 말하지 않고,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들인 모습을 우리는 창세기에서 봅니다. 실제로 우리에게도 그렇게 행동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이 들이닥치면, 우리는 과연 아브라함처럼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아무런 불만도 없이 그대로 행동할까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쉽게 하는 대답이지만, 하느님의 명령에 아무런 불만이 없이 따르려면 여러 가지 조건을 말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무런 조건을 앞세우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다르게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처지를 먼저 생각한다면, 아브라함이 힘들어할 놀라운 명령을 내리신 하느님은 도대체 믿을 구석이 없는 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아무런 불만도 말하지 않은 아브라함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었겠습니까? 똑똑한(!) 우리처럼 행동하지 않은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현명한 충고를 말하겠습니까? 예수님은 특별히 사랑하셨던 3명의 제자를 데리고 타보르산으로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시면서 당신이 달라질 수 있는 놀라운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 장소에 있었던, 베드로는 엉겁결에 초막 세 채를 만들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에게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만, 준비된 마음으로 한 소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놀라운 순간을 만나면 미리 준비하지 못한 엉뚱한 일을 합니다. 베드로가 하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혼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기에 한계가 있는 행동을 했다고 이해하셨다는 뜻일까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은 정말로 사람이 실천할 수 없을 만큼 놀랍고도 기괴한 일일까요?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바꿀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는 하느님의 실수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것에 올바로 감사하며 살까요? 그렇다고 인정하고 감사한다면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간다고 하겠지만, 하느님은 사람에게 축복을 베푸시면서도 타박을 듣는 일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관한 것은 우리가 잘 알겠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만큼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 10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