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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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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와 나눔의 공동체]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 고통 속에 있는 이가 홀로 사라지지 않도록
“나 죽고 싶어.”
가까운 가족 또는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답할까? 부담스러운 주제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릴지도 모른다.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네 맘대로 파괴하는 건 죄야.” “죽을 힘으로 살아야지. 나약해지면 안돼.” “앞날이 구만리 같은데….” 이런저런 충고가 앞설 지도 모른다. 또는 그저 “힘내.”라는 위로가 전부일지도 모른다. 죽을 만큼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코로나19는 많은 이의 삶을 힘겹게 한다. 자살 상담이 78% 증가했다는 뉴스도 있다.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이루는 누군가가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일이 더 많아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살’이란, 친한 사이에서도 선뜻 꺼내기 어려운 주제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자살은 죄’라는 인식 때문에 어려움을 꺼내 이야기하지 못하고, 생각만으로도 죄책감에 홀로 괴로워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는 없지만, 혼자 죽을 수는 있습니다.”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이하 ‘센터’) 소장 차바우나 바오로 신부는 말한다. “공동체에서 고립된 이는 홀로 사라지게 됩니다.”
생명을 선택하고자
죽음을 생각할 만큼 힘든 이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위로받지 못하고 오히려 멀어지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이들 곁에 있어 주고 위로를 건네는 활동을 하는 센터를 찾았다. 천주교에서 유일한 자살 예방 전문 기관이다. 자살은 그동안 금기시된 주제였지만 “자살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자 사회의 문제라는 인식에 따라, 이를 간과하지 않고 생명을 선택 하고자 2010년 3월 설립되었다. 현재 자살 예방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 자살 예방 교육, 자살자 유가족 돌봄 등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2019년까지 캠페인 참여자는 14,135명, 교육 참여자는 3,099명, 유가족 돌봄 프로그램 참여자는 123명에 달한다. 설립 초기부터 운영한 자살 예방 상담 전화는 2019년 국가에서 운영하는 24시간 상담 전화 ‘1393’ 개통과 함께, 좀 더 신앙적인 상담을 할 수 있도록 보완하고자 서비스를 종료한 상태이다.
”가톨릭에서는 자살하면 지옥에 가나요?”, “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힘내.’라고 말한다면?”, “자살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곳이 있나요?” 센터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 ‘마음이몸이’에서 만날 수 있는 동영상 클립들이다. 여러 가지 마음의 고통을 겪는 사람, 그런 이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은 사람을 위한 글과 영상이 담겨 있다. 그동안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면서 캠페인을 진행했지만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온라인 활동에 더 힘쓰고 있다.
지난 4월부터 8월까지는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유튜브 채널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마음 치유를 위한 대담’을 4회에 걸쳐 열었고, 영상을 주제별로 짧게 편집하여 ‘마음이몸이’ 채널에 업로드하고 있다. 또한 한 달에 한 번 고민 사연을 받아 상담해 주고 위로의 노래도 들려주는 ‘마음 상처의 밤’을 유튜브 라이브로 방송하고 있다.
“제 딴에는 위로한다고 ‘힘내.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질 거야.’라고 했었는데, 반대 입장이 되어 보니 진심 어린 위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 성당을 옮겼는데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어요. 그 트라우마 때문에 성당에 가는 게 힘든 순간이 많더라고요.” “우리는 꽤 오랫동안 상대방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데 익숙해진 것 같아요. 굳이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는데….” 방송과 함께 진행되는 실시간 라이브 채팅에서는 진심 어린 대화가 오간다.
인스타그램 계정 ‘마음을 위로하는 기도’(@read_todays_prayer)를 통해 위로와 사랑이 담긴 기도문을 나누기도 하고, 마스크로 가려진 내 마음을 표현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는 의미를 담아 마스크에 스티커를 붙이는 캠페인도 펼친다. 이 아이디어는 보건복지부에서도 채택하여 ‘2020 생명 존중 실천 슬로건’을 마스크에 붙이는 ‘#마스크_스티커_인증’ 캠페인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이야기를 전하는 캠페인 담당 전안나 안나 씨의 어깨가 으쓱하다.
센터에서는 워크숍을 통해 자살 예방 강사이자 활동가를 양성하여 학교와 병원, 본당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파견한다. 취재 당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있었다. 양해를 구하고 동성고등학교 1학년 7반 교실에 따라 들어갔다. “다들 안 듣고 잘 거예요. 했던 강사 송정섭 시몬 신부의 말과 달리 대부분 교육에 열중한다. 송정섭 신부에게 강의 소감을 물었다. “요즘 아이들은 의무적으로 자살 예방 교육을 받아 주요 내용은 알고 있어요. 사실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이죠.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친구 같은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했나
“수도 생활한 지 30년이 지났는데, 소임지에서 본당 활동을 열심히 하던 가족이 갑자기 본당을 떠나거나 이사 가는 경우가 가끔 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자살 유가족이었어요. 고통을 겪고 있을 때는 수도자인 저에게도 말을 못하고, 떠난 뒤에야 연유를 알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기회가 되면 이런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자살 유가족 돌봄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홍성경 소화 수녀의 말에서 자살 유가족이 겪는 이중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자살 유가족은 제2의 자살 위기자라고 한다. 가족의 자살을 경험한 뒤 큰 충격과 슬픔에 휩싸임은 물론, 자살자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무력감, 수치감, 분노, 우울감 등 다양한 감정의 홍수를 겪는다. 이 때문에 ‘자살 생존자’(suicide survivors)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게다가 자살이라는 이유로 쉬쉬하며 충분한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공동체의 공감과 포용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자살에 영향을 끼쳤다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센터에서는 이들을 특별히 돌보고자 정기 월례 미사, 피정, 정기 모임을 개최한다. 모임에 온 유가족들은 자살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쏟아 낸다고 한다. 또한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을 만나며 서로 의지하고 연대감을 얻게 된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기도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풀이 나가는 거죠.” 홍성경 수녀는 덧붙인다.
‘자살’이라는 죄를 지은 이들을 교회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일단 1983년에 개정된 교회법전에 따르면 자살한 이에게도 공개적인 추문이 없을 때는 장례미사가 허용된다. 그러나 차바우나 신부는 “자살은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이고, 십계명의 살인에 해당하며, 공동체에도 큰 상처를 주는 중죄”임을 확실히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천국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는 온전히 하느님께서 판단하실 몫입니다. 우리의 몫은 판단이나 단죄가 아니라, 그의 구원을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일이 아닐까요? 그 사람이 그토록 큰 고통을 겪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고 책임감 또한 느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내 주변에 또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지 살피고, 그리고 남은 유가족이 충분히 애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곁에 있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같이 걸을래?
주변에 죽을 만큼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음 치유를 위한 대담’과 센터에서 제작한 ‘자살 예방 지침서’에 따르면 이렇다. 먼저 ‘자살’을 터부시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편이 좋다. 그러나 그것이 부담스럽다면 일단 “같이 걸을래?” “커피 한잔 하자.” “무슨 일 있니?” 하고 묻고 함께 있어 주면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를 준다.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하면 끊지 말고, 계속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잘 들어준다. 상대를 도덕적으로 판단하거나 상투적인 이야기를 하면 이미 고통 속에 있는 상대가 더 힘들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해주어야 한다.
10년간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여전히 한국적이고 가톨릭적인 자살 예방 모델을 찾아가고 있다는 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 지난해 오프라인으로 진행했던 ‘마음 축제’를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10월 29일, 유튜브에서 생방송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어 막막하지만, 오히려 마음껏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밝게 웃는 이들의 모습에서 교회 공동체의 본질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고통을 겪는 이가 홀로 있지 않도록 곁에 있어 주고 공동체 안으로 데려오는 일, 생명을 구하는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보여 주셨던 사랑과 연민을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 ☎ 02-318-3079 https://www.3079,0r.kr/
[경향잡지, 2020년 11월호, 글 손혜선 기자, 사진 정승아 기자] 0 1,763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