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자료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임금과 목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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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임금과 목자
우리나라에서는 빈 들에서 짐승을 돌보는 목자를 만나기가 어렵지만, 영토의 절반이 광야인 이스라엘에서는 자주 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부터 목자들은 농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광야처럼 인적 드문 장소에서 양과 염소들을 방목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임금을 이런 목자에 비유하는 대목이 종종 나옵니다. 과거 우리도 백성을 다스리는 벼슬아치를 ‘목민관’(牧民官)이라 하였고, 정약용 선생은 그런 벼슬아치들이 지켜야 할 지침을 ‘목민심서’(牧民心書)라는 책에 정리하였지요.
옛 이스라엘이 속했던 고대 근동에서 이 비유가 쓰인 건, 목초지와 샘으로 양 떼를 이끌고 맹수의 위협에서 보호하는 목자의 역할이 자기 백성을 잘 먹이고 적국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임금의 그것과 비슷하였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에는 ‘엔릴’이라는 신이 함무라비를 목자로 세웠다는 내용이 서문에 나옵니다. 그리고 “임금 없는 민족은 목자 없는 양 떼와 같다.”는 속담도 바빌론에 존재하였습니다. 또한 창조주로 여긴 ‘마르둑’ 신을 다음과 같이 찬양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창조한 생명체, 머리 검은 자들을 목자처럼 이끄시기를”(『에누마 엘리쉬』 6,107). 이집트인들도 파라오를 목자로 찬양하였으며, 신도 목자에 비유되곤 하였습니다. 성경에도 하느님을 목자에 비유하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옵니다(시편 23,1 등).
그렇다고 목자가 모두 선한 건 아니었습니다. 요한 10,12-13에서는 돈에만 관심 있는 삯꾼일 경우 위험에 닥치면 양을 버리고 도망간다고 꼬집습니다. 구약 시대 예언서인 에제 34,1-10에서도 불성실한 이스라엘 임금들을 이런 목자에 견주며 꾸짖은 바 있는데요, 그들은 백성이 곳곳에서 착취당해 터전을 잃고 헤매는데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길 잃은 양을 찾아오는 건 목자의 기본 임무지만, 그들은 오히려 ‘주인’의 허락도 없이 백성의 등골을 빼며 종처럼 부릴 뿐이었습니다. 지도층의 이런 악행이 내적 붕괴를 유발하여, 결국 이스라엘의 남북 왕국은 이민족의 침공에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이에 에제 34,11-16에서는 제 이익에만 관심 쏟는 삯꾼 대신 하느님께서 직접 참된 목자로서 당신 백성을 모아 고향으로 안전하게 이끌어주실 거라고 선언합니다.
에제키엘이 전한 신탁은 이후 요한 10,7-39에 반영됩니다. 여기에는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요한 10,8) 하신 말씀은 옛 이스라엘 임금을 악한 목자에 빗댄 에제 34,1-10을 떠올려줍니다. 그리고 예수님 본인을 착한 목자에 비유하신 말씀(요한 10,14-15)은 하느님께서 좋은 목자로서 이스라엘을 회복해주실 거라 예고한 에제 34,11-16을 상기시킵니다. 이에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여 그분께 돌을 던지려고 하였지요(요한 10,31). 이런 사실을 생각하며 광야의 양 떼를 보면, 목숨까지 바쳐 양을 지키고 사랑한 목자 예수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가 있다.
[2023년 11월 26일(가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0 488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