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 (금)
(백) 모든 성인 대축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성경자료

[성경] 성경, 하느님의 말씀: 선재(先在)하는 이, 위(爲)하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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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2-20 ㅣ No.6903

[성경, 하느님의 말씀] 선재(先在)하는 이, 위(爲)하는 이

 

 

인간은 모두 자기보다 앞서 존재해왔던 이를 통해 태어나고 그 이덕에 삶을 꾸려 나갑니다. 아기가 태어남에 앞서 부모가 있고, 아기가 자라남에 있어 부모의 돌봄이 있습니다. 이는 소위 사회생활이라 불리는 삶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학교는 배움을 받아야 할 학생과 그 학생보다 먼저 있어 왔고, 그리고 그들을 가르침으로써 위함에 의의를 두는 선생으로 구성되는 작은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직장에는 갓 자기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이와 먼저 자리를 잡아서 후임에게 길을 안내해 줄 수 있는 선임이 있습니다. 이렇듯, 단순하고 합리적인 선의를 통해 먼저 있어왔던 이는 늘 자기 뒤의 사람들을 위하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전자, 후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먼저 있기 위해’ 타인을 밀어내는 이들이 즐비합니다. 성경은 그 현실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담은 하느님 말씀을 어기는 죄를 저지르고서는 하느님 앞에 서기 위해 그 죗값을 자기에게서 태어난 하와에게 떠넘깁니다(창세 3,12). 형 카인은 자기의 제물보다 동생 아벨의 제물을 선호하시는 하느님 때문에 동생을 살해하였고, 그 아벨의 피를 받아 마신 땅은 피에 대한 책임을 울부짖습니다(창세 4,10; 마태 23,35). 동생 야곱은 형 에사우보다 먼저 있기 위해 그의 장자권을 술수로 사들이고, 아버지 이사악을 속여 형이 마땅히 누려야 할 축복을 가로챕니다(창세 27,35).

 

이러한 현실에 그 어떤 존재보다 선재하시는 하느님께서 내려오셨습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이 구절은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하느님으로서 그 누구보다 선재하시며 동시에 아버지 하느님을 ‘향하여’ 계시는 우리 주님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런데, 영원으로부터 아버지 하느님을 향해 있는 그분의 얼굴이 첫 아담의 저주와 아벨의 피를 뒤집어쓴 땅을 향하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이로써 하느님께서는 ‘먼저 있음’의 근본 의의를 드러내십니다. 그분의 선재는 배타적인 신성을 세움이 아니라, 저주와 피를 뒤집어쓸지언정 우리와 함께하심을 지향합니다. 그 함께하심은 십자가 상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신비로서 땅에 스며든 저주와 피를 씻어냅니다(묵시 7,14). 주님께서는 ‘선재(pre-existentia)’하시는 분으로서 한 처음에 당신께서 보시기 좋다 하신 인간을 ‘위하시는 실존(pro-existentia)’을 반드시 이뤄내십니다. 실로 은총 위에 더 부어지는 은총이자 축복 그 자체라 하겠습니다(요한 1,16).

 

우리 모두는 늙어가기 때문에 자연스레 어떤 이들보다 ‘먼저 있는’ 존재가 되거나, 특별한 지향으로 ‘앞서 있는’ 존재가 되기를 갈망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의 선재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서 저주가 되고 타인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일로 귀결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 누구보다 먼저 있음은, 주님의 선재를 닮아, 항시 타인을 위함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찍이 주님의 선재를 고백했고(요한 1,15) 세상의 죄를 없애심으로써 사람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의 뒤를 따라 사람들을 위한 세례를 베푼(요한 1,29-34) 세례자 요한의 삶은 하나의 좋은 모범이 되어줍니다. 선재하는 이, 위하는 이의 전형이신 주님을 뒤따를 수 있기를 희망하며 세례자 요한의 전구를 청해봅니다.

 

[2024년 2월 18일(나해) 사순 제1주일 가톨릭마산 8면, 조우현 십자가의 요한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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