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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그린워싱(Green Wash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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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볼까요?] 그린워싱(Green Washing)
요즘 생태위기와 기후위기를 말할 때, 영어 표현이 들어간 어려운 용어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에코(Eco), 에코 백(Eco-Bag), 에코 프랜들리(Eco-friendly), 비건(Vegan), 유기농(Organic), 넷제로(Net-Zero), 탄소중립, ESG, IPCC 등 수많은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그린워싱’이라는 단어를 어디선가 들었는데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린워싱’이라는 단어는 ‘녹색(Green)’과, ‘White Washing(세탁)’이라는 뜻이 합쳐진 내용입니다. 즉, 기업이나 국가 등 많은 단체들이 ‘친환경’을 내세워 홍보하지만 각종 친환경적 이미지와 문구들로 소비자를 속이고, 실상은 환경오염이 지속될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1983년 미국의 환경운동가 제이 웨스터 벨트가 호텔을 방문했을 때, “환경보호를 위해 수건을 재사용해 주세요!”라는 문구와 녹색 재활용 마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호텔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고객에게 불편을 떠넘기는 것을 보고 ‘그린워싱’이라는 단어를 그가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 현재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요. 그 뒤에는 또 다른 위선들이 숨어 있었네요.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저도 가끔씩 동해안이나 서해안을 여행할 때면 석탄발전소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데, 굴뚝의 색깔은 녹색이고 친환경 에너지(Green Energy)라고 적혀 있어서 갸우뚱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린워싱’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나요?
우리나라에서 탄소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기업은 철강을 만드는 회사인 포스코(POSCO)입니다. 탄소배출량이 2번째로 많은 기업도 철강을 만드는 현대제철입니다. 두 기업만 합쳐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1억 톤이 넘습니다. 방글라데시 인구가 약 1억 7천만 명인데, 우리나라의 두 기업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방글라데시 한 국가의 전체 배출량과 비슷한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다른 기업들도 석탄과 석유를 주로 사용하는 제조업 부분에 집중되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탄소배출을 줄이기보다는 거짓 정보를 통해 깨끗하고 정직한 기업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삼척에 건설 중인 석탄화력발전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린워싱’에 해당됩니다. 2021년 포스코 에너지가 발간한 기업시민보고서를 보면, 신규로 건설 중인 삼척발전소는 폐광산 부지를 활용해 지어지는 만큼 건설 과정에서 생태계 훼손 여지가 적기 때문에 ‘친환경’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석탄발전소에서 사용할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맹방해변 항만공사를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삼척의 맹방해변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으며, 해안 침식 문제로 자연은 더욱 훼손되고 있습니다. 또한 공사 현장에서 길이 1.3km 이상의 ‘지정 문화재급’ 석회동굴이 발견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감축에 집중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석탄발전소를 계속 건설하며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여 탄소배출량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그린워싱’이라고 부릅니다.
이 밖에도 우리 주변에서 ‘그린워싱’에 적용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부산에 여행 갔을 때 처음 본 생수병이 있었습니다. ‘순수 365’라는 이름이었는데요. 대부분의 관공서와 학교에 무상으로 보급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어요. 이름을 ‘순수 365’라고 붙여, 깨끗하고 안전한 물 이미지로 위장하여 홍보하고 있었지만, 실상 이 물은 부산 기장 핵발전소에서 불과 11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바닷물을 담수화시켜서 만든 해수담수화 물이었습니다. 물을 만든 기업과 지자체는 기장군 주민과 부산지역 시민들에게 안전하다고 홍보했지만, 핵발전소(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 위험 때문에 시민들이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물을 ‘순수 365’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무죄한 시민들을 기만하는 행위가 바로 대표적인 ‘그린워싱’이라고 하겠습니다. 생태위기와 기후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 속에서 ‘그린워싱’이라는 단어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확산되고 빠르게 진화해 나갈 것 같습니다.
‘그린워싱’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와 더불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서도 ‘그린워싱’이라는 의미를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복음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로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보시면서 교만함과 위선자의 태도를 버리라고 하셨는데요.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종교인들의 삶도 ‘그린워싱’이라는 차원에서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종교인들의 삶이 겉으로 보기에는 품위가 있고, 고상한 말투와 행동으로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말하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관한 초월적인 이야기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과 성체성사를 통한 일상 안에서의 근원적인 회개 체험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린워싱’에 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마태 6,5).
‘회개’라는 단어는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몸과 마음과 정신의 완전한 변화를 말합니다. 내 안에서의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내 자신을 혁명하는 것입니다. 회개와 깨달음, 혁명 그리고 요즘에는 ‘통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내 안에서 먼저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응답하며,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 바로 회개 체험입니다.
생태환경의 주보성인으로 알고 있는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유언에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어요. “주님께서 나 프란치스코 형제에게 이렇게 회개를 시작하도록 해주셨습니다”(유언 1). 회개생활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주 하느님의 성령으로 시작되고 완성된다는 것을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언 첫머리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어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완전히 회개할 수 있도록 내어드립시다.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성령의 인도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리지 않는다면, ‘그린워싱’과 같은 위선자의 껍질만 계속해서 쌓여갈 수 있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4월호, 김종화 알로이시오 신부(작은형제회)] 0 8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