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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26: 청소년의 성적 권리! 금기가 아니라 책임 교육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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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26) 청소년의 성적 권리! 금기가 아니라 책임 교육으로 성에 눈뜬 청소년, 무조건 막기보다 성에 대한 책임감 심어줘야
청소년 이성 교제 수위와 교육자의 고민
“소장님, 연수에 바쁘시죠? 조언이 필요해서요. 중2 제주도 수학여행을 인솔하고 있습니다. 남녀공학인 중고등학교에서 이성 교제 제한 생활 규정을 어느 수위로 구체화해야 할까요? 중2 남녀 학생이 으슥한 곳에서 키스하고 있는 현장을 잡았습니다. 다음 단계는 뻔할 것 같아서 학교에서 지도 차원의 대책 수립을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 도움 주시면 좋겠습니다.” 교육청 교장단 연수에서 필자의 강의를 접한 교장 선생님이 주신 메시지다.
“고생 많으십니다. 선생님, 학교 차원의 이성 교제 제한 교칙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특정 행동을 금지하는 식으로 명문화하면 청소년 인권 단체와 거기에 동조하는 언론에서는 ‘사랑은 19금이 아니야’ 등의 제목으로 교육자의 고민을 조롱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성행동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그 행위의 의미와 결과를 생각해볼 기회인 독서 토의 글쓰기 등의 교육을 제공해 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답을 드렸다.
교장 선생님 눈에 띈 중2 남녀 학생이 성관계까지 간다면, 임신 가능성도 매우 높아진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칙보다 성의 의미와 책임을 깨닫게 하는 교육이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교육자의 준비만이 아니라, 청소년에게 임신ㆍ출산ㆍ양육의 책임을 묻고 또 그 책임의 길을 도와줄 수 있는 사회적 준비(양육비 책임법 등)가 모두 필요하다.
“저는 대중문화의 영향을 심각하게 많이 받았나 봅니다. 그래서 정말 어린 나이부터 성관계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대중매체가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가 섹스하도록 조장하는지 수업에서 낱낱이 알게 되면서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제 첫 경험은 남들보다 빨랐습니다. 고2 때 사귄 오빠와의 관계였는데 처음 오빠가 “할래?”라고 말을 꺼냈을 때 그 말에 대해 “그래”라는 대답이 너무나도 쉽게 흘러나왔습니다. 물론 오빠가 “임신하면 책임질게”라는 말로 저를 안심시키기도 했지만, 그 당시 그 오빠의 말이 거짓말임을 인지하기에 저는 너무 어렸습니다. 그때까지 대중매체에서 보여줬던 ‘섹스=즐거움’이라는 공식이 저의 무의식에 박혀 있었고,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슬며시 배어 나와 “그래”라는 대답을 부추겼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성관계했다는 죄책감이 있었지만, 그 후 계속 보았던 ‘섹스는 단순한 즐거움일 뿐’이라는 내용이 담긴 영상물에 그 죄책감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습니다. 특히 당시 즐겨보았던 미국 드라마에서는 청소년의 마약, 섹스 등을 아주 미화시켰는데, 그때 봤던 그들의 모습은 어린 제게 너무나도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였고,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저는 스스로를 멋진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중매체는 우리가 닮고 싶은, 우리가 열광하는 존재들을 사용해 우리에게 섹스를 가르치고 거기에 따르는 책임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성을 그저 쾌락의 수단으로만 단순화시켜버립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저는 그 어린 나이에 첫 경험을 하지 않았을 테죠. 그 첫 경험 이후 저의 모든 관심은 생리 여부에 집중됐고, 생리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임신에 대한 불안으로 며칠밤을 지새웠습니다. 나이가 어렸기에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책임에 대한 상상은 저를 정말 미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시작한 섹스를 멈출 순 없었습니다.
생리가 늦어지는 게 되풀이될수록 저의 불안함도 점점 커져 섹스하고 싶지 않았지만, 항상 오빠는 “내가 책임진다니까”, “나를 왜 피해? 이제 나 안 좋아해?”라는 말로 섹스를 거부하는 제가 다시 섹스를 허락하게 하였습니다. 게다가 주변 친구들도 다들 섹스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입장이기에 제가 섹스를 거절하고 멈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대중매체에서 보여주는 섹스에 홀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섹스를 하고 기분이 나쁘다가도 당시 여자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영화에서 섹시한 여고생이 “섹스를 해봐야 어른인 거야”라는 대사를 들으니, ‘그래, 이제 난 어른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흐뭇해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보 같은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정말 이 모든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그때 그 오빠가 말은 책임지겠다고 하지만 막상 정말 책임져야 할 상황이 오면 비겁하게 도망갈 것이라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저는 소중한 학창시절을 걱정과 부담감으로 밤잠 설치지 않고, 좀 더 순수하고 밝게 기억할 수 있었을 텐데요.
대학생이 되었는데, 솔직히 저는 걱정이 많이 됩니다. 앞으로 사귈 남자친구가 제가 이미 경험이 있다는 걸 알면 성관계를 강요하겠지요. “그 XX는 되고 나는 왜 안 돼.” 이런 이유를 대면서요. 그런데 대학에 와서 배운 이 수업은 그때 제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현명한 방안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관계는 사랑과 책임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행위라는 것을 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이 당연한 내용을 지금까지 몰랐고, 또 왜 그 책임을 상대방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조차도 몰랐을까요?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자친구가 성관계를 요구한다면, 우선 책임에 대한 준비를 가장 먼저 묻겠습니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그 약속을 문서화(성관계 책임서약서, 본지 4월 8일자 참조)하겠습니다. 그 문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는 남자라면 저에 대한 사랑도 큰 것이겠죠? 수업 시간에 본 영상에서 남편과 함께 출산하는 장면은 제게 너무나도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수업을 들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제 옆을 지켜줄 남자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고, 제 몸에 생겨나는 새 생명을 지켜줄 방법이 무엇인지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 책임의 중요성을 깨달은 한 여학생이 -
대학교 3학년 여학생의 글이다. 스물셋에 깨달음을 얻은 것이 개인적으로는 다행이지만, 중학생 때 깨달아야 할 성적 책임을 대학에 와서야 처음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교육의 비극이다.
청소년의 성관계 권리에는 책임을
교육자는 ‘성관계는 재미있는 놀이’라는 가치관을 따라 행동을 하는 제자가 다다를 비참한 결과를 우려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그것을 억압으로만 느끼기 때문에 교육이 어려운 상황이다. ‘나는 처녀가 아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SNS 활동을 하고, 집회를 열고 서적을 출판하면서 ‘청소년 섹스할 권리’를 주장하는 청소년 인권단체도 있다. 이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명분으로 성관계 권리와 함께 낙태권까지 주장하기 때문에 책임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
상황이 이렇다면 유일한 선택은 성교육의 유럽형 책임모델을 국가적 차원에서 도입하는 것뿐이다. 청소년의 성관계 권리를 인정하되, 그 책임을 철저하게 물어서 임신하면 남녀 모두가 책임을 지도록 국가가 강제하고 또 양육을 돕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대만처럼 여학생에게 출산휴가를 주고 학교에 수유실을 설치하여 청소년이 양육과 학업을 병행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법과 제도로 책임을 정확하게 학습시킬 때, 절제와 정결이 억압이 아니라 나와 새 생명을 지키는 소중한 책임을 깨닫는 청소년들이 생겨날 수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6월 3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0 1,177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