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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41: 낙태죄가 폐지된 나라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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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41) 낙태죄가 폐지된 나라는 없다 도망간 아빠의 죗값 목숨으로 치르는 태아
“‘미혼모’와 ‘사생아’라는 단어는 있지만 ‘도망간 남자’를 뜻하는 말은 없다. 그래서 준비했다. 임신중단의 권리는 여성의 기본권. 여성의 자궁을 나라가 관여하지 마라. 임신시킨 한국 남자를 처벌해라.”
한 페미니즘 단체의 포스터 문구다. 임신 당사자는 남녀 모두인데, 현행법상 여성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현실은 대다수 시민을 분노케 하는 차별이다. 이 문제를 페미니즘 단체는 낙태죄 폐지로 해결하자는 주장을 했고, 언론은 이 목소리만 증폭시켰다.
이런 낙태권 요구는 지난해 5월 대통령 선거에서 강력한 이슈로 등장했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형법의 낙태죄 폐지로 낙태를 비범죄화하고, 낙태 허용 조항에 사회 경제적 사유를 추가하겠다”(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질문에 대한 답변)는 공약을 내걸면서 여성 단체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다. 남자가 임신만 시켜놓고 도망치는 억울한 상황을 낙태로 해결하도록 법을 개정하라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도망간 남자’에 대한 범세계적 해결책? 양육비 책임법
이는 본래 낙태가 아니라 책임으로 예방해야 할 문제다. 유럽의 모든 선진국에서는 ‘히트 앤드 런(hit and run)’이 낙태 사유가 되지 않는다. 남성에게 아버지로서 책임을 묻는 법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 초기에 낙태가 허용되긴 하지만, ‘도망간 남자’ 때문에 낙태할 일이 거의 없다.
국가가 우선시해야 할 책무는 무엇일까? 낙태권 보장일까?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에 대한 지원을 충분히 제공하고, 남성에게는 구상권을 발동해서 양육비를 받아내고, 책임을 회피하면 여권 정지, 운전면허 정지, 벌금, 구속, 채권 추심, 사업자 면허 취소 등 여러 방법으로 처벌하는 것일까? 한국에는 양육비 책임법이 없어 국민들은 이런 법의 존재 자체도 모른다. 그렇다면 언론이 해외 사례를 알리고, 건강한 토론을 유도하고 생명 수호 여론을 조성해야 하는데,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편향된 보도를 한다. 정치인들까지 이를 공약으로 내세우기에 낙태 합법화가 마치 남녀 평등과 정의의 실현인 것처럼 왜곡되고 있다.
유럽은 정말 낙태 자유지대인가?
여성 단체와 언론은 유럽 대다수 국가가 심지어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까지도 낙태죄를 폐지했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아일랜드에서는 태아의 심장박동이 확인될 경우 산모가 위중하더라도 낙태가 절대 불가능했다. 그러나 산모가 사망한 사건이 있어 임신 초기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로 가결됐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이 사례를 낙태죄 폐지로 호도하고 있다.
독일, 네덜란드 등 한국 언론이 낙태죄 폐지 국가로 분류한 나라의 낙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절차로 이뤄진다.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는 임신 초기(10∼12주) 엄격한 조건을 충족할 때만 낙태를 허용한다. 독일은 12주 이내에만 낙태를 허용하며 형법에 상담 규정까지 포함돼 있다. “상담은 태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상담은 여성이 임신을 계속하고, 아이와 함께하는 삶에 자신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상담은 여성이 책임감 있고 양심적인 결정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여성은 태아가 고유한 생명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까닭에 낙태는 예외적인 상황에서 법적 절차 안에서만 고려할 수 있다. 그 예외적인 상황은 임신을 지속하는 것이 산모에게 합리적 희생의 범위를 넘어서는 심각한 경우여야 한다. 충고와 원조를 통해, 상담은 임신과 관련한 갈등 상황을 극복하고 위기 상황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낙태를 수행하는 의사는 상담자가 될 수 없다.”(유지홍, 「낙태죄 규정에 관한 국가별 검토」 참조) 상담과 숙려 기간을 거치다 보면 12주가 지나고, 이후의 낙태는 법으로 처벌한다.
네덜란드는 상담과 숙려 기간이 필수며, 국가가 지정한 진료소에서만 수술을 허용하는데, 의사와 만나려면 3주 이상이 걸린다. 수도인 암스테르담에는 아예 낙태시술소가 없다.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거세기 때문에 임신 초기는 낙태를 허용하지만, 그 절차를 불편하게 만들어 여성이 결국에는 출산의 길을 가도록 국가가 유도한다. 폴란드에서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도 낙태가 절대 불가했으나 최근에 이 규정은 완화됐다.
악에서 선으로 가는 멀고도 험한 길
유럽에서 낙태를 허용하는 이유와 한국에서 모든 낙태를 합법화하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완전히 다르다. 유럽은 강간이나 산모가 위중한 딜레마 상황에서 낙태 허용 논의를 촉발했지만, 한국은 책임의 제도로 얼마든지 예방 가능한 ‘히트 앤드 런(hit and run)’ 문제를 이유로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비상식적 여론이 들끓고 있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이 중대한 차이를 고의적으로 간과하면서 낙태 허용 주장에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상태에서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을 결정한다면, 한국은 양육비 책임법 없이 낙태가 허용된다. ‘도망간 남자’의 문제를 낙태로 해결하라고 길을 터주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다.
남성들은 동물적 욕망만을 내세우려는 악(惡)에서 벗어나, 책임감을 갖고 선(善)을 행해야 하며, 제도적으로 양육비 책임의 법제화가 이뤄져 상처받은 여성들을 감싸 안고 치유해야 한다. “악에서 선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밀턴, 「실락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길을 가야만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9월 16일, 이광호 베네딕토(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0 1,374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