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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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태아의 생명권, 진보 ·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한 진리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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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4-28 ㅣ No.1645

[세상 속의 복음 사회교리] 태아의 생명권, 진보 ·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존엄한 진리의 문제

 

 

“헌법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으로 될 예정인 생명체라는 이유 때문이지, 그것이 독립하여 생존할 능력이 있다거나 사고능력, 자아인식 등 정신적 능력이 있는 생명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그에 대한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인간이면 누구나 신체적 조건이나 발달 상태 등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생명 보호의 주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아도 성장 상태와 관계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2012. 8.23.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 합헌 판결문 일부)

 

이러한 2012년의 합헌 결정이 7년 만에 뒤집혔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팽팽히 맞서 온 낙태죄 형사처벌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11일 위헌 여부를 판단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953년 낙태죄가 입법된 이후 66년 만에 내려진 사실상의 위헌 결정이다. 국회는 내년 말까지 낙태의 허용 범위 등에 대한 법률 개정안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 어찌 보면 말이 법 개정이지 인간 생명 존엄성에 대한 빗장이 풀려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낙태죄 폐지의 주된 논쟁은 법 제정 이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으로 갈린다. 이번 헌재의 결정이 난 이후, 많은 언론 기사의 제목들은 ‘낙태죄 위헌에 헌재 앞 감격의 눈물’, ‘여성단체, 낙태죄 폐지해 새로운 세계로, ‘환호와 눈물’ 등이다. 정말 태아의 생명이 제거되는데도 환호하며 박수치는 모습이 합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마치도 개인과 정당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옹호하면 자신들이 진정한 진보 세력인 것처럼 여기고,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하면 진부한 보수라고 비난받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임신 초기의 태아의 생명을 자유롭게 박탈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환호하는 나라가 되어갈 것이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태아의 생명권이 더 우위에 있음을 항상 천명해 왔다. “난자가 수정되는 그 순간부터 아버지의 생명도 아니고, 어머니의 생명도 아닌 한 생명이 시작된 것이다. 그 생명은 스스로 성장하는 새로운 인간 존재의 생명이다. 모든 인간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하느님께 속한 것이다”(「생명의 복음」 60-61항 참조).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신앙과 생명에 대해서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생명의 문제는 진리의 문제이지 진보와 보수라는 색채를 덧씌워 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바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발달 단계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존엄한 진리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아의 생명권보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인 헌법재판소의 변심으로 인해 앞으로 최소한 임신 초기 낙태는 여성의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행해지며, 산부인과 의사들은 임산부의 자궁을 마음 놓고 헤집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생명 경시 풍조는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교회와 가정은 생명교육에 대한 책임이 더 막중해졌다. 남녀의 공동 책임하에 성(性)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사랑은 생명(生命)으로 완성됨을 가르쳐야 한다. 더 나아가 인간의 생명권이 얼마나 고결한지, 자신의 삶에 사회적 · 경제적 불편한 요소가 생기면 언제든지 생명을 제거하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생명의 진리를 더 강력하게 설파해야 한다.

 

[2019년 4월 28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길성환 베드로 신부(평화의 전당 실무/사무처 문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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