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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는 장애인이다: 하느님 나라에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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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4-21 ㅣ No.1640

[경향 돋보기 - 나는 장애인이다!] 하느님 나라에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없습니다

 

 

가톨릭 신자임에도 개신교 예배당에 간 적이 있습니다. 서울 농학교에 다닐 때입니다. 학교 학생 대부분이 청각 장애를 가진 목사가 있는 교회에 다녔습니다. 청각 장애인 목사의 수어 설교는 깊은 위로와 감동을 주었고 저는 제 삶에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사제 성소를 꿈꾸다

 

서울 세종로본당에 청각 장애인을 위한 주일 학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수어 통역 봉사자가 전하는 신부님의 강론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개신교에서 경험했던 위로와 행복이 떠올라 성당에 꼭 다녀야 하는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비장애인의 사고방식으로 청각 장애인들을 가르치는 것은 오히려 청각 장애인들에게 무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저는 어느 날 성당에서 기도했습니다. “주님! 하느님의 말씀을 목말라 하는 청각 장애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 주소서. 청각 장애인도 미사를 통해 참된 기쁨을 얻게 해 주소서.”

 

제 마음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느님께서 청각 장애인들에게 수어로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부르시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제의 길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청각 장애인이 사제가 될 수 있는지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모두 불가능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하느님께서 왜 저의 마음을 사제 성소로 뜨겁게 하셨는지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불가능이 없으시다는 복음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 도와주시리라 믿으며 용기를 내어 사제의 길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물론 그 뒤로도 많은 사람이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걸 알아보라며 반대했지만, 결국 저는 신학교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런 것을 ‘부르심’이라고 하겠지요.

 

 

희망의 문으로 이끌어 주신 주님

 

하느님의 부르심에 용기 내어 응답했지만 정작 신학교에는 청각 장애인을 위한 교육 환경이 준비되지 않아 공부할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을 믿고 바라며 계속해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10년을 기다린 끝에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청각 장애인 사제인 토마스 콜린 신부님이 미국에서 신학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초대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낯설고 어려운 환경에 애를 먹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언어 장벽이 높아 힘들었습니다. 영어와 영어 수화를 동시에 배워야 했습니다. 낯선 언어를 배우는 것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여러 차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 37,5).

 

청각 장애인 사제 양성에 관심이 있던 당시 뉴욕대교구장 오코너 추기경님은 성요셉신학교에서 청각 장애를 가진 신학생이 신학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요셉신학교에 입학하여 일반 신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강의는 들을 수 없었지만, 속기사가 쳐 주는 자막을 보면서 1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청각 장애인을 지지해 주신 오코너 추기경님이 갑자기 뇌종양으로 선종하신 것입니다. 추기경님의 생각과 달리 청각 장애 신학생을 원하지 않았던 신학교는 저를 퇴학 처분했습니다. 모든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이제 더는 사제가 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절망스러웠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콜린 신부님이 찾아와 사제 성소를 포기하지 말라며 저를 붙잡으셨습니다. 신부님은 제가 신학 공부를 이어갈 수 있도록 또다시 신학교를 알아보셨습니다. 드디어 뉴욕 성요한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곳 교수 신부님이 제가 신학 수업을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셨고, 저를 위하여 수어 통역자와 속기사를 고용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희망의 문으로 다시금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다시 깨달은 순간

 

다시 10년을 보낸 끝에 저는 미국에서 철학과 신학 공부를 마치고 어렵게 논문도 통과되어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저는 먼저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셨던 정진석 추기경님을 뵈었습니다. 추기경님은 저에게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공부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수어를 모르는 신학생들과 어떻게 의사소통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2005년 봄,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청각 장애인이 사제가 되기란 여전히 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쁜 일이 생겼습니다. 신학교 수화 동아리 반장으로 열심히 수어를 배우던 한 신학생의 도움으로 어려움 없이 신학교에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시련은 신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는 것을 단호하게 반대하는 사제가 몇몇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속상한 마음과 함께 불안감이 제 마음속에서 다시 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다시금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했습니다.

 

그런 반대의 목소리에도 정진석 추기경님은 제게 사제품을 주시기로 결정하셨고, 저는 2007년 7월에 아시아 최초로 청각 장애인 사제가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지 23년 만에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가 사제가 되는 것을 원하셨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기도 합니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사목이 절실했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에는 청각 장애를 가진 목사와 전도사가 150명 정도 됩니다. 이들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장애인을 위한 목회 활동을 합니다. 청각 장애인 목사와 전도사의 수어 설교에 감동한 많은 청각 장애인이 계속 교회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천주교회에는 청각 장애를 가진 사제가 저 한 명뿐입니다. 청각 장애를 가진 개신교 교역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유아 세례를 받았거나 가톨릭 청각 장애인 교육 기관에서 세례를 받은 청각 장애인 신자가 많습니다. 한국에 청각 장애인 천주교 신자 수는 5천 명으로 추산합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가톨릭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청각 장애인 목사와 전도사가 수어로 설교하는 교회에 나간다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싶어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저처럼 수어로 미사를 하는 사제가 절실한 까닭입니다.

 

저는 12년 동안 수어로 복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성당이 없어서 30평 남짓한 공간을 빌려 경당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의 청각 장애 신자들이 소식을 접하고 제가 사목하는 곳을 계속 찾아옵니다. 비좁은 경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신자들의 모습이 많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사목의 절실함을 피부로 느낀 저는 청각 장애인들의 성당을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성당 건립에 반대했습니다. 땅값과 건립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가난한 청각 장애인들이 어떻게 이 막대한 비용을 모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또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제가 복잡한 건축 과정에서 건축 관계자들과 어떻게 의사소통할 것이며, 또 누가 발 벗고 이러한 큰일을 도와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말입니다.

 

 

모든 이에게 희망과 기쁨을 나누는 교회

 

비록 저는 장애를 가졌지만, 주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든 성당을 짓게 도와주시리라 믿었습니다. 또한 저의 간절한 바람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2011년부터 서울대교구의 모든 성당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성당에 찾아가 청각 장애인 성당 건립을 위한 후원 미사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지만 대부분 거절당했습니다. 어떤 때는 문전 박대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니 이를 허락해 주는 성당의 수가 점점 늘었습니다.

 

올해 6월이면 청각 장애인을 위한 ‘에파타성당’이 완공될 예정입니다. 예수님처럼 고통에 짓눌려 신음하는 장애인을 외면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초대하는 본당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교회는 이들을 위로하고 또 힘이 없는 약자들의 아픔을 들어주며 슬픔에 우는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교회는 약자와 장애인,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어우러져 잘 살 수 있게 하는 우리 사회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1코린 12,13).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28).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에는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없습니다. 지상의 교회인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편견 없이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박민서 베네딕토 - 서울대교구 에파타본당 주임 신부로,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산하 한국가톨릭농아선교협의회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 갈로뎃대학교에서 철학과 수학을, 미국 세인트존스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학을 전공하였다.

 

[경향잡지, 2019년 4월호, 박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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