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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는 장애인이다: 몸의 장애가 삶의 장애는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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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돋보기 - 나는 장애인이다!] 몸의 장애가 삶의 장애는 아닙니다
캐나다에서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다
저는 휠체어에 탄 채 춤을 추는 무용수입니다. 지금은 휠체어를 타고 자유롭게 춤을 추지만 저는 본디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누구 못지않게 건강하던 스물여섯 살의 젊은 날, 한 번의 사고로 척수손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의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어학연수를 간 캐나다에서 로키산맥을 여행하던 중 차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언덕 아래로 굴렀습니다. 그 충격으로 척수 신경이 손상되었고 밴쿠버의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는데 의사는 앞으로 걸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실감나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뒤 침대 위에서 일어나려고 했을 때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그전에는 아무 문제없이 걷고 뛰던 내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었는데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다쳐서 잠시 걸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잘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제 상태를 자각할 수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장애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학교와 기업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 교육을 필수로 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강사가 체계적으로 교육하면서 초등학교에서, 더 앞서서는 유치원에서부터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장애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사고가 나다 보니 더욱 장애를 인식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낯선 캐나다의 병원에서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태로 재활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의 다른 환자와 간호사, 그리고 의사들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대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조금씩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것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 사람들은 장애에 대한 인식이 잘 되어서인지 병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주변 사람의 시선이나 행동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저 스스로도 장애인이라는 것을 잘 인식하기 어려웠습니다. 길을 지나가거나 가게를 비롯해 어느 곳을 가더라도 행동에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편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이야기를 하면서 필요한 부분은 도와주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는 등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어느덧 장애라는 현실이 조금 자연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다
간단한 재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첫날 공항에서부터 ‘아, 나는 장애인이구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 묻어나는 거리감과 연민, 호기심, 안타까운 표현과 말들…. 그리고 차를 타고 집에 와 계단 때문에 아버지의 등에 업혀 집으로 들어오고 밖을 나갈 때마다 마주치는 도로의 턱….
“에고, 어쩌나. 힘든데 왜 나왔어?” “어떤 사람이 잘 고친다고 하니 한번 가 봐.” “부모님이 걱정이 많겠네.” 우리나라 사람들은 관심도 많고 인정도 많다 보니 좋은 마음으로 한마디씩 던지는 걱정과 위로의 말, 그리고 행동들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장애를 갖기 전의 모습만 생각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어딘가로 나가려 해도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점점 두려워지고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장애를 벗어나 다시 걷겠다는 욕심으로 긴 시간 치료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돈은 쓰는데도 효과는 나타나지도 않고 시간만 지나면서 점점 다시 안으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의 인생과 장애, 그리고 앞날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고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장애라는 틀에 갇혀 지내던 어느 날, 섬광처럼 한 가지 생각이 스치면서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내가 장애인으로서 휠체어를 타고 평생을 살게 되었지만,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많고 지금의 이 시간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이지 않나? 이렇게 방황하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보자.’
이런 생각이 들면서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고, 장애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장애를 부정하고 넘어야 하는 벽으로 생각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나니 지금의 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추다
생각을 바꾸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고 밖으로 나가 내가 할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에게 휠체어 댄스 스포츠에 대해 듣게 되었고, 저는 2002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될 때부터 시작하여 첫 국가 대표 선수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춘다는 것이 처음인 데다 사회적으로 낯설 때라 같이하려는 사람도 찾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부정적으로 보거나 오해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장애인이 사람들 앞에서 ‘광대 짓’을 한다며 싫다는 사람도 있었고, 그저 신기하게만 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춤을 추면서 정말 즐거웠고 잃어버린 열정을 다시 찾은 것 같았습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 조금씩 함께하는 사람이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초창기라 체계적인 지원이나 활동 영역도 별로 없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며 참가한 2005년 홍콩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승했고, 그 영상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후배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아시아대회에서 4년 동안 우승했고, 2008년에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은퇴하기까지 국가 대표 선수로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저에게 댄스 스포츠는 장애라는 한계를 넘어 진정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준 커다란 원동력이었습니다.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너무도 큰 충격이고 변화였습니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 갑자기 버려진 것처럼 막막하고, 장애를 가진 나에 대한 부정이 일어나는 혼란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파트너와 춤을 추고 다른 사람 앞에서 공연한다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 갖고 있던 벽을 허물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선수로서는 은퇴했지만,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춤을 계속 출 수 있고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하는 무용입니다.
외국에서는 30년이 넘는 장애인 무용단이 있을 정도로 장애인 무용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에 전문 장애인 무용단이 시작되었습니다. 문화적인 차이도 있겠지만, 그때까지 장애인이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춘다는 것도 어려웠고 더욱이 예술적인 성취를 이룬다는 인식도 적었기 때문입니다.
장애인 예술은 개인 예술가들과 소수의 단체를 중심으로 이어져 오다가 2010년 무렵부터 정부의 지원이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전문 예술로 조금씩 발전해 오고 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취미 활동이나 재활 활동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장애인 예술가의 활동 영역도 넓어지고 크고 작은 공연과 전시회도 열립니다. 이러한 발전에는 장애인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이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몸의 장애가 모든 것의 장애는 아니다
지금 저는 무용가로서 공연하면서 한편으로는 장애 인식 개선 강사로서 학교와 기업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연과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장애인과 장애 예술에 대해 알리는 것입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여전히 장애를 잘못 이해하고 거리를 두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장애에 대해 더 포용하고 인식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아직 어려운 점도 많고 개선해야 할 것도 많지만, 그래도 많은 이가 장애인에 대한 복지와 인식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하나씩 개선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0년 전 장애인이 되어 한국에 돌아왔을 때 느꼈던 낯섦과 거리감이 이제는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제가 느낀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어떤 이는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은 지적으로 부족하거나 사회적으로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몸의 장애가 삶의 장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는 분명히 힘들고 불편하지만, 사회적으로 보완하고 바른 이해와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몸의 장애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장애가 삶의 장애가 되지 않는 사회야말로 모두가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모두가 행복한 사회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 김용우 - 장애인 무용단 ‘케이 휠 댄스 프로젝트’(K-Wheel Dance Project)대표. 우리나라 휠체어 댄스 스포츠 1호 국가 대표를 지냈으며, 대한민국 장애인 문화 예술 대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장애인 인식을 개선하려는 강연과 공연을 한다.
[경향잡지, 2019년 4월호, 김용우] 0 1,149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