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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복음으로 세상 보기: 가짐 없는 큰 자유, 부활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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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세상 보기] 가짐 없는 큰 자유, 부활의 삶
사순과 부활시기입니다. 본당사목을 할 때 사순절 특강과 공동보속에 대해 교육분과장과 논의를 하였습니다. 공동보속에 기도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어떤 보속이 좋겠냐는 의견에 ‘냉장고 비우기’를 제안해주셨습니다. 외국에서 생활경험이 있으셨던 분이신데 외국에서 냉장고 비우기를 보속으로 해보았는데 힘들긴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순시기동안 만이라도 장을 덜 보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부터 다 비우면서 소비를 줄여 쓰레기를 줄이고 나눔을 실천해 보자는 의도였습니다.
그 이후 본당을 떠나 빈민사목을 하면서 선교본당에 온지 2년 반이 되었습니다. 꽤 넓은 공간에서 남이 해주는 밥과 빨래와 청소에 의존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사제생활 25주년과 함께 빈민사목으로 옮기면서 자취생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밥과 빨래와 청소를 하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밥하는 것도 서툴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혼자 밥을 해먹는다고 하니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몇 분은 냉장고가 너무 작고 낡았으니 좀 큰 것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유혹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냉장고가 크면 클수록 음식물도 더 많이 저장하고 못쓰고 버릴 것 같아 바꾸지 않았습니다. 냉장고는 금방 가득 찼습니다. 냉장고를 비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가능하면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것 먼저 해결하려고 했지만 여기저기서 조금씩 들어오는 음식으로 거의 채워져 있습니다. 가끔 냉장고가 비워져 빈공간이 생기면 작은 기쁨을 맛보기도 합니다. 꽉 차 있는 냉장고는 내 마음의 욕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혼자 밥을 해먹으면서 냉장고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냉장고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냉장고 없이 산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전에 교육방송에서 방영한 ‘냉장고 없이 일주일 살아보기’라는 프로그램을 본적 있습니다. 냉장고 없이 산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되는 세상입니다. 프로그램에서 두가정의 일주일 체험을 통해 가족들뿐만 아니라 저 역시 새롭게 느끼는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나의 소비 생활은 결코 이웃의 삶과 생태계와 무관하지 않아
대형마트의 등장에 따라 냉장고는 대형화되어 과잉 저장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처럼 “곳간들을 헐어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루가12,18) 말씀처럼 더 큰 냉장고에 많은 음식들을 저장합니다. 그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전기요금과 버려지는 음식물쓰레기 양도 늘어납니다. 대형마트와 냉장고의 연결고리로 인해 잃게 되는 경제적 손실은 생각보다 큽니다.
냉장고는 문명의 이로운 제품이지만 인간의 욕심과 허영의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부유한 나라의 냉장고에 식품이 남아돌아 썩어가고 있는데 지구 한편에서는 기아로 목숨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곡간만 채우면 되는 삭막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자본주의적 삶의 폐단은 모두 냉장고에 응축돼 있다고 합니다.
‘냉장고 없이 일주일 살기’ 체험자들은 냉장고 없이 살아보니 불편한 것은 많고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혜가 생겨납니다. 오래 보관할 수가 없기에 그때그때 먹을 필요한 양만 조금씩 장보는 습관이 생기고, 음식도 적당히 먹을 만큼 하게 됩니다. 장은 자주 보지만 장보는 비용은 예전에 비해 조금 나오고 음식물 쓰레기 또한 줄어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오히려 더 신선한 음식을 먹을 뿐 아니라 소비와 쓰레기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넓은 사제관에서 좁은 집으로 옮기면서 무조건 물건을 줄여야 했습니다. 집이 좁으니 버리고 줄여야 하는데 참 어려웠습니다. 더 넓은 공간에 더 많은 것을 채우는 것이 편리하고 당연다고 믿는 세상에서 가짐 없는 자유를 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유에 얽매여 중요한 자유는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태회칙인 ‘찬미받으소서’가 발표되었습니다.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에서 2017년 해외원조주일을 맞이하여 발표한 담화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을 인용해 생태적 삶을 통한 나눔을 강조하였습니다.
“현대에 우리가 직면해 있는 위기는 인류적이고 지구적 차원의 것이면서 이에 대한 해결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책임과 파괴된 지구에 대한 성찰로 접근해야만 가능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소비 생활은 결코 이웃의 삶과 생태계, 곧 자연환경과 무관하지 않으며 내 이웃의 생활 태도는 나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합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생활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권리나 다른 이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제한하고 수탈함으로써 내게 온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연환경으로부터 오는 혜택을 누리는 동안 우리의 후손들도 정당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돌아봅시다. 자연을 단지 자원으로써만 인식하는 태도 때문에 어머니인 땅(성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노래), 곧 공동의 집인 지구가 수탈당하고 하느님의 선물인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아닌지 깨닫도록 합시다. 당연히 나의 것이라고 여겼던 권리와 재화들은 사실 애초부터 나만의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누려야 할 선물이었던 것임을 알고 실천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주님의 한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빈 무덤을 통해 참된 자유의 삶인 부활을 보여주셔
지난 2월은 빈민운동의 대부 고 제정구 바오로 선생님 20주기였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을 본받아 ‘가짐 없는 큰 자유’를 강조하시며 가난한 이들과 가난한 삶을 사신 분입니다. 교황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도 그리스도교 영성은 삶의 질을 이해하는 다른 방식을 제안합니다. 회칙에서는 소비에 집착하지 않고, 깊은 기쁨을 누리는 관상적인 생활방식을 독려하며, 절제를 통해 성숙해지고, 적은 것으로도 행복해지는 능력을 제안합니다.
이는 검소함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작은 것들의 진가를 알아보고, 기회에 감사하며, 내 것에 집착하지 않고, 갖지 못한 것에 탄식하지 않는 삶입니다. 지배의 논리를 피하고 쾌락을 쌓는 일을 삼가는 것이 필요합니다.(찬미받으소서 222장) 또한 회칙에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절제는 우리를 해방시키고, 순간순간을 더 잘 즐기며 사는 이들은 가지지 못한 것을 계속 찾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모든 사람과 사물을 소중히 여기는 것의 의미를 체험하고 가장 단순한 현실에 익숙해져 이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라며 신앙인의 삶을 제시합니다.(찬미받으소서 223장)
부활시기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완전히 비우시고, 자신의 무덤까지 완전히 비우셨습니다. 빈 무덤을 통해 참된 자유의 삶인 부활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욕망의 상징인 큰 냉장고, 큰집의 욕심을 비우고, 마음을 비움으로써 소유에 얽매임 없이 나누는 ‘가짐 없는 큰 자유’ 삶이 나와 우리의 부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4월호, 이영우 토마스 신부(봉천5동(선교)성당 주임)] 0 91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