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자료
[신약] 마르코 복음서 이야기17: 예수님의 세례(마르 1,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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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복음서 이야기 (17) 예수님의 세례(1,9-11)
- 그리스도의 세례,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 no, 1445-1523) 作
세례자 요한의 증언(1,7-8) 이후 곧바로 마르코 복음서의 주인공인 예수님이 등장하는데, 그분의 첫 모습은 매우 아이러니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자신보다 “더 위대한 분”,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을 정도로 크신 분으로 예언했습니다. 이야기를 접하는 수신자는 자연스럽게 그 위대한 분의 장엄한 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예상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분은 인간 행렬이나 천상적 수행원(가령, 천사 무리) 없이 홀로 등장하십니다. 게다가 요한이 먼저 예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이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요르단으로 요한을 찾아오십니다. 특히 나자렛은 구약성경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작고 보잘것없는 시골 마을로 위대한 인물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요한 1,46 참조). 예수님의 세례 장면에서 가장 역설적인 점은 미래에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이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요한으로부터 받았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폭력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계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분이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납니다(15,39 참조).
마르코 복음서는 아이러니라는 문학적 기법을 통해 인간의 생각과 논리를 뒤집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보다 ‘더 위대한 분’이시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어, 여느 사람처럼 인류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게다가 죄인의 모습으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이 모든 예수님의 행적은 하느님이 세상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지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은 인간들에게 멀리 떨어져 그들의 삶과 전혀 관계없는 분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함께하시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비둘기 모습이라는 점은 예수님을 통하여 인류가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에 놓이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비둘기는 노아의 홍수 시기에 처벌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표징(창세 8,8-12)이자 구약에서 희생제물로 인정되는 날짐승(레위 5,7; 12,6; 14,44; 15,14)이었습니다.
또한 이야기를 접하는 수신자는 하늘에서 예수님을 향하여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증언을 듣습니다. 이 증언을 통해 예수님과 하느님 사이는 막역한 사이이며,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의 특별한 분으로 이 세상에 보내어진 참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됩니다. 설화자로부터 들었던 예수님의 신원이 참임을 확인하면서(1,1 참조), 수신자는 앞으로 예수님이 이루게 될 하느님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2023년 4월 30일(가해)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광주주보 숲정이 3면, 김영남 가브리엘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0 1,077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