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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 금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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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주에 현대 자동차 공장과 엘지 배터리 공장이 건설 중이라고 합니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이민국의 조사를 받았고, 300명 넘게 구금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이 방송을 통해서 노출되었습니다. 손에 수갑을 채우고, 발에는 쇠사슬을 묶었습니다. 무슨 중대한 범죄를 범한 것도 아닌데 너무 강압적이고 비인권적인 행위였습니다. 조지아주의 주민들은 이런 강압적인 조사에 대해서 항의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국기업이 철수하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항의하였다고 합니다. 정부의 조속한 조치로 한국인 노동자들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회사에서 보내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황망하고, 황당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일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심정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저도 이탈리아 공항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2007년 후배 신부님과 유럽 여행을 함께 했습니다. 신부님과 즐겁게 지내고 이탈리아 공항을 통해서 토론토로 돌아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권을 보여주고, 짐을 부치려고 하였습니다. 창구 직원이 벨을 눌렀는지 공항 경찰이 제게 왔습니다. 그리고 후배 신부님과 저를 사무실로 데려갔습니다. 3시간 넘게 기다렸고, 조사를 받았습니다. 결국 비행기는 놓쳤고, 다음 비행기를 타는 바람에 새벽에야 토론토에 도착하였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저의 이름이 범죄 혐의자와 비슷했다고 합니다. 이유를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사를 받으니 무척 두려웠고, 걱정되었습니다. 통역을 불러달라고 해도 되었고, 대사관에 연락해 달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당시는 경황이 없어서 못 했습니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 있습니다. 이방인을 몇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공간의 관점입니다. 지금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 수월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결단이 있어야 했습니다. 중학생 때입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서 전학해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경상도 말투가 강했던 친구에게 서울을 낯선 곳이었고, 마치 이방인과 같았습니다. 시간의 관점입니다. 그린란드에 살던 원주민들은 시간의 관점에서는 거의 2000년 전의 모습이었습니다. 생각, 관념, 문화가 달랐습니다. 공감의 관점입니다. 대중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그런 사람을 ‘고문관’이라고 했습니다. 대중의 정서를 초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서에서는 그런 사람을 ‘예언자’라고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단식하면 좋은 날 사람들에게 불안을 준다고 비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고, 표징을 보여주었더니 사람들을 선동한다고 비판합니다. 오늘 복음도 그렇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소경이 눈을 뜨고, 갇힌 이들이 자유를 얻고, 아픈 사람들이 치유되는 현장을 보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완고함이 하느님의 아들까지도 마귀의 힘을 빌린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와 같은 완고함은 2025년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을 위해서 투자하고, 공장을 건설해 주는 한국의 노동자를 불법 노동자 취급해서 강압적으로 조사하고, 가두는 일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느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무질서한 삶을 살게 된다고 하십니다. 아무리 잘 지은 집도 3년만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고, 엉망이 되곤 합니다. 집 앞의 텃밭도 한해만 돌보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착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양들은 목자와 함께 있어야 안전하다고 하셨습니다. 악한 세력은 힘들고 어려운 일 속에서도 우리를 넘어트리지만, 즐겁고 기쁜 일을 통해서도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일지라도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들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살아가는 우리들의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주님은 영원히 좌정하여 계시고, 심판하시려 어좌를 든든히 하셨네. 그분은 누리를 의롭게 심판하시고, 겨레들을 올바로 다스리시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