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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제 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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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성령강림대축일-요한 20장 19-23절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제 뒤에서>
가끔씩 제 삶을 스스로 진단해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주 느끼는 감정 중에 기쁨, 감사, 행복, 충만과도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도 있지만, 때로 의기소침, 무기력, 좌절, 자신에 대한 무가치, "하루 하루가 죽을 맛"과도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 들 때도 많습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그저 죽지 못해, 마지못해, 힘겹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차분하게 그 원인을 추적해 가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다름 아닌 "성령부재" 현상, "성령 결핍"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활동이 극히 미미하거나 중지된 상태에서 신앙생활은 무의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행하는 복음선포나 사도직 역시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이미 와 계신 성령께서 다시 한번 힘차게 활동하시는 순간은 언제이겠습니까?
제 삶을 돌아보니 몇 차례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던 순간, 견진 성사의 순간, 성령쇄신 세미나의 순간, 첫 서원과 종신서원의 순간, 부제서품과 사제서품의 순간, 잘 준비된 고백성사의 순간, 심각했던 병고의 순간...
그렇데 위에 나열한 순간의 상황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순간은 제 나름대로 다시 한번 겸손하게 제 자신을 낮추는 순간이었습니다. 제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고 주님께 간절히 도움을 청하던 순간이었습니다. 나란 존재로 가득 차있던 제 영혼을 최대한 비우던 순간이었습니다. 돌아보니 그 순간만큼은 정전으로 인해 꺼졌던 선풍기가 다시 한번 힘차게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의 감정은 참으로 은혜로운 것이었지요. 그 누군가가 제 뒤에서 저를 지켜주시는 것과도 같은 든든함에 하루 하루가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어떤 시련이 다가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었습니다. 그 순간은 그렇게 미워 보이던 꼴통들조차도 어찌나 예뻐보이던지요. 한 녀석 한 녀석이 다 천사요, 선물이요, 제 기쁨의 원천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이 안 되는 일이 반드시 있지요. 때로 절벽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요. 때로 죽음 이상의 고독과 절망 앞에서 눈물 흘립니다.
그 순간 필요한 노력이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고 비워진 그 자리에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청하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힘차게 활동하실 때 불가능은 없습니다. 평생 삭이지 못할 것만 같던 깊은 상처들도 천천히 아물 것입니다. 성령께서 활동을 시작하시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서 못할 것 같은 사람도 용서가 가능합니다.
오늘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께서 다시 한번 우리 안에서 힘차게 가동을 시작하셔서 우리가 죽음과도 같은 고통과 좌절과 슬픔 가운데서도 힘차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청하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