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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토르첼로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

80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1-07-26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11) 토르첼로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 (상)


유구한 역사에 놀라고 소박한 성모자상에 감동하는 대성전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 제대와 성모자상.

 

 

베네치아의 랜드마크는 단연 산 마르코 광장이다. 이곳에 산 마르코 대성당, 두칼레 궁전, 종탑 등 베네치아가 자랑하는 역사적인 건축물이 함께 있어 일 년 내내 광장은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하지만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인 성 마르코 복음사가에게 봉헌된 이 성당보다 오래되고 베네치아 역사가 시작된 성당이 위치한 섬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베네치아는 연간 관광객 3000만 명이 다녀가는 곳이지만 토르첼로 섬까지 찾는 관광객은 그중 1%나 될까. 하지만 로마에 가면 7개의 언덕을 가야 하고, 피렌체에 가면 피에솔레에 가야 하고, 베네치아에 가면 바로 이 토르첼로 섬에 가야 한다. 왜냐하면, 각 도시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베네치아는 약 120여 개의 섬으로 그 중 산마르코 광장이 위치한 섬은 본섬이라고 부른다. 이 본섬을 출발해서 한 시간 남짓 바다 한복판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곳이 베네치아 역사의 시작인 토르첼로 섬이다.

 

 

베네치아의 최초 정착 섬 토르첼로

 

현재 이탈리아 북동쪽에 있는 베네토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은 “아틸라가 침입했다”, “훈족들이 쳐들어온다”라는 소식을 듣고 그 지방 주교좌성당으로 몰려든다. 모든 시민이 공포에 질려 사제에게 어떻게 하느냐고 무슨 지시라도 내려 달라고 요청하게 되는데 그런 요청을 받은 사제는 시민과 함께 기도를 드리게 된다. 그때 하늘로부터 목소리가 들려 왔다. “탑으로 올라가거라, 그리고 바다 쪽을 보아라. 거기 보이는 땅으로 가거라.” 이 내용은 베네치아 초기 연대기에 쓰여 있는 베네치아의 건국에 관한 전설이다.

 

이 연대기에 따르면 이때가 452년이다. 지금의 트레비소 사람들이 토르첼로 섬에 최초로 정착하면서 베네치아의 역사가 시작된다. 23년 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야만인의 침입은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반도 북동쪽의 사람들은 점차 토르첼로 섬으로 이주하게 되는데 그 숫자가 점점 늘어 9세기에는 2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현재 이 섬 거주민은 사제 포함 17명) 그 많은 사람은 주로 염전 사업을 하며 바닷길을 개척해 먼 곳으로 더 먼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부를 쌓기 시작하자 그들은 섬 곳곳에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현재 이 섬에 성당은 딱 두 곳뿐이지만 그 당시에는 20여 개의 성당이 있었다. 오늘 소개하는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Basilica di Santa Maria Assunta)은 이 20여 개의 성당 중 한 곳이며 오늘날까지도 보존 상태가 매우 훌륭한 성당이다.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 제단과 이코노스타시스.

 

 

복원작업 통해 드러난 아름다운 역사

 

대성전의 역사는 639년부터 시작한다. 그 후 826년 성당의 규모는 크게 확장되었으며, 1008년에 성모님께 봉헌되었고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성모 승천 대성전)이라고 명명되어 현재의 규모로 확장된다. 그 후 베네치아의 역사와 함께했던 이 성당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며 폐허로 변해갔다. 12~13세기에 유행했던 흑사병과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던 소금의 생산이 점점 늘어나는 늪지로 인해 줄어들면서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섬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현재 베네치아 본섬으로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제2의 베네치아 역사가 시작되었다.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895년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복원 덕분이다. 오랜 발굴 끝에 1954년 제대 주변에서 하나의 비석이 발견되는데 현재 제대 앞에 놓여있는 이 비석에는 이 성당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회중석의 두 독서대와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 이코노스타시스

 

중앙광장에서는 이 성전과 산타 포스카 성당(Chiesa di Santa Fosca, 11세기), 그리고 지금은 터만 남아있는 산 조반니 세례당(7세기)이 있으며 뒤를 돌아보면 두 개의 부속 건물이 남아있다. 광장에서 성당을 바라보면 장식이 없는 정면이 12개의 기둥으로 아치를 이루며 대성전 현관으로 이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입구는 13세기에 완성되었으며 현관을 지나 성당으로 들어서면 두 번 놀라게 되는데 첫 번째는 명성에 비해 다소 소박하고 크지 않은 규모에 놀라게 되고, 그 실망스러운 놀라움에 두리번거리다가 발견하게 되는 모자이크 장식에 두 번째 놀라게 된다. 성당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을 기본으로 하며 18개의 코린토 스타일의 기둥들이 세 개의 공간들을 만들어낸다.

 

회중석에서 제대가 있는 제단을 향해가면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층을 달리하며 나란히 설치된 두 개의 독서대를 발견한다. 다른 성당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이다. 로마에서는 주로 성가대석의 양쪽에 위치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아래쪽에 서간을 낭독하는 독서대가 있고 위쪽에는 복음을 선포하는 독서대로 구성되어있다.

 

-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 전경.

 

 

제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 상의 예수님이 가운데 높이에 설치된 특이한 이코노스타시스를 지나야 한다. 보통 동방 정교회에 가면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동방 정교회에서는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를 나누는 것이라고 하지만 보통 로마 교회에서는 성상 칸막이, 성화로 이루어진 벽이라고 생각하며 이는 구약의 성전에서 증언 궤를 모셔놓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칸막이 휘장(탈출 26,33)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이코노스타시스를 지나면 주제대가 있고 이 제대 밑에는 성 헬리오도로(+390)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성인은 알티노(현재 트레비소)의 초대 주교였는데 도시가 야만인의 침략을 당하자 알티노 주민과 함께 토르첼로 섬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다 한다.

 

 

육화의 신비 드러내는 성모자상

 

이 제대는 성당의 중앙 앱스로 이어지게 되는데 중앙 앱스에서 쏟아져 나오는 금빛으로 인해 제대가 더욱 빛나 보인다. 앱스 중앙에는 이 성당의 주인공인 성모님이 아기 예수를 안고 서 있는 모습을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성모 성당에서 성모님이 착좌해 계시거나 천상의 모후관을 받는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이곳에서는 육화의 신비를 드러내며 콘스탄티노플의 수호 성인인 ‘하느님의 어머니’ 이콘이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시칠리아까지 어지간히 유명한 모자이크는 다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소박함에 조금은 허전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잠시 뒤를 돌아보는 순간의 놀라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7월 25일,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12) 토르첼로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 (하)


벽 전체 장식한 ‘최후의 심판’... 사실주의적 인물 묘사 돋보여

 

 

-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당 제단.

 

 

로마에서 지내다 보면 많은 순례자를 만나게 되고, 개인적으로 아는 지인을 위해서 가이드 역할을 한다. 멀리서 찾아온 순례자를 위한 일정을 준비하다 보면 로마에서 꼭 보여드려야 할 리스트들을 정리하게 된다. 그중에서 빼놓지 않는 곳이 시스티나 성당이다. 시스티나 성당을 찾아간 사람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이다. 미켈란젤로의 이 예술 작품을 통해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찬미, 그리고 감사를 드리면서 또한, 세상의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선 자신을 떠올리며 겸손을 배우는 시간이 된다. 이러한 찬미와 겸손의 시간을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탑이 유명한 토르첼로에서 또다시 갖게 된다.

 

 

감탄을 자아내는 최후의 심판 모자이크

 

이코노스타시스를 통해 제단에 들어가서 단순한 제대와 앱스에 있는 성모상, 그리고 가대석으로 반원형으로 둘러싸인 주례석을 바라보며 그 단순함을 생각하다가 돌아서면 동공이 커진다. 성당의 출입구가 있는 서쪽 벽을 장식한 최후의 심판 모자이크는 성당을 나가려는 순례자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멈추게 하는 감동을 준다. 이 모자이크는 11세기 후반부터 12세기까지 제작되었다. 벽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규모만으로도 압도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최후의 심판 도상이다. 맨 위쪽부터 시작해서 정확하게 6단계 15장면으로 구성된 최후의 심판은 각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6단계 15장면으로 구성된 최후의 심판

 

-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당 최후의 심판 모자이크.

 

 

이 6단계 구성의 시작은 맨 윗부분에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는 골고타 언덕 장면으로 성모님과 요한 사도가 십자가 양쪽에 서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나스타시스(Anastasis) 도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승으로 내려와 쇠사슬을 풀고 그곳에서 기다리는 영혼들을 해방시켜주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는 아담과 하와, 다윗과 솔로몬이 해방된 영혼들과 함께 있다. 이 모든 이를 양쪽 끝에서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이 지키고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심판자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성모님과 요한 세례자, 그리고 12사도가 자리하고 있다. 네 번째 단계는 ‘준비’를 뜻하는 에티마시아(Etimasia) 단계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빈 옥좌에 대한 경배로 이어진다. 이 단계는 주님의 재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빈 옥좌 위에 성경이나 비둘기, 십자가 등이 있다. 이미 사심판받은 자들이 양쪽에 배치되어 있는데, 왼쪽에는 선택된 이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저주받은 자들의 잘린 시체들이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단계는 다섯 장면으로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장식되어 있다. 왼쪽 두 장면은 천국을 묘사했는데 꽃밭 위에 성모님이 천국의 문 앞에 있고 하단에는 구원받은 영혼들과 함께 아브라함이 묘사되어 있다. 반면 오른쪽에는 저주받은 영혼들로 둘러싸인 사탄이 유다를 잡고 있다.

 

 

라벤나의 모자이크와는 완전히 다른 사실주의적 인물 묘사가 특징

 

이러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최후의 심판은 오랜 역사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여기에 독특한 도상과 표현이 단연 돋보인다.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비잔틴 모자이크의 대표주자인 라벤나의 성당들(5~7세기)에 나타난 인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천천히 살펴보면 모든 묘사에서 비잔틴 교회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사실주의적 묘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러한 단계별 구성과 사실주의적 표현은 그 후 지오토가 그린 최후의 심판(파도바 스크로베니 소성당, 1305년)에 영향을 미쳤고, 이 영향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1536년)으로 이어진다.

 

 

공포심과 두려움이 아닌 부활의 희망을 주는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이 성당에 그려지는 이유는 단순히 성당을 나가기 전 신자들에게 공포심을 상기시키는 도덕적인 경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례의 마지막 페이지를 나타내며 신자들에게 자신들이 가고 싶은 세계를 알고 교회를 떠나라는 의미이다. 곧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 25,46)라는 예수님의 최후 심판에 관한 말씀을 기억하게 한다.

 

- 스크로베니 경당에 있는 지오토의 최후의 심판.

 

 

복원작업으로 인하여 발견된 옛 프레스코화

 

이 성당을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2020년에 일어난다. 2019년 시작된 성당 복원은 약 1년간 88만 유로(한화 12억 원)를 쓰며 떠들썩하게 시작되었는데 2020년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성당 내부의 모자이크 장식 이전 프레스코화들의 조각들이 발견된 것이다. 9세기 프레스코화들로 주제는 대부분 성모님에 관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프레스코화들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이 습기 많은 늪지 위에서 1000년 이상 보존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같은 일이었다. 현재의 성당 이름인 성모 승천 대성당은 11세기에 명명되었는데, 그 이전 성당의 이름은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러한 프레스코화들의 발견으로 이 성당은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이라고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 또한 아직 이 프레스코화들을 대면한 적이 없다. 2020년 귀국해 아직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이탈리아로 가게 되면 바로 토르첼로 섬을 찾을 것이다. 원본들을 대면할 생각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1년 동안 중세 시대에 건립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일곱 성당을 선정하여 이야기를 이어왔다. 이 성당들의 선정 기준은 우선, 이탈리아에 있는 중세 시대 건축된 것이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모두가 알고 있는 대성당이 아니면서도 성화나 전례 공간의 가치가 충분한 성당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두 필자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가봤던 성당이라는 사실이다.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전공한 현지 가이드와 전례학을 가르치는 신학자가 함께 작업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새롭다고 하겠다. 처음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를 기획하며 의도한 목적은 역사·문화·종교적 가치가 있는 성당의 성화들과 전례 공간을 될 수 있으면 자세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문 단어들을 사용해야 했고, 그 성당에 가봐야 이해가 되는 조건들이 있다는 한계로 인해서 독자들이 때때로 이야기를 이해하기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해외 여행이 자유로워진다면 함께 지금까지 이야기한 성당들을 순례하고 싶다. 그동안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를 열심히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린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8월 8일,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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