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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산 스테파노 로톤도 알 첼리오 성당

77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1-01-11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5) 산 스테파노 로톤도 알 첼리오 성당(Basilica di Santo Stefano Rotondo al celio)


로마 제국 시대 그리스도인의 토착화 느낄 수 있는 원형 성당

 

 

산 스테파노 로톤도 성당 회랑에 있는 바로크식 감실.

 

 

첼리오 언덕에 있는 오래된 원형 성당

 

다소 긴 이름인 산 스테파노 로톤도 알 첼리오 성당은 교회 최초의 순교자 성 스테파노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로톤도(rotondo)는 둥글다는 뜻의 이탈리아어지만 건축에서는 기본적으로 돔이 있는 원형건축물을 뜻한다. 알 첼리오(al celio)는 옛 로마를 구성하는 일곱 개의 언덕 중 하나인 첼리오 언덕에 있다는 뜻이다.

 

5세기경 성 심플리치오(재위 468~483) 교황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처음에는 알려져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와 대대적인 성당 복원작업 중 두 개의 로마 시대 주화가 발견되면서 세베루스 황제 시대(461~465년)의 성 레오 1세(재위 440-461) 대교황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었음이 제기되었다. 또한, 이때 로마 시대의 미트라 신에게 바쳐진 신전 터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 후 523년~529년에 성 요한 1세 교황과 성 펠릭스 4세 교황에 의해 내부 장식인 모자이크가 추가되는데 아쉽게도 현존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모자이크 장식들은 19세기에 추가되었다. 또한, 테오도르 1세 교황(재위 642~649)은 로마 성벽 밖에 위치한 카타콤바에서 순교자 성 프리모와 성 펠리치아노의 유해를 안전상의 이유로 이 성당으로 모셔와 새로운 경당을 만들어 안치했다.

 

프리모와 펠리치아노 성인의 경당.

 

 

이교의 신들에게 제사를 거부하여 순교한 성 프리모와 성 펠리치아노

 

성 프리모와 성 펠리치아노에게 바쳐진 경당 앱스에는 중앙에 자비로운 그리스도와 꽃과 보석으로 장식된 십자가, 왼쪽에는 성 프리모, 오른쪽에는 성 펠리치아노를 묘사한 아름다운 7세기 모자이크가 있다. 이 모자이크에서 여행용 망토를 입은 두 성인은 녹색 잔디밭과 수많은 꽃 위에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성인들은 어떻게 순교했을까 궁금해진다. 야고보 다바라지네가 쓴 「황금전설」에 따르면, 프리모와 펠리치아노는 신전 사제들에 의해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에게 고발당했다. 그 이유는 이교의 신들에게 제사 드리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잔혹한 매질과 녹인 납을 마시게 하는 고문에도 신앙을 잃지 않았고, 사자 우리에 넣었는데, 사자들이 오히려 두 사람 앞에 어린 양처럼 몸을 쭉 펴며 엎드렸다고 한다. 결국에는 참수를 당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명예롭게 장사를 치렀다고 한다. 그때가 287년경이었다.

 

 

한때는 버려졌던 성당이 대대적인 복원으로 현재의 모습 갖춰

 

이 성당의 대대적인 복원은 니콜라오 5세(재위 1447~1455) 교황 때 이루어진다. 완벽한 복원을 위해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조각가이자 건축가였던 베르나르 로셀리노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한다. 이때 현재의 성당 내부에 링이 하나 더 추가되고, 입구와 주요제단들이 만들어지면서 중앙집중식 구조의 성당에 르네상스 건축의 요소가 결합한다. 전체적으로 현재의 모습은 세 개의 원형 위에 그리스 십자가를 얻은 형태로 그리스 십자가 형태의 구획이 내부에 생기면서 각각의 자리에 경당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내부는 완벽한 중앙집중식 구조가 돋보이며 그 이전 시대의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들과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 산 스테파노 로톤도 성당 전경.

 

 

다양한 순교의 유형들을 그린 34개의 패널!

 

1585년부터 이 성당의 유명한 벽화 작업이 시작되는데 총 34개의 패널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업은 당시 프레스코 화가로 유명했던 포마란치오(Pomarancio)와 템페스타(Tempesta)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처음에 첼리오 언덕을 배회하고 있을 때 혼자 이 성당에 들어갔다가 웬만하면 성당의 장식들, 그중에서도 회화 쪽은 어떻게든 보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이 34개의 장면은 끝까지 보지 못하고 나온 기억이 있다.

 

그 패널들은 하나같이 끔찍하고 잔인하며 묘사 또한 사실적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엄청난 공포심을 느끼게 한다. 이 프레스코화의 내용은 거의 모든 고문의 유형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큰 바위 아래에 짓눌려있고, 사자들이 사람의 몸을 한 조각씩 먹어치우고 있고, 또한 화형당하는 장면을 비롯해 조금씩 불구가 되어가는 장면 등이 34개의 패널을 채우고 있다. 이것은 모든 유형의 순교 장면을 묘사하는 것인데 이는 순교의 정신을 고양하기 위한 목적과 가해진 처벌의 공포를 반영한다. 1500년대 말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은 이 성당을 게르만-헝가리 신학원이 관리하도록 하였고, 이 신학원을 운영하던 예수회에 의해 이 프레스코화 연작이 계획되었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전하기 위해 가장 먼 곳으로 보내질 수도자들이 교육받으며 매일 가까이했을 이 프레스코화 연작들은 나에게는 등골이 오싹했던 단순한 공포심을 주었지만, 그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갔을 것이다. 아마도 순교를 각오한 선교 정신을 고취하지 않았을까 한다.

 

 

교황이 순회 미사를 하던 성당이 이제는 혼인 미사를 하는 성당으로

 

5세기 로마에는 43개의 교회에서 거행되는 89번의 순회 미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때의 전례력을 살펴보면 성 스테파노 축일에는 이 성당에서 순회 미사를 교황 집전으로 거행했다고 한다. 전례 공간에서 특이한 것은 1580년 예수회 총장 라우레타노 신부에 의해 설치된 팔각형 형태의 낮은 울타리가 중앙 제대를 둘러싸고 있으며, 독서대는 그 담 밖의 기둥 옆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회중들이 이동할 수 있는 회랑을 거닐다 보면 사람 키보다 큰 감실을 만나게 된다. 1613년 조반니 젠트너에 의해 제작된 나무로 조각된 높이가 상당한 바로크식 감실이 제대 위에 설치되었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후에 회랑으로 위치를 옮기게 되었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혼인 미사를 드리기 좋은 옛 성당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바실리카 형태와 원형의 신전 모형을 그대로 성당의 형태로 받아들인 로마 제국 시대 그리스도인의 토착화를 느낄 수 있는 산 스테파노 로톤도 성당이다. 또한, 원형인 성당과 팔각의 울타리 안의 제대는 주님의 부르심으로 모인 공동체인 교회가 ‘주간 첫날’이면서 또한 ‘여드렛날’인 주일에 주님께 드리는 미사를 드리는 데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성당 형태가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본다. 복잡한 로마 시내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전원적인 분위기의 산 스테파노 성당은 산책하다 우연히 만난 보물과 같은 곳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월 10일,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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