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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곰이 살아난 이유는

102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1-01-06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55) 곰이 살아난 이유는

 

 

어느 숲 속에 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사냥꾼들이 몰려와 곰을 모조리 잡아갔다. 그 날 낮잠을 자고 일어난 곰은 자신을 빼고 나머지 곰들이 모두 잡혀간 사실을 알았다. 그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왜 자기만 빼고 나머지 곰들이 모두 잡혀갔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숲 속에서 가장 영리하다고 소문난 여우를 찾아가 이유를 물었다. 여우가 이렇게 말했다. “에구, 이 쓸개 빠진 놈아! 그것도 몰라?”

 

우리는 살면서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을 체험한다. 특히 긍정적 사건보다는 부정적 사건을 접했을 때 그 이유와 원인을 더 궁금해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왜 엄마는 나만 예뻐했을까?”를 묻기보다는 “왜 엄마는 형제 중에 유독 나만 미워했을까?”를 더 궁금해한다. “이 사람은 왜 나를 사랑할까?”라는 질문보다는, “믿었던 사람이 왜 나를 배신하고 떠났을까?”를 더 궁금해할 수 있다. 부정적인 사건을 체험하게 되면 인간은 크게 두 가지 방식 안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첫째 방식은 사건에 대한 원인을 타인이나 환경, 즉 나 이외의 상황에서 찾는 것이다.(外部歸因, 외부귀인) “엄마는 심리적 장애가 있어 나를 차별대우 한 거야!” “그 사람에게 딴 사람이 생겨 나를 배신하고 간 거야!” 라는 식이다.

 

두 번째 방식은 부정적 사건에 대한 이유가 자신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內部歸因, 내부귀인) “내가 못나서 엄마는 나를 싫어한 거야!” “나에게 매력이 없으니 그 사람이 나를 버린 거겠지!” 라는 식이다.

 

하지만 부정적 사건을 체험하면 인간은 대부분 위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귀인양식(attribution styl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부정적 사건의 원인을 찾는 이 경향성은 긍정적 사건을 맞이했을 때 정반대의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자격증 시험에 떨어진 미카엘과 라파엘이 있었다. 시험에 낙방한 이유에 대해 이 둘은 전혀 다른 견해를 가졌다. 미카엘은 시험문제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외부귀인), 라파엘은 자신이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내부귀인). 둘은 재수를 해서 다음 해에 시험에 합격했다. 미카엘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에 붙었다고 자랑을 했지만(내부귀인), 라파엘은 시험문제가 작년보다 쉬워서 운 좋게 붙은 것이라고 겸손을 표현했다.(외부귀인)

 

전통적으로 사회와 종교는 라파엘을 훌륭한 인격자로 인정해 왔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라파엘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보다 미카엘의 성향을 닮은 사람들이 주관적 행복감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카엘은 자신의 타고난 낙관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스스로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반면 라파엘은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비관주의적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라파엘은 깊은 우울증으로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이유로 “잘 되면 내 덕, 안 되면 남 탓”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좋은 일은 남의 공으로 돌리고, 안 좋은 일은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인격자로 인정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생명을 건진 곰이 자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난 이유를 궁금해했다. 이 곰이 라파엘을 닮았다면 아마 신이 자신을 살려주었다거나 운이 좋아서 살아난 것처럼 생각하면서 감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 같은 쓸개 빠진 곰을 누가 데려가겠느냐?”라는 여우의 핀잔 섞인 농담 속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자신의 부족함 혹은 열등감이 때로는 긍정적인 삶의 자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못난 자신처럼 보여도 비관주의에서 벗어나 낙천주의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월 1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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