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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1년 3월 2일 (화)사순 제2주간 화요일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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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교부들의 신앙: 대 그레고리오 - 영혼의 의사 목자들의 직무

59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11-24

[교부들의 신앙 – 대 그레고리오 2] 영혼의 의사 목자들의 직무

 

 

코로나19의 현실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를 새롭게 보게 됩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여겼던 나라들의, 전염병으로부터 자국민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의료 체계나 사재기로 생활용품이 동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오히려 우리를 새롭게 평가하게 되었지요.

 

눈을 나라 안으로 돌려보면, 일반적으로 존경받고 권위가 있다고 여겨지던 사람들의 민낯을 확인하는 충격도 컸습니다. 8월 15일 광화문 집회로 그동안 수그러들었던 코로나19를 재확산시켜 국민적 지탄을 받은 일부 개신교 성직자들, 온 나라가 전염병과 싸우느라 애쓰는 와중에 파업을 강행한 의사들의 모습은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사회의 지도층을 이루는 사람들이라 여겼던 탓에 충격도 더 컸던 것 같습니다.

 

590년 교종직에 오른 대 그레고리오의 가장 큰 과제는 안팎의 위험으로부터 이탈리아를 지켜 내는 것, 성직매매와 성직자들의 타락을 바로잡는 것, 그리고 앵글로색슨족의 개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두 번째가, 그리스도인 백성을 돌볼 책임을 지닌 성직자들에 관한 일인 만큼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대 그레고리오는 그리스도인이 혼인한 이들, 수도승, 성직자의 세 그룹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교종 직무를 시작하면서 저술한 「사목 규칙」(Regula pastoralis)은 바로 이 셋째 그룹, 성직자들을 위한 작품입니다.

 

 

성직자가 된다는 의미

 

주의 깊게 배워 습득하지도 않은 기술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영혼을 다스리는 일은 기술 중의 기술, 예술 중의 예술(ars artium)일진대, 무지한 자들이 목자의 직무를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경솔한 노릇입니까? 영혼의 상처는 육신의 상처보다 더 깊이 숨겨져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영적 삶의 규칙을 모르면서 영혼의 의사를 자처하는 이가 많습니다. 오히려 약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육신의 의사가 되기를 부끄러워할 터인데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 시대의 모든 권세가 교회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까닭에, 거룩한 교회 안에도 영혼을 다스리는 권위와 영광을 얻으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스승이 되고 다른 이들 위에 서기를 원합니다. 진리이신 분께서 말씀하시듯이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마태 23,6-7) 좋아합니다. 그들은 그저 교만으로 그 겸손한 스승의 위치에 오른 만큼, 그들이 받아들인 사목적 돌봄의 직무를 맞갖게 수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연고로 배워 익힌 것과 다른 것을 가르치며 혀가 꼬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이들을 두고 예언자를 통하여 한탄하십니다. “그들이 임금들을 세웠지만 나와는 상관없고 대신들을 뽑았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다”(호세 8,4). 실상 하느님의 부르심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망으로 그 자리에 이른, 아무런 덕도 뒷받침되지 않은 이들은 최고 통치자의 뜻을 실현하지 못하고 자기를 뜻대로 장악합니다. … 그러므로 기적을 행하신 뒤 당신에게 오는 이들에게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루카 13,27)

 

예언자들을 통하여 “목자라는 자들이 알아듣지도 못한다.”(이사 56,11) 하고 말씀하실 때 진리이신 분의 목소리는 목자들의 무지를 신랄하게 꾸짖으십니다. 또 주님께서는 이렇게 그들을 쫓아내십니다. ‘율법을 다루는 자들이 나를 몰라본다’(예레 2,8 참조). 그리고 진리이신 분께서는 그들이 당신을 모른다고 한탄하시며 당신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권한이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주님의 것을 모르는 이들을 당연히 주님께서도 모르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사람도 인정받지 못합니다.”(1코린 14,39)라는 바오로의 말이 이를 증언합니다.

 

당연히 이러한 목자들의 무지는 그들을 따르는 이들까지도 응징합니다. 그들에게 맡겨진 책무가 얼마나 되든지 간에, 목자들이 인식의 등불을 지니지 못한 것도 흠이거니와 바로 그 무지로 말미암아 그들을 따르는 이들도 엄격한 심판을 받아 비틀거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진리 자체이신 분께서는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마태 15,14).

 

시편 기자가 자기 영혼의 원의가 아니라 예언자로서 “그들의 눈은 어두워져 보지 못하고 그들의 허리는 늘 휘청거리게 하소서.”(시편 69,24)라 탄원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모든 이 앞에 자리하는 눈은, 걷는 이들을 인도할 과제를 받은 이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속하여 뒤를 따르는 이들은 허리가 됩니다. 이처럼 인도하는 이들이 인식의 빛을 잃을 때, 따르는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죄의 무게에 짓눌려 허리가 굽게 됩니다(「사목 규칙」, 1,1).

 

길을 인도하는 이들이 제 역할을 못할 때 그를 따르는 이들 또한 등이 휜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대 그레고리오는 이 작품을 통해 이상적인 목자의 상을 제시하려 했습니다.

 

목자는 침묵에 신중하고 말로는 도움을 주며 모든 이에게 사랑으로 다가가고 관상에 있어 그들에게 칭송받아야 합니다. 선한 이들에게 겸손으로 벗이 되고 정의를 향한 열정으로써 악인의 악덕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해야 합니다. 외적인 일이 급하다고 해서 내적 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내적인 삶을 산다는 핑계로 현세의 일을 버려두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사목 규칙」, 2.1).

 

 

하느님의 종들의 종

 

교회와 세상을 쇄신하려 동분서주한 성인 교종의 말씀 앞에서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떤지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섬김을 받으러가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했던 대 그레고리오는 스스로를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라 칭했던 분으로도 유명하지요. 자신을 낮추는 일은 그에게 사목자의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사람과 천사들의 창조주께서 사람을 위하여 사람의 모습을 취하셨다면, 한 사람이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을 낮추는 것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자신을 맞출 때 영혼은 아무것도 잃지 않습니다. 하느님 사랑 때문에 낮은 것을 꺼리지 않고 겸손하게 낮아지는 만큼 저 천상의 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욥기의 도덕적 해설」, 19,45).

 

 

개인적 성화를 넘어

 

595년 라벤나의 세쿤두스 부제에게 쓴 편지는 마치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이는 마리니아누스 주교가 수도승으로 살던 습관대로 기도와 묵상에만 몰두하여,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사람들을 격려하는 목자의 모습에서 멀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쓴 편지입니다.

 

효과가 있을 만한 말로 그를 깨우십시오. 우리 형제 마리니아누스가 잠들어 있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줄 것이 없다고 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빈손으로 보내다니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한 부끄러운 일(스캔들)입니다. 그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하십시오. 혼자 물러나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고 성경 읽는 일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팔을 벌려 고통당하는 이들을 돕고 다른 이들의 아쉬움을 내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교라는 이름은 헛되기 때문입니다(「서간집」, 6,36).

 

* 황인수 이냐시오 – 성바오로수도회 수사 신부. 수원가톨릭대학교와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아우구스티노 교부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성바오로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20년 11월호, 황인수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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