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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새해 첫날의 단상(斷想)

72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1-01-11

[레지오 영성] 새해 첫날의 단상(斷想)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며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그들에게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민수 6,24-26)

 

신축년(辛丑年) 새해 첫 날 전례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며 첫 번째 독서인 민수기를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는 약속을 듣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겠다는 축복이란 소중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야곱이 형 에사오의 축복을 사기를 쳐서라도 가로챌 정도로, 동생에게 사기당해 축복을 빼앗긴 에사오가 저에게 줄 더 이상의 축복은 없느냐며 이사악을 붙들고 울부짖을 정도로(창세 27,1-40참조) 하느님의 축복은 소중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수고로움에 열매를 맺어주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는 모든 노고와 땀 흘린 수고로움에 그 열매가 없다면, 얼마나 허망한 일이겠습니까?

 

라틴어에서 과일의 열매를 나타내는 ‘fructus’(축복)라는 표현은, ‘아들’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으로 사용이 되어왔습니다. 여인의 태를 열어주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가 복된 여인이며,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까닭도 바로 태중의 아드님 때문입니다. 아울러 우리의 신앙적이고 영적인 열매를 맺게 되는 것 역시, 하느님의 축복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신축년(辛丑年) 새해를 열며, 첫 날 전례에서 바울로 사도께서도 두 번째 독서를 통해, 하느님께서 축복을 보내시어 당신 아드님을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우리를 구원해내시고 또한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내려주심으로 우리는 당신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갈라 4,4-7).

 

그래서 우리는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 우리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전해주신 우리 주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시며 영화로우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은 마리아의 깊은 신앙심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함으로써 온전히 자신을 바쳐 헌신적으로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계명을 실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다.”(갈라 4,4)는 바오로 사도의 지적처럼 루카복음은 “태어나신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으며 이름을 지었다”(루카 2,21)고 전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당신을 바로 보고, 바로 듣는 맑은 눈과 밝은 귀를 주시길

 

“닭이 우니 새해의 복이 오고 개가 짖으니 지난해의 재앙이 사라진다”라는 덕담을 떠올려 봅니다. 사뭇 닭과 개의 역할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이 땅 위의 그 많은 뾰족 예배당, 성당, 사찰을 드나드는 신도들이 세상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 도둑을 보고 짖는 개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데…. 베드로의 배신을 일깨워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새벽을 여는 닭의 울음도 교회의 사명일진대…. 그리고 하느님 자녀로서 냉혹하고 각박한 이 세상에서 위기의식을 지니고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양순하게 대처하며 살아가는 것도 신자로서의 자세일 텐데…. 세상에서 교회의 부르짖음은 그저 허공을 맴돌 따름입니다.

 

오늘의 이 시대가 비참하리만큼 어둠의 세력으로 캄캄한 밤이 되어가는 현실에, 광명의 세상을 위해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과 도둑을 지키는 영리한 개의 짖음뿐 아니라 성실하게 깨어 있기 위해 온갖 어려움도 이겨내려는 질긴 생명력과 근면성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신축년(辛丑年) 소띠 해에 농경을 본으로 삼아 온 우리 민족에게 오랜 옛적부터 전해 오는 소의 심상(心像)은 ‘소걸음은 느리나 능히 천리를 간다’라는 말도 있듯이 우직・성실・희생의 표본이었음을 헤아려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소는 희생제물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해 첫 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에, 어머니 마리아를 불러 봅니다. 지금껏 우리는 어머니 마리아를 입으로만 부르며 보잘것없는 믿음으로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기쁠 때에 감사하지 않았고, 슬플 땐 희망하지 않았으며, 편리한 운명과 악수하면서 그렇게 적당히 살아왔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진정 죄가 되는 까닭도 알지 못한 채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새해에는 우리에게 당신을 바로 보고, 바로 듣는 맑은 눈과 밝은 귀를 주시고 삶이 고달파도 감사할 수 있는 입을 주십시오. 당신만이 머무시는 내 마음이 헛된 우상의 동굴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오욕칠정(五慾七情)에서 탈출해야 하겠습니다. 신축년(辛丑年) 새해를 출발하며, 삼구(三仇 세상, 육신, 마귀)를 대적하려는 경계태세로 우리의 영혼 문간에 찾아오는 온갖 부정함의 유혹을 멀리하는 단호한 기백으로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허영에 들뜬 우리의 마음일랑은 모조리 흔들어 없애 주시고, 소처럼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는 힘을 어머니께 간구해 봅니다. 올해 우리의 삶 또한 소처럼 하느님께 올리는 향기로운 희생제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새해에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공동체에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천주의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해 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월호, 이동훈 시몬 신부(서울 무염시태 Se. 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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