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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사유하는 커피44: 겨울 있어 커피나무도 꽃을 피운다

64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1-04-01

[사유하는 커피] (44) 겨울 있어 커피나무도 꽃을 피운다


사순절에 광야를 생각한다

 

 

3월이면 광야를 생각하게 된다. ‘재의 수요일’에서 시작해 40일간 이어지는 사순절이 예수께서 겪은 ‘광야의 유혹(Temptation of Christ)’을 떠오르게 하는 까닭이다. 사실 역사적 시기를 따진다면, 광야에서 40일간의 단식이 바로 부활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예수께서 가정생활(私生活)에서 떠나 공적으로 복음을 전한 3년간의 공생활(公生活)이 있다. 그럼에도 부활의 신비를 이야기할 때, ‘십자가 수난’만큼이나 ‘광야의 유혹’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 때문이겠다.

 

광야는 라틴어로 데세르툼(deser tum)에서 유래했으며, 영어로는 사막을 뜻하는 ‘데저트(desert)’로 표기한다. 사전적으로 데세르툼은 ‘버려진 곳’ 또는 ‘지나갈 수 없는 곳’으로 풀이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광야의 개념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바싹 마르고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사막에 비해, 광야는 감성적으로 보다 희망적인 곳으로 다가온다.

 

모세가 이끈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이집트 추적대를 따돌릴 은신처가 됐고, 엘리야에게 광야는 위기에서 목숨을 구하는 반전의 장소가 돼 주었다. 요한 세례자와 예수, 사도 바오로의 진정한 삶 역시 광야에서 시작됐다. 그러므로 광야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거듭나는 공간이다. 한국인의 정서에도 광야는 훗날 초인이 백마를 타고 올, 그리움 같은 희망이다.

 

구약성경에 히브리어로 적혀 있는 광야는 ‘미드바르’이다. ‘~로부터’라는 전치사 ‘미’와 ‘말하다’는 뜻을 지닌 ‘다바르’가 합쳐졌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광야는 단지 장소가 아니다. 말씀으로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거룩한 존재 자체, 곧 하느님을 의미한다. 광야의 이런 추상성은 현실에도 활용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아이비리그로 손꼽히는 다트머스대학교의 라틴어 모토이다. 이 학교의 심벌에는 “복스 크라만티스 인 데세르토(VOX CLAMANTIS IN DESERTO)”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목소리”라는 뜻이다.

 

‘광야’는 정서적으로 ‘황야’와는 다르다. 황야는 ‘버려두어 거친 들판’이라거나 ‘인적없이 삭막한 벌판’이라는 식으로 부정적이다. ‘황야의 무법자’라는 1964년 작 영화 제목만 봐도 그렇다. 미국 작가 잭 런던의 소설 ‘황야의 부르짖음’에서, 황야는 배신과 복수가 난무하는 세상을 은유한다. 황야나 사막이 광야가 되기 위해선 생텍쥐페리가 사유한 것처럼 어딘 가에 샘(희망)이 숨겨져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광야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나약함을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홀로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의 고난과 역경만이 감도는 곳이라면 광야가 아니다. 스스로 골방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는 자로 하여금 홀연히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게 만드는 공간이어야 한다. 광야는 초인의 영역이요, 인간에게는 신에게 의탁하는 회개의 시공간이다.

 

모든 생명이 사라진 듯 보였던 잿빛 동토에도 3월이면 어김없이 파릇파릇 생명이 움튼다. 우리의 의지로 겨울을 물리고 봄을 부를 수 없지만, 누구도 불안에 떨지 않는다. 신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계절처럼 광야의 고난 뒤에 부활의 영광이 따른다. 예수께 광야와 부활은 동치(同値)이다. 광야가 없으면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으면 광야도 없다.

 

광야는 모든 생명에게 같은 의미일 성싶다. 커피나무에게 겨울 같은 기온 하강이나 사막 같은 건조기가 없으며 꽃을 피우지 못한다. 냉혹한 환경이 커피나무로 하여금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도록 자극을 주어야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커피나무에게 이러한 고난이 극복 여부와 상관없이 완성을 이루기 위한 축복인 셈이다. 우리에게도 광야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3월 28일,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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