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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선교 영성 (3) 증거의 삶

198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1-06-06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선교 영성 (3) 증거의 삶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을 통한 증거는 선교의 참된 효과를 거두는 데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된다. 복음을 받아들이려는 사람은 복음을 선포하는 이가 생활하는 모습을 직접 보며 마음의 문을 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사에게는 복음의 내용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증거의 삶이 요구된다. 최양업 신부의 편지들을 살펴보면 그가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최양업 신부가 사목할 당시 조선 땅의 외국인 성직자들은 박해로 인해 사도적 활동에 많은 제약과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이는 방인 사제인 최양업 신부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의 생활은 스승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대로 “항상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나 진배없는 상태”였다. 성직자인 그는 박해자들의 표적이 됨으로써 신자들보다 더 큰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속적인 박해 속에도 위축되지 않았고, 그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갔다. 최양업 신부는 외교인들로부터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목자의 사랑으로 신자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찾아가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집전해 주었다.

 

최양업 신부에게서 복음의 실천적 응답은 가난의 삶에서 드러난다. 그가 스승 신부에게 쓴 편지에는 가난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엿볼 수 있다.

 

“신부님께서 저에게 아쉬운 것이 있으면 청하라고 말씀하셨는데 … 아쉬운 것 투성이어서 어느 것을 먼저 청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무엇이든지 보내만 주시면 저에게는 다 필요하고 도움이 되겠습니다.”

 

최양업 신부는 복음적 가난의 삶을 실천하며 살았기에 자신과 같이 가난하고 고통받고 있는 신자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가까이에서 삶을 나눌 수 있었다.

 

베르뇌 주교는 최양업 신부가 세상을 떠난 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그는 12년간 거룩한 사제의 본분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사람들을 감화하고 성공적으로 영혼 구원에 힘쓰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최양업 신부가 자신의 삶 전체를 복음의 선포자로서 훌륭한 증거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참조

조규식, 「최양업 신부의 영성」, 『교회사연구』 14, 한국교회사 연구소, 1999.

여진천, 「최양업 신부의 삶과 영성」, 천주교 서울대교구 순교자 현양회, 2006.

양업교회사연구소,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2018.

 

[2021년 6월 6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의정부주보 3면,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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