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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헬렌 켈러가 주는 일상의 감동

72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1-01-12

[허영엽 신부의 ‘나눔’] 헬렌 켈러가 주는 일상의 감동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고마운 앤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 길로 나가서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신학교 때 한 선배가 나에게 소개해준 헬렌 켈러의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란 글의 일부입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 글을 읽고 코끝이 찡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헬렌 켈러 여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 장애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장애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의지로 성공한 사람을 예로 들 때 흔히 헬렌 애덤스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 여사를 꼽습니다.

 

그녀는 장애를 훌륭히 극복한 현대의 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은 자신의 한계를 훌륭하게 극복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헬렌 켈러의 생애는 모든 사람들에게 의욕과 희망 그리고 진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하루살이처럼 일평생 나의 생활은 매우 바빴다”

 

헬렌 켈러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태어난 지 19개월 되던 해 성홍열이나 수막염이라 의심되는 병으로 위와 뇌에 심한 출혈이 생겼습니다. 그녀의 병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시각과 청각을 그만 잃고 말았습니다. 헬렌이 7세 때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보스턴의 한 시각장애 학원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헬렌은 평생의 교사가 될 앤 설리번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당시에 앤 설리번은 겨우 21세였습니다. 사실 앤 설리번도 5세 때 눈병으로 시력을 잃고 극빈자를 위한 구제원에서 4년 동안이나 지내면서 비참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나중에 수술로 시력을 회복했지만 평생 실명의 불안과 싸우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앤 설리번의 이러한 체험이 헬렌의 교육에 도움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앤 설리번은 아이들이 어떻게 해서 말을 배우는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러다가 앤 설리번은 엄마가 아기에게 말을 걸듯이 끊임없이 헬렌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말을 써 주었습니다. 헬렌도 마찬가지로 손가락 말로 대답했습니다. 헬렌이 발성법과 입술로 읽는 독순법을 습득한 것은 비로소 30세가 되고 나서였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는 손바닥과 손가락이 헬렌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헬렌은 1904년 하버드대학 래드클리프 칼리지를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3중장애의 몸으로 대학 교육을 마친 세계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헬렌이 어떻게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요? 역시나 앤 설리번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앤 설리번은 학교 강의실에서 언제나 곁에 앉아 강의를 손가락 말로 헬렌에게 전해 주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내용을 점자로 다시 적어 읽게 하였습니다. 강의 내용은 모두 설리번의 손가락을 통해 헬렌의 두뇌에 전달되어, 대학 교육의 전 과정을 이수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헬렌의 생애에서 앤 설리번의 존재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헬렌은 왕성한 학습 의욕을 발휘하여 계속 말을 배워 나갔습니다. 정상인이 말을 배우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단어를 배웠습니다. 헬렌의 학습 능력이 좋았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녀가 맹인이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집중력 때문이었습니다. 헬렌은 깨어 있는 동안에는 1분1초라도 아껴서 지식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활동했습니다. 헬렌은 스스로 “하루 동안 살고 마치는 하루살이처럼 일평생 나의 생활은 매우 바빴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헬렌은 자신의 삶에 대해 “무엇이든지 강력하게 바라는 마음만 있다면 반드시 어떻게든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시간인지 느껴야

 

우리는 지난 2020년을 코로나19로 큰 어려움과 고통의 삶을 살아왔고 역시 진행 중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고 듣고 말하고, 그리고 걷고 뛰고 먹는 일상생활에 대해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일상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니까.

 

우리에게 일상적인 것들, 또한 늘 우리 주위에 있는 가족, 친구, 은인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늘 우리 주위에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느 시간이 오면 홀연히 우리의 곁을 떠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실하게 깨닫는다면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는 보기가 어렵고, 듣기가 어렵고, 걷고 말할 수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시간인가요. 지금 한번 깊이 숨을 쉬어보면서 그 숨을 한번 느껴보아야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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