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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2: 1824년 조선 교우들이 교황께 보낸 편지를 접하다

164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1-30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 (2) 1824년 조선 교우들이 교황께 보낸 편지를 접하다


제가 주님의 선교사가 되어 조선의 밀알이 되겠습니다

 

 

1824년 조선 교우들이 레오 12세 교황에게 쓴 편지의 라틴어 번역본. 이 편지를 번역한 움피에레스 신부가 마카오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그 내용을 전했고, 브뤼기에르 주교는 처음으로 자신이 조선 선교를 자원하겠다는 뜻을 카르카손교구 총대리 귀알리 신부에게 쓴 편지에서 밝힌다.

 

 

조선 교우들이 레오 12세 교황께 보낸 편지를 접하다

 

“중국 동북쪽에 조선이라 불리는 왕국이 있습니다. 지금 세기(19세기) 초반에 북경에서 개종한 어느 조선인 청년의 열성으로 천주교가 이 나라에 전래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자기네 동포들의 사도가 되어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습니다. 자신의 열성으로 그는 순교자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교회의 도움을 얻지 못한 신입 교우들은 북경의 주교에게 사제를 보내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그 고위 성직자는 사제 한 명을 조선의 신입 교우들에게 파견하였고, 그는 이 민족을 개종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도착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붙잡혀 순교하였습니다. 신앙을 받아들인 조선인들은 그때부터 매년 정기적으로 북경에 대표단을 보내어 성직자를 요청했으나 매번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북경 주교는 언제나 그들의 요청을 충족시키는 일이 불가능한 처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교우들은 1817년에 같은 목적을 가지고 로마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들은 올해도 또 편지를 보냈습니다. 제가 마카오에서 만났던 포교성성(오늘날 교황청 인류복음화부) 대표부 신부님은 그 편지에 대해서 말해주셨습니다. 그 신부님은 열의와 용기로 가득 찬 프랑스 사제가 이토록 거룩한 계획에 헌신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바람을 내보였습니다.

 

이 소명을 받을 성직자는 아마도 분명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많은 것을 감내하는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그는 썩 훌륭하게 개종 사업을 이룰 것이며, 몇 해 지나지 않아 순교의 화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몇 번이나 저는 이 민족을 도우러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맡겨진 임지에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임지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면, 마음이 항구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포교성성에서 유럽의 사제들에게 호소하듯이 우리에게도 호소한다면 저는 그 즉시 조선으로 떠나겠습니다.”

 

 

조선의 순교 이야기가 선교사 결심 기폭제

 

저는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Barthelemy Bruguiere)입니다. 교황청 포교성성 직할 선교단체인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로 부임지 방콕으로 가기 위해 자바섬 바타비아(오늘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항구에 머물고 있습니다. 1826년이 저물고 1827년 새해가 떠오르고 있는 지금, 저는 프랑스 카르카손교구 총대리 귀알리 신부에게 이 편지를 쓰면서 처음으로 조선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싶다는 제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사실 저는 1815년 사제품을 받고 카르카손교구 대신학교에서 교수 신부로 재직할 때 리옹에서 발행하는 선교 잡지 「신편 교훈적인 편지들」을 통해 조선의 젊은 학자들이 자발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고, 순교로써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조선에서 전해져오는 장엄한 순교 이야기들은 제가 해외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기폭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시도 조선은 제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인지 동아시아 선교사로 불림을 받고 마카오에 도착한 저는 포교성성 대표부 움피에레스 신부와 프랑스 라자로회 선교사 라미오 신부로부터 레오 12세 교황에게 쓴 조선 교우들의 편지 내용을 들었습니다. 정하상(바오로)과 유진길(아우구스티노)이 1824년 북경 남당 주교좌성당을 방문, 북경교구장 서리 호세 리베이로 누네스 신부에게 교황께 조선에 성직자를 파견해 줄 것을 청하는 편지를 전했습니다. ‘조선 교회의 암브로시오와 그 동료들’이라고 서명한 이 편지는 마카오 포교성성 대표부에 전달됐고, 움피에레스 신부는 얼마 전 자신이 이 편지를 라틴어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문에 해박한 라미오 신부가 움피에레스 신부의 라틴어 번역문 마지막 감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 19세기 초기 마카오 전경.

 

 

조선 교우들, 여러 차례 성직자 요청 편지

 

두 신부는 제게 감동적인 조선 교우들의 편지 내용을 일러주면서 그들이 여러 차례 성직자를 청하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했습니다. 특히 라미오 신부는 1819년 박해로 중국에서 추방되기 전까지 북경에서 사목했기에 조선 교회 사정에 아주 밝았습니다. 또 그는 1811년 조선 교회 밀사 이여진(요한)이 ‘프란치스코와 조선의 다른 교우들’이 서명한 비오 7세 교황께 보낸 한문 편지를 직접 라틴어로 번역해 교황청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제게 조선 교우들이 어떻게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는지, 얼마나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줬습니다. 그리고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한 여러 박해가 어떻게 일어났고 얼마나 많은 순교자가 탄생했는지를 말해줬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제게 가능하다면 프랑스 선교사가 조선에 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간곡하게 전했습니다.

 

움피에레스 신부 역시 맨 앞에 소개한 편지 내용처럼 열의와 용기로 가득 찬 프랑스 선교사가 조선에 가주길 바랐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제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내보였습니다. “조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그 나라를 위해 전심할 수 있는 어떤 수도회일 것입니다. 조선을 중국인 사제들에게 맡긴다면 결국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조선을 북경교구에서 분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동방 선교는 전적으로 프랑스의 몫입니다. 동방의 초창기 주교들 모두, 그리고 이 머나먼 땅을 피로 물들인 선교사들 대부분은 프랑스인들이었습니다. 프랑스 선교사들의 열정으로 동방 선교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658년 파리외방전교회가 창립될 당시 우리 회의 창립자 팔뤼와 랑베르 두 주교는 샴(태국)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파리외방전교회의 창립 이유이자 활동 목적은 동인도와 아시아에서 현지인들이 중심이 된 가톨릭교회를 제대로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라는 명령을 주님으로부터 받은 유일무이한 교회의 참된 자녀들인 우리 가톨릭은 한가로이 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멀뚱멀뚱한 눈으로 이 불행한 동방인들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 성요셉신학교. 라미오 신부 거주지가 인근에 있었다.

 

 

“저 여기 대령했사오니 저를 보내주십시오”

 

성직자를 보내달라는 조선 교우들의 간청을 전해 들은 저는 지금 복음을 처음으로 선포한 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받았던 신앙의 은총을 가련한 조선의 이교 백성들에게 베풀기 위해 곧장 떠나고 싶다는 이 벅찬 감정은 결코 사치가 아닙니다.

 

저는 샴대목구 선교사로 임명돼 그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출발할 당시 저는 베트남 남부 지역에 있는 코친차이나대목구에 배속됐습니다. 마카오에 도착한 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장 바루델 신부는 저를 샴으로 보냈습니다. 샴대목구 선교사 페코와 퓌피에 신부가 최근 잇따라 선종해 그곳 프랑스인 선교사가 대목구장 플로랑 주교 한 분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두 새해를 맞는 기쁨에 들떠 밤을 잊고 있지만, 저는 복잡한 심정에 뜬눈으로 새해 새날을 맞고 있습니다. “당장 굶어 죽게 생긴 사람에게 한 달 뒤에 올 식량은 의미가 없으며, 또 지금 당장 식량이 있더라도 다음 달에 먹을 것이 없다면 결국은 굶어 죽을 것”이라는 비유로 곧바로 성직자들을 보내달라는 조선 교우들의 호소가 제 뇌리에서 떨쳐지지가 않습니다.

 

만약 포교성성이 우리에게 조선 선교를 청한다면 가장 먼저 제가 자원할 것입니다. 이제 조선은 나의 운명입니다. 조선 교우들이 영적 배고픔으로 주리지 않고, 또다시 사제가 없어 자신들이 성사를 받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도록 제가 그들의 밥이 되고 그들 교회의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저 여기 대령했사오니 저를 보내주십시오. 제가 주님의 선교사가 되어 조선의 밀알이 되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월 28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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