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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6일 (금)부활 제4주간 금요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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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존경하올 K 신부님

71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12-07

[허영엽 신부의 ‘나눔’] 존경하올 K 신부님

 

 

신부님, 한해가 저물고 또 한해가 오고 있습니다. 시간처럼 빠른 게 또 어디 있을까요?

 

건강으로 힘들어하셨는데 선종하신지 벌써 몇 번째 계절이 바뀌었네요. 신부님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하느님의 나라는 어떠하신지요?

 

저도 신부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해를 되돌아보면 이렇다 할 열매는 보이질 않아 초조하기조차 합니다. 특히 올해는 미증유의 사건 코로나19로 온 세계의 시계가 멈추어선 것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합니다.

 

언젠가 그러셨죠? 신부님,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고~~~

 

물론 그 흔적은 기쁨이나 행복, 고통이나 상처로 구별된다고 하셨죠.

 

그 누구와의 만남이든 상처나 고통을 주기보다는 작은 기쁨과 도움이 되는 만남이 모두의 바람일거예요.

 

사실 모든 만남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신비가 숨 쉬고 있는 것 같아요. 운명 같은 것 말이에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인연을 맺고 시간이 흘러 헤어지고….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것이 만남의 신비입니다. 사람은 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죠. 만남의 의미는 참으로 일생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르신들이 인복이 가장 큰 복이라 하셨던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신부님, 지금 생각해 보면 신부님을 만났던 것은 큰 행운이었어요. 사람을 만나서 함께 생활하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약점이 더 눈에 잘 띄고 처음엔 몰랐던 모습에 실망도 더 하기 마련이지요. 신부님과의 만남은 그 반대였어요.

 

신부님은 참으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님처럼 한 번에 한사람, 만나는 순간 그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모습은 참 경외롭기까지 했죠. 어떤 사람도 늘 평등하게 같이 대해주시는 고매한 그 인품에는 항상 존경하게 됩니다. 실제로 저는 신부님이 사람들을 대할 때 화를 내시고 얼굴을 찡그리시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어요. 언제나 늘 잔잔한 미소로 대해주시는 얼굴은 보는 이들의 작은 기쁨이었죠. 신부님도 사람인데 왜 화날 일이 없으셨겠어요?

 

 

사제로 되어 가야 하는 존재이어야 한다

 

신부님,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밤, 본당에 아주 어려운 일이 생겨 신자들과 격한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죠. 신부님과 신자들, 또 신자들 사이에 의견 대립이 거세어지고 자칫하면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이었어요. 한 젊은 신자가 신부님께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말을 했을 때 옆에서 보고 있던 저도 무척 긴장했었지요,

 

다른 신자들의 만류에도 그분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감정은 절제되지 않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님은 자리를 뜨시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계셨지요. 오히려 그때 신부님의 모습이 너무 의연하셔서 다른 이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요. 시간이 지나자 신부님께 공격했던 사람들이 감정을 절제하고 결국엔 신부님께 용서를 청했지요. 그런데 신부님은 별로 개의치 않으시고 쉽게 용서해주셨지요. “회의를 하다보면 그럴 때도 있지” 그저 한마디 하실 뿐이었죠.

 

그날 신부님의 모습은 오랫동안 제 기억 속에 쉽게 사라지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인내심과 고매한 인격을 보여주셨기 때문이죠. 모임이 끝나고 사제관 식당에서 저와 마주 앉은 신부님은 “허 신부, 수고했어. 힘들었지? 사실은 나도 무척 힘들었어. 물이나 한 잔 주겠나.” 하시는 것이었어요. 오히려 옆에 가만히 있던 나를 위로하셨지요. 사실 그때 물 잔을 가지러 갔을 때 마음속은 만감이 교차했어요. 햇병아리 새 신부였던 나도 ‘이렇게 힘든 것이 사제 생활이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죽이려고 무지하게 애를 쓰셨던 신부님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거죠.

 

신부님, 살아가면서 사제로 산다는 것, 참다운 사제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게만 느껴집니다. 삶이라는 건, 이론이나 체계가 아니라 살면서 터득되는 현실이기 때문이겠죠. 선배 신부님들을 뵈면, 오랜 시간을 사제직 자체에 머무셨다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숙여져요. 사제도 약점을 지닌 한 인간이죠. 단점을 지닌 채 사제로 살아가기에 많은 실수와 잘못이 필연적이죠. 신부님 말씀대로 신자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사제는 어쩌면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살아있는 성인이 없다”는 외국 속담처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제로 “되어 가야 하는 존재이어야 한다”고 하셨죠? 신부님께서는 “사제는, 특히 우리같이 젊은 사제들은 쉽게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고매한 자세와 높은 이상, 때 묻지 않은 순수, 그리고 끊임없는 자기 항거가 필요하다”고 하셨죠? 바로 그것이 세상의 물질이나 유혹의 억센 도전을 이길 수 있는 힘이라고요. 그러나 한 해 한 해 거듭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려고 하는 안일 무사의 삶과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는 편협함이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으려 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신학교 시절 거듭 다짐하던 사제상과 지금의 나의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죠.

 

 

신부님과의 만남은 축복이었다

 

언젠가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이 저에게 다가오더니 심각한 얼굴로 “신부님, 신부님은 외로우시죠?”하고 묻는 것이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늘 혼자 계시고, 가족도 없으시잖아요.” 그 어린 눈에도 사제의 삶이 고독하게 보였나 봅니다.

 

사실 어떤 선배 사제는 “사제란 스스로 가난과 고독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고까지 했죠. 인간이 고독을 이겨낸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사제들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평생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부님은 저희 모두의 귀감이 됩니다.

 

신부님은 늘 혼자이셨지만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신부님이 외롭게 보이거나 고독해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가끔 용무가 있어서 신부님 방에 들렀을 때 늘 기도하시든가 독서를 하시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혼자 계셔도 늘 넉넉하고 여유 있는 모습은 결코 신부님의 짧지 않은 세월, 각고의 노력의 결과로 생각되어집니다. 신부님은 정말 하느님과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마음속에 주님의 모습을 담고 계십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그립습니다.

 

신부님, 저도 넓고, 깊은 마음의 인간으로 살고 싶습니다. 신부님, 다시 한 번 만남이 축복임을 깨닫고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2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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