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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33: 앙리 드 뤼박 (하)

38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14-02-10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33) 앙리 드 뤼박 (하)

"성찬례가 교회를 만든다"며 미사 참례의 신비 되새겨



노년의 앙리 드 뤼박 추기경.


새로운 신학 방법론, 원천으로 돌아가기

앙리 드 뤼박은 당시 주류를 이루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추종하는 신-토미즘(신-스콜라 신학)과 다른 방식의 신학을 했다. 본디 신??스콜라 신학은 교회를 위기로 몰았던 이성주의(합리주의)에 맞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해야 했기에,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순수 이성(철학)에서 출발해서 호교론적 신학을 펼쳤던 것이다. 그들에게 토미즘(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과 신학)은 당대의 합리주의, 무신론적 이데올로기, 과학지상주의 등 모든 반그리스도교 사상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로 여겨졌다.

이미 레오13세 교황은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Aeterni Patris, 1879)를 통해 모든 신학교에서 토미즘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했고, 토미즘을 최고의 사상이요, '영원한 철학'으로 여기게 했다. 그런데 앙리 드 뤼박과 그를 중심으로 하는 젊은 신학자들, 예컨대 예수회의 게스탕 페사르(G. Fessard), 오귀스트 발랑생(A. Valensin), 이브 몽셔이(Yve de Moncheuil), 앙리 부이야르(Henri Bouillard)와 같은 신학자들과 역사학적 방법론으로 토미즘을 새롭게 해석했던 도미니코회의 슈뉘(M, Dominique Chenu)와 이브 콩가르(Yve Congar) 등은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철학에 바탕을 둔 신학 방법에서 탈피해서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을 신학에 적용했던 것이다.

그를 특징짓는, 교부들에 대한 연구는 단지 과거의 신앙 진술을 반복하거나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교부들이 자기 역사 안에서 어떻게 신앙의 진리를 살아 있는 진리로 파악하고 진술했는지를 역사비평적 방법으로 살핀 다음 그로부터 당대의 문제를 푸는 해결책을 끌어내고 제시하는 것이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원천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은 단지 과거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復古主義)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에 가지고 있던 신앙의 풍요로움을 오늘에 되살리는 것이고, 당대 이성주의에 입각한 신앙 해설이 갖는 위험을 타파하는 것이다. 때문에 드 뤼박은 자신을 '고전적 신학'의 방법과 대립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신학자'로 불리기를 바라지 않았고, 오히려 정당한 의미로 '전통적 신학자'로 불리기를 바랐다.

그럼에도 교회 안에서 기득권을 가졌던 로마의 도미니코회 신학자들(Garrigou-Lagrange)과 프랑스 남부 툴루즈의 신-스콜라 신학자들(Labourdette, Bruckberger et Nicolas)은 그들의 스승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미 성경과 교부를 잘 알았을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토미즘을 연구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고, 드 뤼박의 전통으로의 회귀는 복고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오해했다.
 

외부주의 신학의 극복

앙리 드 뤼박이 일생 싸워야 했던 적은 외부론적 신학방법론이었다. 이 외부론적 신학을 펼친 이들은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신-토마스주의자들이었다. 당시의 신-스콜라 신학자들은 자연의 세계와 초자연의 세계를 완전히 분리하고, 양자가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 구조로 봤다. 또 인간의 이성이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을 넘어서는 기이한 현상으로 보고, 기이한 현상의 사실 자체를 증명하는 데에 만족했다. 당시에는 근대의 이성주의 영향으로 초이성적인 것을 배제하며 이성적인 것만을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초월적 진리인 신앙적 진리를 배제하고 순수 이성적으로만 접근한 다음, 이성적으로 밝힐 수 없는 기적과 예언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증명하는 데 급급했다. 자연적으로 알 수 있는 하느님에 대한 인식도 초자연적인 계시를 통해 더욱 확고해지므로 그리스도교야말로 절대적인 종교로 증명했던 것이다.

이러한 외부론적 신학사상은 드 뤼박이 볼 때 교회의 전통적 초자연성에 대한 이해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 예로 인간 이해를 든다. 인간은 창조 때부터 '하느님 모상'대로 존재하는 것, 다시 말해 이미 초자연적인 목적이 새겨져 있는 것이지 신-스콜라 신학자들처럼 자연적 존재로서 순수상태였던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본성이 파괴된 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의 한순간에 개입해 인간을 구원하심으로써 인간에게 또 다른 목적인 초자연적 목적을 추가로 받게 됐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이렇게 설명하면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은총이 더 부각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순수 자연적 본성을 지닌 인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설명은 역사적 실재와는 무관한 추상적 설명일 뿐이다.

드 뤼박의 주장은 이렇다. 성경과 교부들의 일관된 이해에 따르면, 인간은 여러 자연적 존재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본래 하느님을 향하도록 창조된 하느님의 모상이고, 초자연적인 것으로 향하는 하느님의 영을 풍부하게 받았으며, 하느님과 만남을 통해 자기 인격을 완성하는 존재다. 인간의 최종 목적은 하느님과 영적 일치를 이루는 것이며, 하느님을 직접 뵙는 것(至福直觀)이고, 하느님의 신적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는 자연적 존재로 보이는 인간 안에 이미 초자연적인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의 '하느님을 뵙고자 하는 자연적 열망'이라는 교리를 통해 강조했다.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초월성

그의 이러한 외부론적 사상의 극복은 그리스도교 이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당시 역사학의 발달은 그리스도교를 포함해 모든 종교를 역사학적 입장에서 다뤘다. 이들은 외부론적 신학자들이 구축한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을 부정했다. 역사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자체도 인류 역사 안에 나타난 하나의 종교이기에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는 절대성, 계시 종교로서의 초자연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보았다. 드 뤼박은 이를 초자연성에 대한 그릇된 이해로 여겼다. 초자연성은 저 멀리 다른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한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초월성은 내재적 초월성으로서 역사의 시작부터 역사의 종말까지 역사 안에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말한다. 하느님을 저 세상에 홀로 계시거나 인간의 마음속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 구체적으로 살아 계시면서 역사를 이끄시는 영(靈)으로 이해했다(「영과 역사」, 1950). 그리스도교는 역사 안에서 발전해 왔다는 면에서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반쪽만을 본 것이다. 세상을 창조하고 세상에 숨어 계시면서 역사를 이끄시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나타남을 이루신 사건이라는 측면에서 그리스도교는 신적인 것이며 그러한 면에서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초월성은 '외부적 초월성'이 아니라 '내부적 초월성'이다. "사상이나 신조들의 계보로 촘촘히 짜인 조직을 가로질러 균열이나 찢김도 없이 새로운 영, 곧 성령이 지나갔다. 성령은 부드럽게 스며들어왔으나 강력하게 드러나게 했다. 성령은 인간의 역사를 관통했고 그리하여 모든 것이 변했다.… 이것은 진정한 창조다. 그리스도의 영이 온전히 새로운 그리스도의 종교를 세웠다."


교회의 신비, 성찬례가 교회를 만든다

그러므로 드 뤼박은 교회를 숙고하며, 교회를 단지 교리체계나 사람의 조직으로 보지 말고, 그것을 가능케 한 하느님 활동으로 볼 것을 강조했다. 교회가 신자 모임으로만 여겨지는 것에 대항해서, '교회'라는 용어 자체가 부름을 받아 모인 것임을 강조하며 모임이라는 결과보다 그것을 가능케 한 부름이 더 근본적인 것임을 자주 상기시킨다. 그는 교회의 여러 표상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신비체인 교회의 표상을 강조했다. 그리스도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매일 드리는 미사, 성찬례와 교회를 말하면서 "성찬례가 교회를 만든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성찬 거행으로 축성된 그리스도의 몸(성체)을 우리가 영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성찬거행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를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룬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도 바오로가 말한 대로 종말에 이뤄질 사건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에페 1,9-10).

이 종말에 이뤄질 은총이 우리가 매일 드리는 미사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회는 구원의 수단, 아니 위대한 구원의 수단이며 동시에 창조의 목적, 아니 창조의 궁극적 목적이다. 교회는 가시적인 몸이며 동시에 신비롭고 영원한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에 이르는 길이요 동시에 이 길의 종착점인 생명 자체이시다. 교회를 이와 같이 생각할 때 교회는 구원의 길이요 동시에 종점이다. 교회는 구원의 실재인 영적인 단일체이다." 우리가 미사에 참여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교회를 이룬다는 신비를 오늘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앙리 드 뤼박은 초기부터 신학과 교회의 쇄신을 이룬 신학자였다. 성경과 교부들에게서 전해진 그리스도의 진정한 새로움을 깊이 숙고하며, 그리스도의 빛으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면서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드 뤼박은 한국 신학자들이 배워야 할 신학자이다. 특히 드 뤼박은 추상적인 신학을 펼쳤던 신-스콜라 신학에서 벗어나 신앙 자체가 추상적인 진리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삶과 실천적 진리이며, 우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교회는 영원한 새로움이신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며 그로부터 오늘의 쇄신을 이끌어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2월 9일, 곽
진상 신부(수원 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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