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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8일 (목)부활 제3주간 목요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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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그 힘든 사제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75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1-07-02

[허영엽 신부의 ‘나눔’] 그 힘든 사제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 1983년 11월 허영엽 부제 <송별사 1983년 가을, 신학교 송별음악회에서>

 

 

얼마 전 서류 박스를 정리하다가 갱지에 쓴 글을 발견했습니다. 벌써 오래전 신학교를 떠나기 전 송별음학회에서 부제반 대표로 읽었던 송별사였습니다. 빛도 누렇게 변한 갱지 위에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을 읽다 보니 감회에 젖게 되었습니다. 마치 그날로 내 생각은 마구 날갯짓을 해서 모든 후배 학년들이 돌아가며 합창을 불렀고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내가 나가서 감사의 인사를 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쉽고 감사한 마음들이 엉킨 채 떨리는 목소리가 성당에 울려 퍼졌습니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아닌 척 참으면서 인사말을 계속했던 것 같습니다.

 

 

낙산을 떠나면서…

 

오래전부터 이날이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는 정든 낙산의 골짜기를 떠나야 한다. 또 한 번 세월의 속임수를 실감한다. 우리는 오래전 인간이 갈 수 있는 수없이 다양한 길 중에서 ‘사제’라는 길을 택해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었다. 그 이후 복음 전파자로 발돋움하며 세상의 빛, 소금이 되고자 기쁨과 눈물의 세월을 견디었다. 사제가 된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행위였다. 그래서 어느 선배는 “사제는 가난과 고독을 스스로 택해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땅위에 가난과 고독을 행복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사제만이 갖는 행복의 철학인지 모른다.

 

그런데 부족하게 헝클어진 이 육신과 영혼으로 사제의 길을 떠나려 하다니. 이것은 분명 두려움과 기쁨인 것이다. 길고도 짧은 세월을, 성소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다. 살얼음을 걷는 것과도 같았던 그 소중한 세월을 이제 추억의 칸 속에 남겨 놓고 싶다. 지나면 헛될 갈매기의 꿈을 좇으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방황하였던가?

 

때로는 나태와 무관심에 치를 떨며 환경의 지배에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었던 시간들. 불의에 항거하여 거리로 뛰어나가 정의를 외쳤던 가슴 떨리는 기억들…. 그날 우리는 조국의 슬픔을 진하게 삼켰었다. 짧은 지식의 자로 하느님을 이리저리 재보며 회의와 갈등도 있었다. 얼마나 많은 밤을 허탈감과 무의미로 인하여 실망과 좌절을 느꼈던가. 이제 비로소 잠재웠던 많은 세월을 돌아보며 지나간 시간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느낀다.

 

시간은 해답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이상과 현실, 나와 공동체, 사랑과 미움, 성과 속의 괴리를 느끼며 갈등하고 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러나 우리는 용기와 희망을 버리지 말자. 현실을 도피하거나 무관심하게 가두지 말고, 삶을 지혜로 가꾸고, 인내로 견디며, 용기로 우리의 삶을 빛내자. 우리의 삶은 한없는 아름다움 이면에 끝없는 노력과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 어느 공동체에서 인간다움의 가치가 아무런 수고 없이 주어졌는가? 비판과 실수는 젊음의 특권이며, 시행착오와 솔직함은 젊음의 자랑인 것이다. 인간의 성숙은 죽는 날까지 매진해야 하는 일생의 과제! 우리는 끊임없이 자기 불의에 항거하여 무관심을 깨뜨리고 아집을 증오하여 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

 

사제직은 결코 영웅적 행위도 실리적인 이기적 행위도 아니다. 나의 응답이며, 헌신이며, 모험인 것이다. 그래서 권력과 명예와 재물의 억센 도전에 의연할 수 있으며, 편협과 고정 관념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순간을 위해 살되 순간적으로 살지는 말자.

우리는 영원을 지향하되 현실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이제 감사해야 할 분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여태껏 이분들의 도움으로 삶을 지탱해 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에게 지혜를 심어주시고 삶의 가치를 가르쳐주신 교수신부님들, 그분들은 진정한 스승이셨고 다정한 어버이셨다. 그래서 부족한 제자들의 비난과 넋두리를 즐거이 참아주셨고 들어주셨다. 얼굴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해주고 깨끗한 빨래를 해주었던 고마운 수녀님과 언니들, 아마도 천사는 그들의 모습을 닮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모든 희생과 노력을 해주신 그분들의 높고 깊은 은혜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못난 선배들을 묵묵히 따라주었던 사랑하는 후배 신학생들, 당신들은 선배들의 약점과 상처를 감싸주며 같이 웃고, 울었었다. 그동안의 선배들의 잘못을 이 순간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해 주길 바란다. 부디 부족하고 못난 선배를 반성의 계기로 삼아 우리보다 더 훌륭하고 착한 사제가 되어주길 바라는 진정한 마음이다. 그밖에 물질적, 영신적으로 도움을 주신 모든 은인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항상 같이 해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낙산을 떠나면서 이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수없이 많은 날들이 회의가 물밀 듯 밀려오고 자주 땅에 주저앉고 싶을 것이다. 기쁨에 겨운 날보다는 살얼음을 걷는 날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아침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쳐다보았던 성당 입구의 거울에 선배들이 남겨 놓은 구절을 기억해 내고는 위로와 기쁨을 찾겠다.

 

“우리는 끈기 있게 끝까지 견디어 낸 사람들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간신히 송별사를 끝내고 박수 소리를 들으며 자리로 돌아왔을 때 주변 동료 부제들의 눈은 촉촉이 젖어있었습니다. 내가 자리에 앉았을 때 옆의 친구 부제가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은 잡아주었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함께 느끼고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들 중에는 열심히 사목 생활을 하기도 하고, 세상을 떠난 이도 있고, 세속으로 돌아간 동료들도 있지만 그날 밤만큼은 우리들은 진실했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분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우리 동료들이 어디에 무엇을 하든 주님 안에 다시 만난다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기에 행복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7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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