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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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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현대 영성: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 더 큰 사랑의 길(나의 내면에서 시작하십시오)

153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1-02-16

[현대 영성]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더 큰 사랑의 길: 나의 내면에서 시작하십시오

 

 

“20년간 신앙생활을 했는데, 예전의 열정은 식어버리고 습관적으로 의무감 때문에 성당에 다니고 있어요.”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는 것 같아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고 싶은데, 좀처럼 변화되기가 쉽지 않아요.” 

 

“절에 가면 참 자아眞我를 찾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하는데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참 자아(the true self)를 찾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나요?”

 

 

미국 트라피스트회 수도승이자 작가인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1968)은 우리의 영적인 삶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저는 영적인 삶이란 인간의 진정한 자아의 삶이요, 내적 자아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내적 자아의 불길이 종종 방치되어 불안과 무익한 걱정의 잿더미 아래에 질식되어 있곤 합니다. 영적인 삶은 삶의 물질적 필요에 대한 즉각적인 만족을 향해 있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을 향해 방향 지어져 있습니다.”(『인간은 섬이 아니다』, 머리말) 머튼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세속적 행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행복과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의 내면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내면 안에 관상(觀想, contemplation)의 씨앗을 심어 주셨는데, 어떤 이는 이 씨앗이 싹트고 자라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가 하면 다른 이는 아직 씨앗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의 내적 자아가 깨어나고 그 자아를 하느님 현존에 머물게 함으로써 주님께서 주신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는 여정이 바로 영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의 자아를 회복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관상’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관상의 의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느님과 사랑으로 일치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랑이신 하느님과의 깊은 영적 일치의 체험은 유한한 우리의 이기적인 사랑을 성장시켜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으로 건너가게 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내면 안에 ‘이미’ 주어진 사랑의 본성이 깨어나 더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으로 성장해 사랑이 되어가는(Becoming Love) 여정이 바로 영적인 삶인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영적인 성장은 ‘사랑의 성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에페 4,15-16) 

 

영적으로 성장한 거룩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날마다 성전에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만 하고, 계명을 잘 준수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기도하고 하느님을 체험하고 만난 사람이라면 그 삶은 사랑의 삶으로 변화됩니다. 현실에 충실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과 같이 내어 주는 사랑, 조건 없는 사랑,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으로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인간은 본래 낙원에서 사랑이신 하느님과 일치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고집하며 자신만을 사랑하려던 인간의 교만은 낙원에서의 사랑의 일치를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새 아담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 본래의 자신이 됨으로써 이 낙원을 회복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분의 사랑과 하나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참 자아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짓 자아와 경험적인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을 치워내면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의 자아, 악의 영역이 침범할 수 없는 본래의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진아眞我를 찾는 것과 다른 점입니다. 불교에서는 진아도 결국은 무아無我임을 깨닫게 되며 모든 얽혀 있는 관계(인연)로부터 해탈하기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구도의 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의 자아를 잃어버림은 자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합니다. 그리고 자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의 관계 안에서 ‘초월적 자아’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자아의 부서짐과 더 큰 사랑의 길은 함께 가는 친구입니다.

 

[2021년 2월 14일 연중 제6주일 가톨릭마산 3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분도 명상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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