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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신학ㅣ교부학
[성령] 성령과 우리(교회)

61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1-05-20

[구역반장 월례연수] 성령과 우리(교회)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서 “성령”

 

성부(聖父)는 창조주(Creator) 하느님으로서 우주와 인류 역사를 주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성자(聖子)는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이시며, 세상에 파견되어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세주(Kyrios)이시고, 강생(Incarnatio)의 신비로 역사 안에 개입하시어 인간과 함께하시는(Emmanuel) 하느님이십니다.

 

성령(聖靈)은 인간 안에 내재하시는 하느님이시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이 인간과 역사 안에 완성되도록 일하십니다. 즉, 성령은 인간이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생명에 참여하도록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선물이요 은총입니다. 성령은 인간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적 생명의 온갖 풍요로움에 참여하도록 이끄시는 인간의 성화(聖化)와 신화(神化)의 주역이십니다.

 

 

1. 성령은 하느님의 내재(內在, immanens)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 그 물 위에 하느님의 영이 떠돌고 있었다.”(창세 1,1-2).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모든 피조물과 창조의 친교 안에 내재(immanens)하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 안에 현존하시며 그들을 생기있게 하시고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요한 바오로 2세 ‘생명을 주시는 주님’ 10-12 참조).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1코린 3,16-17)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께서는 내 가장 깊은 속보다도 더 속에 계시는 분”이라고 말하였습니다(고백록 Ⅲ, 6, 11 참조).

 

 

2. 성령은 하느님의 케노시스(자기 비움)

 

성경에서 보면, 성령에 대한 ‘계시’는 성부, 성자의 위격과 다르게 주체적이거나 명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사람들은 성령의 비움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성령은 한편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 곁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름 받은 사람들 곁에서 온전히 관계적으로 존재하기 위하여, 자신의 고유한 인격을 스스로 비우셨다는 것입니다(이브 꽁가르,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Je crois en l’Esprit)’(I), 백운철 역, 가톨릭출판사, 2004. p.10).

 

성령의 위격의 특징 ‘케노시스’를 무(無)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에서 묵상해 봅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과 인간을 무(無)에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아무런 부족함이라곤 없는, 내적 생명의 풍요로움을 지니신 분인데, 당신의 선하심 안에서 스스로 자신을 무(無)로 비우시고 낮추시는 자기 제한(自己 制限)을 통해 당신의 풍요로움을 밖으로 분출(processio)하시기에 세상과 인간이 창조되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당신을 무(無)로 돌리시는 가난 안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십니다.

 

 

3. 성령은 숨어서 일하시는 하느님

 

교부 이레네오 성인은 “성자와 성령은 인간을 빚어내시는 성부의 두 손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동양적인 관점에서 이 세상은 ‘스스로 이루어진 것’[自然]임에 비해, 신앙인의 세계관은 세상과 대자연을 하느님의 창조 안에서 바라봅니다. 그러기에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은 사랑을 얻기 위한 명상에서 “어떻게 하느님께서 나를 위하여 땅 위의 모든 피조물 안에 일하시고 수고하시는지 생각할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무생물, 생물, 식물, 곡물, 가축 따위의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성장케 하시고, 감각케 하심으로써 마치 일꾼처럼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지를 생각하고나 자신에게 반영해 볼 것이다.”(‘영신수련’ 236)라고 권고합니다.

 

‘성령’에게 드리는 칭호와 상징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하느님의 손가락’이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창조 위업 안에서 성령의 역할을 잘 보여줍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3-1. 성령의 일 :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성령의 위격의 특징 중 하나는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의 궁극적인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예수님과 성령의 관계를 중심으로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준비하셨다.’는 주제는 ‘성탄 이야기’를 전하는 복음서의 말씀들과 일치합니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마태 1,18)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도 이를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마태 1,21)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는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의 인성(natura humana) 안에 깃든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신성(natura divina)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희로애락을 느꼈으며, 인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 안에 깃들어 있는 신적 생명, 곧 신성(神性)에 대한 지각과 의식이 있었을 것입니다. “온전히 충만한 신성(神性)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콜로 2,9-10)

 

예수님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중 한 분이면서 가장 완전한 ‘하느님의 모상’(2코린 4,4)이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잉태란 예수님께서 당신이 누구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졌는지, 당신이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과 분명한 자의식이 있음을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3-2.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자기 정체성의 확인

 

이러한 예수님의 자의식은 세례 때에 확인됩니다(마르 1,9-11; 마태 3,13-17; 루카 3,21-22 참조).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9-11)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다의 문화와 전통을 넘어 하느님 안에서 찾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들로서의 정체성을 세례 때에 확인하고 체험하셨는데, 이는 성령 안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과 예수님 사이의 관계를 아버지(聖父)와 아들(聖子)의 애틋하고 친밀한 혈육(血肉)의 정(情)으로 맺어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일치의 끈이시며, 두 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친밀한 관계는 예수님께서 매일 바치시는 기도에서 지속되고 성장하였습니다(마르 1,35; 요한 17 참조).

 

예수님에게 성부 하느님은 ‘아빠, 아버지’이십니다(루카 22,42; 마태 26,39; 마르 14,36 참조). 이는 예수님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이 세상에 파견된 자로서 자신의 사명(mission)을 의식하고 계셨음을 말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이자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사제 직무를 수행하며, 우리 봉사직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자문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나의 자녀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모습을 갖추실 때까지 나는 다시 산고를 겪고 있습니다.”(갈라 4,19) 성령께서 주님을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로마 8,14-16)

 

“그러나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갈라 4,4-7)

 

 

4. 성령과 우리(교회)

 

성령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혼(얼)이며 숨결이고, 호흡이며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을 이룩하셨고 당신의 구원 사업을 제자 공동체인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교회는 바오로 사도의 표현대로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비체입니다(1코린 12,27-31 참조). 그리고 교회의 정신과 혼(얼)은 성령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1-23)

 

‘숨어서 일하시는 하느님’이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신비체인 교회 안에 살아 계시며, 그 구성원인 신자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 사업을 이 세상과 역사 안에서 계속하십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협력하기 위해 우리에게 요청되는 점들을 정리해 봅시다.

 

1) 소공동체에서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나누며, 전례를 거행하고,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가운데에 성령께서 함께 일하십니다. 재화(財貨)를 형제적으로 함께 나누는 초대 교회 신자들의 공동체 생활은 성령께서 함께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사도 2,42-47; 4,32-37).

 

2) 하느님 백성의 신앙 감각(sensus fidei)과 은사(charisma) :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또한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도 참여한다. (…) 성령께 도유를 받은 신자 전체는(1요한 2,20.27 참조)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주교로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 도덕 문제에 관하여 보편적인 동의를 보일 때에, 온 백성의 초자연적인 신앙 감각의 중개로 이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 실제로 진리의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고 지탱하여 주시는 저 신앙 감각으로 하느님의 백성은 거룩한 교도권의 인도를 받는다.”(교회 헌장, 12)

 

3) 성령은 ‘생명을 주시는 주님’ : 우리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 성령을 ‘생명을 주시는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성령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살아 계신 주님의 생명이십니다. 오늘날 특히 죽음의 문화가 기승을 부리는 한국 사회에서 생명 존중과 보호, 생명의 복음을 위해 일하면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zIE_y83aYZA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1년 5월호, 구요비 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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