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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인천교구

135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1-04-01

[빛과 소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인천교구

 

 

어렸을 적 우리집은 세탁소와 한 칸짜리 방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보일러는 연탄보일러를 썼는데, 어머니는 새벽에 가끔 나에게 연탄을 갈라고 시켰다. 어느 날 연탄을 잘못 갈았는지, 홈통이 잘못되었는지 연탄가스가 새어 나왔다. 다행히 직감으로 일어나셨던 어머니께서는 집안에 연기가 차있는 것에 놀라 우리를 깨우고 창문을 열어 위기를 모면했던 기억이 난다.

 

교회 안에도 연기가 자욱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것은 1, 2차 세계대전을 겪는 시기였다. 무고한 사람이 죽고, 의미 없는 희생들만이 커져가던 시기, 교황님들은 세상을 향해 여러 가지 메시지를 발표했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와닿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교황님들의 말씀은 어렵고, 세상과 동떨어진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는 점점 연기가 차오르는데 그것을 알아차리기에는 교회는 너무 늙어 버린 듯했다. 하지만 이런 위기를 느낀 교황님이 계셨다. 그분은 성 요한 23세 교황님이셨다.

 

이탈리아 북부의 시골 마을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성 요한 23세(주세페 론칼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제가 된 뒤에, 제1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교황청 외교관으로 유대인들을 구하는 데 앞장섰다. 하느님은 그를 참된 도구로 삼으시려 하셨는지, 그리스와 터키의 교황대사로 일하게 하시며 동방교회와 가톨릭의 일치 그리고 이슬람과의 화합을 위해 힘쓰게 하셨다. 이어 파리 교황대사를 역임(1944~1953년)하며 해방된 한국이 UN에 가입하는 데 힘을 쏟으셨으며,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늘 귀를 열어두셨다.

 

1958년 하느님께서는 그런 론깔리 추기경을 요한 23세 교황으로 뽑아 세우셨다. 교황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세상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못하고, 권위주의와 특권의식, 성직자 중심주의라는 연기로 가득한 교회라는 집이 위험하게 보였던 것 같다. 마침내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신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를 결정하고 준비하던 무렵인 1962년, 성 요한 23세 교황님은 대목구로 있던 지역교회들이 온전한 하나의 교구로 공의회에 참석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을 담아 1962년 3월 ‘복음의 비옥한 씨’라는 교황 교서를 통해 한국교회에 세 관구(서울, 대구, 광주)를 설정하고 기존의 11개 지목구와 대목구를 교구로 승격시켰다. 이로써 교황을 대리한 명의 주교의 역할에서 각 교구의 자치권을 행사하는 교구장으로 변화되었다.

 

교황 교서를 통해 1962년 7월 1일 인천 대목구장에서 정식 교구장이 된 나길모 주교는 3회기에 걸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체 회의를 참석하며 인천교구 안에 공의회의 신선한 바람이 들어올 수 있게 해주었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은 ‘아죠르나멘토(Aggiornamento)’이다. 번역하면 ‘적응’이라는 뜻의 단어인데, 오늘날 교회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한 마디로 정의한 단어이다.

 

이 단어의 뜻을 나길모 주교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메리놀 신학교에서 전례학을 전공한 블러리스 신부에게 새로운 전례에 따른 미사를 연습할 수 있는 강습회를 조직하도록 했다. 이어 1964년 8월 30일에는 새로운 전례 지침에 따라 교구 내 모든 신부들이 제대를 보고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아닌, 신자들을 바라보고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하나 됨의 일치를 맞보게 했다. 또 라틴어가 아닌 한국어 미사경문의 연구를 거듭하며, 보는 미사가 아닌 느끼는 미사를 인천교구민들이 제일 먼저 경험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제2차 공의회 정신은 나길모 주교의 마음에 새겨지며, 나길모 주교는 움츠리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정의를 외치는 교회, 분열을 만드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교회, 어렵고 소외받는 이들을 외면하는 교회가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머무는 인천교구가 될 수 있게 기틀을 마련하였다.

 

[2021년 3월 28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인천주보 3면, 이용현 베드로 신부(역사위원회 위원, 인천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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