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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접시를 닦지 않으면 접시를 깰 일도 없다

104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1-05-18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73) 접시를 닦지 않으면 접시를 깰 일도 없다

 

 

요한 신부님은 현재 은퇴하셔서 원로 사제로 계시지만 한참 감수성이 민감한 신학생 시절 나의 사제직의 모델이 되어주셨던 분이다. 신부님은 명석한 지혜와 객관적 판단력으로 신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셨던 분이었다. 어느 날 신학생 몇 명과 함께 신부님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본당에서 원장 수녀님과 관련해 겪은 이야기를 꺼내면서 신부님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당시 본당에 부임한 원장 수녀님은 말 그대로 여장부의 호연지기를 연상시키는 분이었다. 보통의 수녀님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지니고 계셨다. 수녀님이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본당의 상임위원과 단체장 그리고 구역장과 반장에 이르기까지 수녀님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수녀님은 본당 내에서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는지를 빨리 이해하시고 그것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아무도 나설 수 없었던 신자들 간의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해 나가는 수녀님은 이제 신자들에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비치기 시작하였다. 수녀님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려는 신자들이 생겨났고, 수녀님은 그 사람들을 통해 본당 내에서 입지와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분명 본당은 과거와 달리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고 봉사자들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는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었다. 수녀님 편에 선 사람들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녀님에게서 수도자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하소연했으며 너무 정치적인 경향이 많다고 비판했다. 수녀님을 따르는 세력이 많아지고 이들의 영향력이 강력해짐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문제는 본당 신부님의 관점이었다. 본당 신부님은 이런 원장 수녀님의 모습에서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본당 사목의 책임자는 주임 신부인데 사람들은 수녀님에게서 본당 사목자의 모습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당에 수녀님이 계시는 것은 본당 신부님의 사목을 돕기 위한 목적이지 수녀님이 사목하기 위해 파견된 것은 아니라고 배워왔다. 즉 사목은 오직 주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사목자에게만 부여되는 배타적 권리이다. 그런데 본당 신자들이 사제보다는 수녀님에게서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되고 실제로 수녀님의 생각대로 본당이 움직인다면 본당 신부님의 마음은 어떨까?

 

신학생이었던 나는 당시 본당 신부님과 수녀님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않았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녀님은 자신의 사람들 안에서 권력을 계속 향유하고 계셨다. 교회의 사제직을 지망하는 신학생이었던 나 자신 역시 수녀님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아마 수도자로서의 모습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무의식 안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녀님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리더십과 카리스마는 더 이상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요한 신부님은 나의 말을 한참 들어보신 후 수녀님의 마음 안에는 나름의 야심과 권력에 대한 의지가 숨겨져 있다고 보시며 수도자로서 평범한 분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하지만 나는 그 수녀님이 왠지 마음에 든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에 아무 비판도 받지 않는 수녀님보다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면서 욕을 먹는 그 수녀님이 더 좋게 보이는구나!” 신부님의 답변은 간단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되는 깨달음이었다. 자신은 접시를 깰까 봐 접시를 닦지 않으면서 접시를 깨는 사람들을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씀처럼 들렸다. 자신의 탈렌트를 땅에 묻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종보다는 자신의 탈렌트를 열심히 사용하는 종을 하느님은 더 사랑하신다.(마태 25,14-18)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5월 16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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