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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인간학 칼럼: 서사적 존재

50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4-05-07

[인간학 칼럼] 서사적 존재

 

 

요즈음은 그렇지 않지만, 시골에서 자랐던 세대는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 한 두 편쯤은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굳이 ‘부엉이가 울던 밤’이 아니더라도 별자리 이야기며 ‘여우 나는’ 산골 이야기 등 숱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그 동네 전설은 물론, 앞서 살았던 조상들의 영웅담을 듣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할 수많은 역사와 교훈을 접하게 됩니다. 유목민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구약성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별이 쏟아지는 밤에 하늘을 보면서 선조들이 겪었던 신앙의 역사를 이야기로 듣습니다. 낙원에 살았던 첫 조상 이야기를 비롯해서 형제 간 싸움 이야기는 물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고향을 떠났던 아브라함과 모세를 비롯한 성조 이야기와 그밖에 수많은 이스라엘의 고난과 영광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마침내 하느님이 인간을 더 이상 멸망시키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신 이야기를 듣고, 그 계약의 표시로 하느님께서 만드셨다는 별과 무지개를 보면서 그 안에 담긴 장대한 서사를 접하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은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인간다운 인간으로, 또는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은 천문학적으로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우리는 그 안에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삶의 교훈,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의 규범 따위를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별자리를 만들면서 인간은 비로소 생물학적 인간에서 문화적 인간으로, 또는 윤리적이며 예술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런 인간의 본성적 측면을 ‘서사적 존재’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그 이야기에는 역사적 경험에 대한 반성과 해석이 담겨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현재의 삶에 필요한 수많은 이해와 함께 미래에 대한 기대와 기획이 담겨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인간다운 현재는 이렇게 과거를 해석한 이야기와 미래를 기획하는 이해가 만나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지금’, ‘여기’의 시간을 살아가지만 그 현재는, 해석하고 이해한 과거와 기획하고 기대하는 미래가 만나는 그 ‘지금’이며 바로 ‘여기’입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도 이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서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서사 안에 해석과 이해가 담겨있고, 현재의 규범과 의미는 물론, 미래의 기획과 희망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서사를 통한 이해와 해석의 행위를 모든 삶의 영역으로 확대한 지성적 작업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소박한 의미에서이지만 ‘철학적 존재’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서사적 본능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나요? 또 어떤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있나요? 이야기 안에는 나 자신의 역사와 미래가, 나의 윤리와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이야기를 잊어버리면 우리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물질적 풍요로움은 말하지만 이러한 서사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밤은 어릴 적 나를 만들었던 그 이야기를 떠올려 보고,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만들어보았으면 합니다. 인간은 서사적 존재니까요.

 

[2024년 5월 5일(나해)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서울주보 7면, 신승환 스테파노(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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