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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문헌ㅣ메시지
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2026년 제10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문

140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10-29

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제10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2026년 11월 15일, 연중 제33주일)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피신처이십니다(시편 14[13],6 참조)

 

 

1.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피신처이십니다(시편 14[13],6 참조). 시편 저자의 이 말씀은 제10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하느님 말씀으로 돌아가, 교회의 삶에서 가난한 이들이 지니는 중요성을 재확인해야 합니다. 시편의 말씀은 하느님의 얼굴을 드러내고 인간의 가난을 확인시키기에 그리스도인 삶의 기준이 됩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라는 비극적인 역사의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현존을 빼앗겼다고 느끼고 전례 없는 물질적, 도덕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세대에게 언제나 시의적절하게 다가옵니다. 첫 구절부터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도 여전히 자주 빠지곤 하는 모순을 드러냅니다. 실제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에 가장 먼저 주목하게 됩니다. “어리석은 자 마음속으로 ‘하느님은 없다.’ 말하네. 모두 타락하여 악행을 일삼고 착한 일 하는 이가 없구나”(시편 14[13],1). 이 말씀을 통하여, 지혜롭게 행동하는 이들과, 그 반대로 자기 자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는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의 대조적인 모습이 부각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오만무도한 타락에서 생겨난 사회적 불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만연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는 차별적인 모습이자 비난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초월에 대한 감각의 상실은 하느님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부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과 사회의 정의를 추구할 때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고려하지 않는 데에서 뚜렷이 드러납니다. 

 

그 결과로 가장 먼저 고통받는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회에서 가난한 이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부재는, 사람들이 더 이상 서로 존중하며 나란히 서게 하지 않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위에 지배와 억압의 관계로 군림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학대와 배척의 신성모독적인 논리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온 민족이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다음의 시편 말씀이 여전히 진실되게 울려 퍼집니다. “내 백성을 빵 먹듯 집어삼키는 저들”(시편 14[13],4).

 

2. 오늘날 정의를 향한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은 점점 더 교묘해지는 수많은 책략으로 침묵당하고 있으며, 이들의 요구를 알리려는 모든 노력이 소리를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디지털 세계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편견을 더욱 심화시키고, 이들의 곤경을 더욱 두터운 무관심의 장막으로 가려 버립니다.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습니다(시편 34[33],7 참조). 그들은 하느님께서 성실하시고 자비가 가득하신 분이기에 자신들의 탄원을 귀 기울여 들어 주시리라 확신하며 비통함을 아룁니다. 오늘날에도 억압받고 모욕당하며 무방비 상태에 놓인 이들은 믿음과 기대로 가득 차서 하느님께 자신을 맡겨 드려야 한다는 확신을 키워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완전한 내맡김을 통하여 그들은, 자기 존엄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꽃피우고, 꿈을 함께 나눌 형제자매들을 알아봅니다. 그리하여 희망은 조용히 현실이 됩니다. 하느님께 피신한다는 것은, 권력자들은 보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정하려 하는 참되고 영원한 보호를 찾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이들은 본질적인 것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본질적인 것을 더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닮은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을 자신의 피신처로 인식합니다. 이와 정반대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러합니다. 또한 머지않아 실현될 그분의 정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버림받고 외로운 밤에도 지극히 높으신 분의 보호 속에 삽니다(시편 91[90],1 참조). 가련한 모든 이, 불의를 겪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모든 이, 고통과 아픔 속에 있는 모든 이, 외로움을 느끼며 삶의 목적을 잃은 모든 이가 주님 안에서 위로와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하느님께서 그들의 피신처시라는 사실은 단순한 약속에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 현실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의 강생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사시며, 우리가 바라는 피신처를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게 드러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하느님의 피신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아버지께 순종하시어 가장 작은 이들이 있는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십니다. 또한 모든 이에게 손을 내밀어 안전한 피신처를 제공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을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가난을 함께 나누십니다.

 

우리 시대의 가난한 이들은 잊히고 소외된 이들입니다. 그들은 빵뿐만 아니라 목소리와 얼굴마저 빼앗긴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도 소홀히 하지 않으시고 모든 이에게 가까이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아드님을 그들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사람들 안에서 그분을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당신 몸인 교회 안에서 빵을 떼어 주시고 우정을 나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을 가져다주시고, 희망의 지평을 열어 주시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시고, 모든 이의 존엄성을 회복해 주십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이십니다. 그분 안에서 모든 약속이 실현됩니다. 집 또는 일자리가 없고, 교육의 기회를 누리지 못하며,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건강을 잃은 이들에게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곧 하느님 나라를 보여 주는 나눔의 길이 열립니다(마태 5,3 참조).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부를 축적하려는 사람들의 집착에 맞서, 한결같은 분이신 하느님께서는 실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하여 마음을 열어 주시고 모든 이를 당신 사랑 안으로 맞아들이십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가난하게 되고 가난한 이들의 피신처가 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문 앞에 서 있지만 자기만의 벽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는 그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수많은 사람에 대하여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무관심하게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그 본성상 가난해야 하며 가난한 이들의 피신처가 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라자로의 비유에 관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설교를 잊지 맙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부자의 이름은 감추시고 가난한 사람의 이름은 알려 주셨습니다. 부자의 이름은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이름을 당신만 알고 계셨고, 가난한 사람의 이름은 침묵 속에 스쳐 갔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이름을 우리에게 드러내셨습니다. …… 그대는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라자로처럼 가난한 사람이 될 것입니까, 아니면 부자가 될 것입니까? 속지 마십시오! 그 결말이 어떠하였는지 귀를 기울이고, 어느 쪽이 잘못된 선택인지 유념하십시오”(「설교」[Sermone], 33A, 4).

 

제가 교황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 Te)에서 강조하였듯이,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각별히 사랑하십니다. 희망과 해방의 주님 말씀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가난한 이들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가난하거나 약할 때에 아무도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느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고자 한다면, 참행복의 교회, 곧 작은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하게 걸어가는 교회, 가난한 이들이 특권적 자리를 차지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21항).

 

몇 가지 질문들이 필연적으로 떠오릅니다. 이번 제10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우리는 이 질문들이 우리 마음과 정신에 절실히 울려 퍼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의 피신처이신 하느님의 표징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난을 자각하고 있으며, 그 가난을 불의한 부유함보다 더 소중히 여깁니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그들의 소외를 함께 경험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가난한 이들의 생각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희망을 나누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자애로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우리의 애덕은 그들 안에서 정의와 구원에 대한 열망을 다시 일깨우고 지탱해 주고 있습니까? 이 질문들과 그 밖의 수많은 질문은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그들의 해방을 위하여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 평가하기 위한 깊은 양심 성찰을 요구합니다. 그때 우리는 가난한 이들 스스로가 다른 이들에게 피신처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난을 겪은 이들은 여러 어려움에 맞서 새롭게 연대하는 일에 특히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가 사랑으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삶에 참여하게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안에서 피신처를 찾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피신처가 되어 주도록 부름받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이, 주는 것처럼 보이는 이와 받는 것처럼 보이는 이, 가난해 보이는 이와 자신의 시간과 재능과 도움을 준다고 느끼는 이를 구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교회, 가난한 이들의 교회입니다. 모든 이가 소중하고 모든 이가 주인공이며 저마다 유일한 하느님 말씀을 지닌 존재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다른 이를 위한 선물입니다”(2025년 8월 17일 강론).

 

5.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을 맞아, 우리는 성인이 베드로 사도의 무덤을 순례하려고 로마에 도착했을 때 걸인들을 보고 깊은 연민을 느꼈던 일을 되새겨 봅니다.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체험하고자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기 옷을 벗고 그들 중 한 사람의 누더기 옷과 바꿔 입은 뒤, 앉아서 구걸하며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프란치스코 전집』[Fonti Francescane], 1405-1406 참조). 우리는 단지 가난한 이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보다 그들의 처지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오늘날에도 똑같은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음을 증언하고자 합니다.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는 이들은 예언자적 선택을 할 자유를 누립니다. 이러한 선택은, 교만으로 상처 입은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겸손과 형제애 안에서 모든 것을 근본부터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저는 이번 제10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 하느님 안에서 피신처를 찾으며 우리 공동체 안에서 집처럼 편안함을 느끼기를 갈망하는 수많은 형제자매의 얼굴을 다시 발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를 마음의 회개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히 머무릅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당신 아드님의 육신 안에서,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시는]”(루카 1,53) 하느님의 사랑을 관상하셨던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전구해 주시기를 빕니다.

 

바티칸에서

2026년 6월 13일

가난한 이들의 수호자,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교황 레오 14세

 

<원문: Message of His Holiness Pope Leo XIV for the Tenth World Day of the Poor, ‘The Lord is the refuge of the poor’ (cf. Ps 14[13],6), 2026.6.13., 이탈리아어도 참조>

 

영어: https://www.vatican.va/content/leo-xiv/en/messages/poor/documents/20260613-messaggio-giornata-poveri.html 

 

이탈리아어: https://www.vatican.va/content/leo-xiv/it/messages/poor/documents/20260613-messaggio-giornata-pover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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