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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행복론에 관한 연구

101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10-25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의 행복론에 관한 연구*



Ⅰ. 머리말

Ⅱ. 아퀴나스의 삶과 사회적 배경

Ⅲ. 아퀴나스의 행복에 대한 가르침

Ⅳ. 아퀴나스의 행복론에 대한 비판

Ⅴ. 맺음말



<국문초록>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마도 행복 추구일 것이다. 행복이라는 주제는 사랑에 관한 주제만큼이나 인류의 관심사이다. 이러한 행복에 관한 관심은 모든 세대를 거쳐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자들, 신학자들, 수도자들의 삶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영적인 삶을 통해 자신들의 궁극적인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중세 신학을 대표하는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목적이 정해졌을 때 인간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인 영원한 행복에 관한 탐구와 더불어 행복의 조건에 관심을 가졌다. 오늘날엔 재물의 가치를 절대화하려는 경향이 널리 펴져 있다. 이러한 경향은 부의 축적과 향유에 궁극적인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한편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도 인간 행복의 조건이 과연 재물에 있는가에 대해 탐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재물 자체가 인간 행복의 궁극적인 목적은 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결국, 이 세상에서 삶을 위한 부는 필요하지만, 이는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 마찬가지로 쾌락이나 명예의 추구도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주장하는 궁극적이고 완전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에 있다. 인간은 비록 육체를 지닌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명상과 관상, 그리고 자선을 통해서 선하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이 안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말하는 완전한 행복은, 육신을 벗어난 영혼이 하늘나라에 계신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것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행복론은 전통적인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정받아 왔으나 1930년대 이후 마르쿠제(Herbert Marcuse),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블로흐(Ernst Bloch), 하버마스(Jurgen Habermas) 등에 의해 도전받기도 한다.

 

이러한 소위 ‘비판 이론가’들은 인간의 행복이 지상이 아닌 오직 신과 영혼을 지닌 천국에만 달려 있다는 아퀴나스의 이론을 거부한다. 오히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사회적 조건의 변화를 통한 행복 추구를 제안한다.

 

한편 교회를 향한 그들의 비판은 가톨릭 사회 교리 및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하느님 없이 현세와 내세에서의 진정한 행복은 불가능하다. 하느님 자신만이 ‘완전한 행복’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행복론은 더 큰 의미가 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 이 논문을 2024년 가톨릭대학 성신교정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다.

 

[학술지 교회사학 제28호, 2026년(수원교회사연구소 발행), 지재구(가톨릭대학 성신교정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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