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교자]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비밀스러운 빛, 하느님의 종 최제근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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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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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비밀스러운 빛, 하느님의 종 최제근 안드레아(1848-1868)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한 여인이 견뎌야 했던 깊은 상실을 따라갑니다. 남편을 잃은 신애는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옵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려 하지만, 그곳에서 하나뿐인 아들마저 유괴되어 잃고 맙니다. 신앙 안에서 고통을 이겨내려 하지만 용서마저 뜻대로 되지 않고, 그렇게 그의 삶은 다시 무너져 내립니다. 그런 신애의 주변을 영화 내내 서성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카센터를 운영하는 종찬입니다. 그는 신애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도, 그녀를 절망에서 구해 내지도 못합니다. 다. 때로는 귀찮을 만큼 다가섰다가 밀려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는 다시 다가가 신애의 곁에 함께 있어 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병원에서 퇴원한 신애는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서 스스로 머리를 자릅니다. 카메라는 두 사람에게서 천천히 시선을 돌려 마당 한구석을 합니다. 구석진 땅 위로 햇빛이 조용히 내려앉으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Secret Sunshine’, 곧 ‘비밀스러운 빛’입니다.
최제군 안드레아는 열여덟 살이던 1866년 병인박해 때 아버지 최종여 라자로를 순교로 잃었습니다. 박해를 피해 고향인 충청도 목천 소학골을 떠난 그는 비신자들의 집을 전전하며 막일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자신 역시 하루아침에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용인 출신의 방 데레사를 만났습니다. 데레사 역시 박해로 남편을 순교로 잃고 의지할 곳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박해는 두 사람에게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앗아갔지만, 상실의 자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 만났습니다. 최제근 안드레아는 홀로 남겨진 방 데레사를 아내로 맞아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어린 아들을 두었습니다.
1868년 두 사람이 함께 체포되었을 때에도 그들은 서로가 홀로 그 길을 걷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최제군이 형벌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을 때 함께 갇혀 있던 방 데레사는 그의 마음을 다잡아 주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독지가에게 맡긴 채 옥에 갇힌 처지를 슬퍼하던 방 데레사의 곁에는 최제근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동행은 죽음 앞에서도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죽산에서 같은 날 교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우리는 눈부신 기적을 기다리느라 조용히 찾아오는 은총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은총은 언제나 모든 것을 단번에 바꾸어 놓는 빛으로만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구석진 땅 위에 가만히 내려앉는 햇빛처럼, 은총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다가가 함께 있어 주는 한 사람을 통해 찾아오기도 합니다. 최제근 안드레아와 방 데레사는 서로의 아픔을 잘 알았고, 그 아픔을 혼자 견디게 두지 않았습니다. 상실의 자리에서는 서로의 곁이 되어 주었고, 한 사람이 흔들릴 때에는 다른 사람이 붙잡아 주었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아픔과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곁에 함께 있어 주는 사람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비밀스러운 빛처럼 우리 삶의 가장 어두운 자리까지 조용히 찾아오십니다.
하느님의 종 최제근 안드레아,
저희도 아파하는 이에게 다가가
그 곁에 함께 머물게 하소서.
[2026년 10월 18일(가해) 연중 제29주일(전교 주일 ·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수원주보 4면, 백정현 요셉 신부(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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