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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의 향기19: 형제적 무상성과 시민 경제의 부활

75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10-13

[프란치스코의 향기] (19) 형제적 무상성과 시민 경제의 부활


대가 없는 나눔이 공동체를 살린다

 

 

- 노르베르토(Norberto)의 ‘프란치스코의 귀향’ 청동상.(2006) 기사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섰던 프란치스코가 말을 타고 귀향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앞에 있다.

 

 

우리가 일구어야 할 소중하고 거룩한 형제애를 지탱하는 가장 튼튼한 반석은 하느님에게서 거저 주어진 ‘무상성(Gratuitas)’입니다. 우주의 최고선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경제적 보답이나 이윤도 기대하지 않으시고, 충만한 사랑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내어주시어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빚어진 인간 역시 영혼 깊은 곳에 대가 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신비로운 무상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참된 사랑에 관하여 “형제가 건강하여 보답해 줄 수 있을 때 그 형제를 사랑하는 만큼, 형제가 앓고 있어 보답을 받을 수 없을 때도 그만큼 형제를 사랑하는 종은 복됩니다”라고 권고합니다. 이 말씀은 자칫 주고받는 거래 관계에 갇히기 쉬운 인간관계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곳이 바로 무상성임을 일깨웁니다.

 

초기 프란치스칸 형제들은 이러한 가난과 무상성의 원리를 현실의 경제구조 안에도 구체적으로 적용했습니다. 재화가 소수에게 고여 공동체의 생명력을 잃게 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정의로운 공동선(Common Good)을 위해 끊임없이 흐르도록 경제를 쇄신하고자 했습니다. 참된 형제애는 이처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무상성의 가치가 스며들게 합니다. 그리하여 시장마저 단순한 이윤 경쟁의 공간을 넘어 인간 존엄성을 촉진하고 공동체를 살리는 호혜와 나눔의 장으로 변화시킵니다.

 

이러한 프란치스칸 영성은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몬테스 피에타티스(Montes Pietatis)’라는 서민을 위한 저리 금융기관의 설립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당시 40%에서 80%에 이르는 고리대금으로 서민 가정이 무너지고 공동체가 파괴되는 현실에 맞서, 프란치스칸들은 가난한 이들의 생계와 공동선을 위한 경제활동에 4%에서 12% 정도의 낮은 이자로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부유한 이들의 여유 자원이 공동체 안에서 다시 순환하도록 함으로써 분배의 정의를 증진하고 공동체 전체의 경제적 활력을 되살리려는 형제적 상생의 해법이었습니다.

 

이는 일부 구성원의 소외와 희생을 감수하면서 전체의 경제적 성과만을 합산하는 냉혹한 ‘덧셈의 경제’, 곧 ‘전체선’의 논리를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그 대신 단 한 사람이라도 완전히 배제되어 ‘0’이 된다면 공동체 전체의 가치 또한 훼손된다는 ‘곱셈의 경제’, 곧 ‘시민 경제(Civic Economy)’의 윤리적 토대를 마련한 것은 경제 체계 안에 구체화한 기념비적 도약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낳은 기술지배주의적 맹신과 이른바 부의 낙수 효과(Trickle-down)에 대한 무비판적 신뢰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사회 체제가 단 한 사람도 희생시키거나 저버리지 않을 때 비로소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를 함께 경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중세 프란치스칸 학파는 사유재산권을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자연법으로 여기지 않고 인간 사회가 마련한 제도로 이해하면서, 지상 재화의 궁극적 목적을 공동선에서 찾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사유재산권은 지상 재화의 보편적 목적이라는 으뜸 원칙에 종속되어 있으며, 모든 소유에는 사회적 기능과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타인의 고귀한 존엄성은 이윤 창출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상성의 원리를 개인적 선행의 영역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시장과 국가, 사회 제도와 구조 안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경제는 형제애를 파괴하는 경쟁의 장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고 공동체를 성장시키는 시민 경제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며, 우리는 참다운 영적·물질적 진보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6년 10월 11일, 김일득 신부(작은형제회 한국관구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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