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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65: 사형 폐지를 위한 범종교인연합

208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10-05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 (65) 사형 폐지를 위한 범종교인연합


생명 박탈하는 ‘죽음의 문화’ 거부하며 범국민적 연대의 손 맞잡아

 

 

“천주교 등 종교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사형 폐지 운동이 급류를 타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불교 조계종 등 일부 종단 관계자들이 모여 결성한 ‘사형제도폐지를 위한 범종교인 연합’은 오는 2월 26일 회의에 원불교 등 다른 종파 대표자들을 공식 초청, 그 참가 범위가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 여기에 최근 국회에서도 사형제도 폐지 입법을 위한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어 사형 폐지 운동은 더욱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현재 입법안에 서명한 의원은 모두 77명, 전체 의원 과반수인 137명의 서명을 받으면 입법안 제출이 가능함에 따라 앞으로 60여 명 정도의 서명만 받으면 추진이 가능하게 된다.

 

한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4월 중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를 구성해 이를 중심으로 전국 각 교구 교정사목위원회 및 정평위 관계자들과의 협력 아래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사형 폐지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가톨릭신문 2001년 2월 11일자 1면)

 

-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종교인들의 연대는 사형제의 폭력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다. 2002년 4월 24일 서울 봉은사에서 열린 ‘사형제도폐지를 위한 범종교인 연합’ 기도회 모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우리나라의 사형 폐지 운동은 1970년대 초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의 활동을 기점으로 태동했고, 1989년 5월 가톨릭과 개신교 등 종교계가 주도한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의 창립을 통해,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연대 형태로 발돋움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사형 폐지 운동은 누명을 쓴 개별 사형수들을 구제하기 위한 활동이 주를 이루었고, 특정 종교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와 개인적 호소에 의존하는 경향을 띠었습니다. 제도적 차원에서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아직 운동의 대중적, 입법적, 조직적 기반이 온전히 성숙하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2000년 대희년을 전후해 사형 폐지 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이 이뤄지게 됩니다. 대희년을 거치며 범가톨릭 차원에서 축적된 생명 존중의 에너지가 2001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이 한 해 동안 주교회의 산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설치되었고, 대한민국 7대 종단을 아우르는 범종교적 연대 기구가 출범했습니다. 또한 155명의 국회의원들이 처음으로 사형폐지 특별법안을 발의했고,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를 위한 포럼이 개최됐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사형수 구명 운동

 

1990년대 한국 사회는 급속한 경제 성장 이면에 팽배한 물질만능주의와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각종 흉악 강력 범죄가 빈발하던 시기였고, 국가 권력에 의한 사형 집행이 주기적이고 대규모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1997년 12월 30일에는 단 하루 만에 무려 23명의 사형수에 대한 대규모 교수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교회의 사형 폐지 운동을 상징적으로 이끌며 예언자적 목소리를 낸 인물은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이었습니다. 1964년 가톨릭신문사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대구대교구에서 교정사목을 담당하며 사형수 및 재소자들과 깊이 교감했던 김 추기경은, 사형제도가 실제로는 잔혹 범죄 억제 효과가 없음을 일찍부터 통찰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사형이 자칫 오판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불완전한 제도임을 경고하고,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이도행 씨, 페스키마호 선상 반란 사건의 전재천 씨, 파키스탄 국적의 외국인 사형수 무하마드 아자즈와 아미르 자밀 씨 등이 억울하게 사형을 당할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김 추기경의 개별 사형수 구명운동은 점차 제도 폐지라는 근본적 운동으로 전환됐습니다.

 

 

2001년 사형 폐지 운동의 패러다임 전환

 

한국교회는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생명의 복음」이 강조하는 정신에 따라 범세계적인 생명 수호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보편교회는 사형제도를 안락사, 낙태와 더불어 생명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죽음의 문화’로 간주하고, 전 세계 국가들을 향해 2000년 한 해 동안만이라도 모든 사형 집행을 전면 중지하자는 모라토리엄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습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이러한 보편교회의 흐름에 적극 호응, 1999년부터 전국적인 사형 폐지 서명운동에 돌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형 폐지 담론은 수백만 일반 신자들과 대중들의 가슴속에 범국민적 생명 문화 운동으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적 환경 역시 유리하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인권 신장을 주요 국정 지표로 삼고, 1997년 12월 이후 실질적인 사형 집행을 유보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사형 폐지 운동은 종교계의 광범위한 연대 및 법제화를 향한 조직적 움직임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2001년에 그 결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산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이하 사폐소위)였습니다. 이전까지 사형 폐지 운동은 일부 사제나 인권 변호사들이 비정규적으로 전개해 온 활동에 불과했지만, 사폐소위의 설립을 통해 사형제도 폐지가 한국교회 전체의 중대한 사목 목표로 선언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인연합입니다. 사형제도 존치를 주장하는 가장 강력한 논리는 피해자에 대한 ‘국민 법 감정’과 눈에는 눈이라는 ‘응보적 정의’ 요구였습니다. 이를 넘어 용서와 사랑의 논리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종교인들의 연대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공감한 국내 7개 종단 지도자는 2001년 초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인연합’을 발족했습니다.

 

세 번째는 2001년 10월 30일 제16대 국회 155명의 의원들이 공동으로 발의한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입니다. 국회의원 재적 인원 273명의 절반(137명)을 넘는 의원들이 지지했음은 입법을 통한 완전한 사형제도 폐지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2001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2001 사형폐지 아시아 포럼 - 서울’입니다. 포럼에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홍콩, 필리핀, 인도, 파키스탄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9개국 대표단과 인권운동가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아시아는 사형 집행이 가장 빈번한 곳이었습니다. 이 포럼을 통해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의 사형 폐지를 위한 국제적 연대가 이뤄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12월 30일의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천주교회와 연대 단체들의 필사적인 사형 집행 저지 노력 덕분에 2007년 12월 30일까지 만 10년간 단 한 건의 사형 집행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국제앰네스티는 대한민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했고, 2026년 9월 현재까지도 사형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국회 차원의 완전하고 비가역적인 법적 사형제도 폐지의 과제는 남아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6년 10월 4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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