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 세계의 성모 성지: 이탈리아 폼페이(성모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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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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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성모 성지] 이탈리아 폼페이(성모 대성당)
폼페이 묵주기도의 성모
- 대성당의 전경과 1925년에 완성된 높이 88m의 종탑
- 폼페이의 묵주기도 성모화1) 바르톨로 롱고(1841~1926년)는 누구인가?
바르톨로 롱고는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라티아노에서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열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변호사와 재혼하였다. 롱고는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하였기에 계부를 설득하여 나폴리 대학에 입학하였고 그곳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1859년부터 통일 전쟁이 본격화되었다. 평민 출신의 혁명가 주세페 가리발디는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점령하고 1870년 로마를 병합하여 이탈리아가 통일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가리발디는 교황령을 통일의 장애물로 인식하였고, 교황 비오 9세와 교황직을 격렬히 비판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폴리 대학교의 교수들은 가리발디에 동조하였으며, 많은 학생이 교황에 반대하는 공개 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학 내 반가톨릭 분위기에서 롱고 역시 사제와 교황에 적대감을 품게 되었다. 결국 롱고는 사탄주의 사상에 빠져들어 강령술 집회에서 의식을 주도하고, 환각 상태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사탄 숭배 집단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가족들은 롱고를 설득하였으나 소용이 없자 나폴리 대학의 가톨릭 신자인 빈첸조 페페 교수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이에 교수는 롱고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같이 생활하며 롱고에게 헌신적인 가톨릭 신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였다. 롱고는 약 3주 동안 도미니코회 수도사와 면담하면서 성모님과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을 새롭게 접하게 되었다. 그는 1865년 고해성사를 통해 사면을 받고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죄책감으로 극심한 절망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내적 시련을 거쳐, 마침내 1871년 10월 7일 롱고는 도미니코 제3회원이 되었으며 동정서원을 약속하였다.
1872년 10월 초 롱고는 친구인 마리아나 디 푸스코 백작부인의 의뢰를 받아 폼페이로 갔다. 그는 폼페이 주민들이 극심한 빈곤과 무지 속에 도덕적으로 크게 타락해 있으며, 미신에 지나치게 빠져있다는 것과 폼페이에는 허름한 성당 하나와 단 한 명의 신부만 있을 뿐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872년 10월 9일 롱고가 폼페이 외곽의 들판에서 걷고 있을 때 도미니코회 라덴테 알베르토 신부가 성모님의 말씀, “내 묵주기도를 전파하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를 반복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를 들은 롱고는 즉시 무릎을 꿇고 “이 말씀이 진실이라면, 구원을 받기 위하여 묵주기도가 전파될 때까지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하였다.
2) 폼페이의 묵주기도 성모 성지
롱고는 마리아나 디 푸스코 백작부인의 도움으로 묵주기도회를 창설했으며 1873년 10월부터 노후된 성당의 복원을 시작하였다. 1875년 그는 중앙제단에 모실 성모화를 찾던 중 우연히 길에서 자신의 고해신부인 라덴테 신부를 만났다. 신부는 약 10년 전에 구입하여 수녀원에 맡겨두었던 성모화가 있다며 콘체타 수녀에게서 받아 가라고 제안하였다. 롱고는 즉시 수녀원을 찾아가 성모화를 받았으나 그림이 너무 낡아 안료가 벗겨지고 색이 바랜 상태였고,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 대신 성녀 로사가 그려져 있어 당황하였다. 그러나 그는 재정적인 여유가 없었고, 수녀의 권유와 라덴테 신부의 입장을 고려하여 성모화를 받기로 하였다. 1875년 11월 13일 성모화는 마차에 실려 폼페이에 도착했다. 롱고는 우선 성모화를 중앙제단에 모시고 기회가 될 때마다 복원을 시도하였다.
이후 성모화를 통하여 수많은 치유의 기적이 연이어 일어났고 그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초라한 성당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접한 놀라(Nola)교구의 주교는 롱고에게 새로운 성당을 건축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따라 1876년 5월 8일 성당의 초석이 놓였으며, 이날을 폼페이 묵주기도 성모의 축일로 기념하게 되었다. 같은 날 백작부인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월 1페니 기부 운동’을 제안하였고 이를 계기로 성당 건립 헌금이 본격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결국 부유한 후원자가 아니라 수십만 명에 이르는 가난한 신자들의 소액 봉헌으로 대성당이 완공되어 1891년 5월에 봉헌되었다. 1939년 대성당은 3랑식 구조로 확장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모화는 성녀 로사 대신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녀가 새로이 그려지는 등 여러 차례 복원을 통하여 현재 대성당의 중앙제단에 모셔져 있다.
- 성모화가 모셔져 있는 중앙제단, 성모님이 승천하여 왕관을 받고 있는 천장화, 롱고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바르톨로 롱고 경당(좌로부터)
교황 레오 13세의 권유로 1885년 4월 7일, 롱고는 마리아나 디 푸스코 백작부인과 결혼하였으며 두 사람은 부부로서 동정서원을 지키며 묵주기도 운동과 교육, 자선사업에 헌신하였다. 롱고는 초등학교와 고아원을 설립하였고, 죄수들의 자녀를 위한 인쇄소와 기술학교를 개설하였다. 또한 묵주기도에 관한 여러 저술을 남기며 묵주 신심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으며, 1906년에는 아내와 함께 전 재산을 교황청에 기증하였다. 그는 1926년 10월 5일, 85세 나이로 선종할 때까지 평생을 묵주기도 전파에 바쳤다. 그의 유해는 바르톨로 롱고 경당의 제단 아래에 안치되어 있으며, 지하 크립트에는 백작부인과 라덴테 신부, 콘체타 수녀 등의 무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3) 교황과 묵주기도 성모 성지
교황 레오 13세는 롱고와 오랫동안 영적인 문제와 자선활동에 대해 협력관계를 맺고 격려하였으며 1901년 폼페이 묵주기도 성모 대성당에 바실리카 칭호를 부여했다. 1965년 4월 23일 교황 바오로 6세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복원된 성모화에 대한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10월 21일 교황으로서는 처음으로 폼페이 성지를 방문하였으며, 다음 해 1980년 10월 26일 롱고를 시복하면서 그를 ‘묵주기도의 사도’라고 불렀다. 또한 교황 베네딕토 16세(2008년 10월 19일)와 프란치스코 교황(2015년 3월 21일)도 성지를 방문하여 성모님께 황금장미와 진주로 만든 묵주를 각각 봉헌하였다.
- 2008년 대성당을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좌) 중앙제단에서 기도를 바치는 프란치스코 교황(우)
2025년 5월 8일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콘클라베를 통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중앙 발코니에서 행한 첫 공식 인사에서 오늘이 바로 폼페이 묵주기도 성모님의 축일이라고 언급하며 “우리 어머니 성모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하시며 성모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라는 첫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는 ‘묵주기도의 교황’으로 불린 레오 13세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교황명을 레오 14세로 정했다. 2025년 10월 19일 교황 레오 14세는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바오톨로 롱고를 시성하였으며, 2026년 5월 8일 교황 즉위 1주년을 기념하여 폼페이 묵주기도의 성모 대성당을 방문하였다,
- 바르톨로 롱고 광장에서 이동하는 교황 레오 14세(좌) 바르톨로 롱고의 시성식(맨 오른쪽 사진),
[성모님의 군단, 2026년 9월호, 최하경 대건안드레아(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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