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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9월 27일 (일)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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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신약 외경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 고통의 성모 마리아

767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19:50

[신약 외경에 나타난 성모 마리아] 고통의 성모 마리아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은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하셨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복음서 십자가 대목에는 어머니의 고통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루카 2장에 어머니의 고통을 예고하는 시메온의 말이 전해집니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훗날 십자가 곁에서 어머니가 겪을 고통은 여기서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아픔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네 복음서

 

네 복음서 가운데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지켰다고 명시한 곳은 요한 19,25-27이 유일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 아주 가까운 거리에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세 복음서의 십자가 장면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습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는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여자들”을 언급하면서,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살로메를 나열합니다(마태 27,55-56; 마르 15,40-41). 루카 복음서는 이름을 열거하지 않고 “갈릴래아에서부터 그분을 함께 따라온 여자들”이 멀찍이 서서 십자가를 지켜보았다고 합니다(루카 23,48-49). 

 

세 복음서에 이름이 명시되지는 않았어도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었을 가능성은 배제되지 않습니다. 침묵이 부정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세 복음서와 요한의 진술이 서로 다른 이유는 강조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세 복음서는 ‘증인’이라는 관점에서 여인들이 멀리서 ‘예수님 죽음’의 목격자가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시는 장면을 통해, 교회라는 새 가족이 탄생했음을 보여 줍니다. 어머니와 제자가 연결되는 곳이 ‘십자가’ 바로 아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의 장소이자 탄생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 모두와 가족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신약 외경 니코데모 복음

 

2세기 전승을 바탕으로 4세기에 기록된 니코데모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길게 소개합니다. 이와 더불어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지킨 어머니에 대해서도 자세히 묘사합니다. 요한복음서가 십자가 곁의 어머니를 그리면서도 어머니의 고통에 대해서는 침묵하지만 니코데모 복음서는 다릅니다. 예수님이 당한 배신과 버려짐, 모욕과 고통,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상 죽음까지 줄곧 아들과 함께한 어머니의 고통이 생생하게 구체적으로 그려집니다(본문은 「신약 외경 1」에 실려있습니다). 

 

니코데모 복음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를 향하고 있을 때 어머니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요한이 집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가 예수님이 처형장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자 어머니는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네가 무슨 나쁜 일을 저질렀다고 그들이 너를 끌고 가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한단 말이냐?”하고 울면서 아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막달레나, 살로메와 다른 처녀들도 그녀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들이 군중 앞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가 요한에게 “내 아들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묻습니다. 요한이 “저기 가시관을 쓰시고 손이 묶여 계신 분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고 답하자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땅바닥으로 쓰러집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어머니는 큰 소리로 울면서 “내 주님, 내 아들아, 너의 아름다운 모습은 어디로 꺼져버렸단 말이냐? 이토록 고통받는 너를 내가 어떻게 지켜본단 말이냐?” 하고 말하면서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고 가슴을 칩니다(10). 이 행동은 어머니가 느꼈을 극도의 고통을 표현합니다. 

 

어머니는 그 뒤로도 줄곧 십자가 곁을 지키며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들을 함께합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은 어머니와 요한을 이어주시고, 어머니는 “내 아들아, 내가 우는 것은 네가 불의하게 고통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아들아, 너 없이 내가 어떻게 되겠느냐? 내가 너 없이 어떻게 산단 말이냐? 내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게 되겠느냐? 너와 함께 죽겠다고 장담하던 너의 제자들은 어디 있느냐? 너로 인해 낫게 된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어떻게 너를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느냐?” 하며 울부짖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아버지 제 영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라는 말씀을 남기고 숨을 거두십니다(11). 니코데모 복음에서 어머니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셨으며, 사람들이 예수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릴 때도, 무덤에 안치할 때도 그곳에 함께 계셨습니다. 십자가 처형의 시작부터 죽음, 무덤에 들어가시는 순간까지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했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고통을 참척(慘慽)이라고 부릅니다. 참혹한 근심이라는 뜻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참척의 고통 속에서 아들의 마지막을 함께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신 결정적 순간이 바로 십자가 아래, 참척의 순간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우리를 잇는 연결고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인 듯합니다.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성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에 지내는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어머니의 고통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결되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머니와 우리를 한 가족으로 묶어줍니다.

 

-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지오토 14세기 초, 파도바 스크로베니 경당 프레스코화

그림 한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있고 그 위쪽 하늘에는 깊은 슬픔에 잠긴 천사들이 묘사되어 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그릇으로 받거나, 자신의 옷을 찢으면서 격렬한 고통과 애도를 표하고 있다. 십자가 아래 왼쪽에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실신한 어머니 마리아가 있으며, 사도 요한과 다른 여인들이 곁에서 그녀를 부축하고 있다. 십자가 발치에서 울고 있는 사람은 마리아 막달레나이다.(Ⓒ wiki commons)  

 

[성모님의 군단, 2026년 9월호, 송혜경 비아(한님성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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