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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순교자들 이야기4: 더 나은 신앙생활을 위해 떠난 순교자들

260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9-27

[순교자성월 – 순교자들 이야기] (4) 더 나은 신앙생활을 위해 떠난 순교자들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인 오늘 더 나은 신앙 생활을 위해, 또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피해 다녔던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을 나누고자 합니다.

 

복자 김강이(시몬)는 충남 서산 출신으로 입교한 뒤에는 재산과 종들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전북 완주군 고산면으로 이주하였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후에는 등짐장사를 하다가 온전히 신앙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경북 영양군 석포면 포산동 머루산으로 들어가 교우촌을 일구었습니다. 이후에도 다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울진에 정착하였는데 1815년 을해박해에 체포되어 안동에 수감되었다가 강원도의 수부(首)인 원주에서 1815년 50여 세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복자 박경화(바오로)는 충남 홍주 출신으로 33세에 입교하였는데, 1791년 박해에 체포되었으나 배교하여 석방되었습니다. 회개한 후, 더 철저하게 신자의 본분을 지키기 시작하면서 신앙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나 산중으로 이주하였습니다. 60세가 지나 1818년 단양의 깊은 산속 가마기 마을로 가서 9년 동안 살았고, 1827년 다시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 멍에목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체포되어 상주로 끌려갔고, 대구 감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오."라고 하였으며, 1827년 7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성 장주기(요셉)는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 출신으로 용인에서 중병이 걸려 대세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회장으로 임명된 그는 1845년에 배론으로 이주하였고, 1855년에 자신의 집을 신학교로 봉현하였고, 신학교의 집주인으로 교우촌의 회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성사를 받을 때마다 자식들에게 “치명하여 예수님의 구속하신 은혜를 보답하기가 항상 소원이라”고 하였습니다. 병인박해에 체포되어 충남 보령 오천면 영보리 갈매못에서 1866년에 순교하였습니다.

 

순교자 하 베드로는 경북 풍기읍 출신으로 제천시 자작동에 와서 살다가 배론으로 이주하였습니다. 1868년 10월에 체포되어 충주로 끌려가는데, 그의 동생은 형이 체포되는 것을 보고 “내 형이 잡혀가시는데, 내 어찌 안 잡히리오? 나도 한가지로 잡혀가 치명하여 형님과 한가지로 천당 복을 누리겠다.”라고 하면서 형과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그때 나이 60여 세였습니다.

 

순교자 박공수(베드로)는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 황달모루 출신으로 1839년 박해에 제천 청풍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 후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동산리 동산 밑에 와서 살다가 칼레 신부님의 복사로 활동하였고,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이리저리 다니다가 제천시 수산면 대전리에 사는 심정도의 집에 머물다가 1868년 심정도와 그의 아들 심공직과 함께 체포되어 서울에서 38세의 나이로 순교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을 위해 여러 번 이주한 순교자들의 삶은 인간적으로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더욱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갖고 따뜻한 배려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2026년 9월 27일(가해)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원주주보 들빛 3면,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단양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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