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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교회의 기도: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신 예수님

231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9-27

[교회의 기도]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신 예수님”

 

 

지난 시간에는 성모님의 기도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밀어내지 않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믿으며 마음속에 간직하는 자세에 대해서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오늘은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떠나 자주 외딴곳으로 물러가셨습니다. 사람들의 청함과 필요는 끊임없이 그분을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홀로 아버지 앞에 머무르셨습니다. 그 물러남은 사람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한 분, 아버지와 함께 있기 위한 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하루의 어느 한순간에 그치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의 연결은 끊이지 않는 기도, 곧 삶 전체를 꿰뚫는 하나의 흐름이었습니다. 그 끊임없는 연결 속에서 예수님께서 머무르셨던 자리는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사랑입니다. “마련하신”이라는 표현은 사랑이 즉흥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청하기 전에 이미 준비되어 있던 사랑이며, 멕시코의 성서학자 후안 로페즈 베르가라는 그 사랑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이들을 돌보시는 사랑은 결코 마르지 않으며, 그 무한한 사랑이 지닌 영원성을 향하여 시선을 돌리도록 저희를 격려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사랑은 창조하는 사랑입니다.” - 후안 로페즈 베르가라, 『예수님의 기도』, 51쪽.

 

온 피조물을 보듬어 안아주시는 아버지의 사랑은 따라서 그분께서 마련해 주신 자리, 곧 그분의 창조 행위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기 이전에 이미 그분께서 마련해 놓으신 자리가 있음을 기억하게 하고, 우리의 기도는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는 그 사랑의 길 위로 걸어가는 것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보듬어 안아주신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기쁨과 성취의 순간만을 감싸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침묵, 감당하기 힘든 상실과 기다림 안에서도 조용히 머무르셨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후안 로페즈 베르가라는 다음과 같은 묵상을 전합니다.

 

“아버지, 저는 사람들에게 자신 안에 갇히지 말고 자신을 넘어서서 바라보는 법을 배우라고 독려하였습니다. 삶의 선함을 믿고 더욱 성장하여, 새들이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미래를 지나치게 걱정하지는 말라고 말입니다.” - 후안 로페즈 베르가라, 『예수님의 기도』, 51쪽

 

예수님께서 외딴곳으로 나가셔서 홀로 머무셨던 그 시간은 단순한 인간적 고독의 자리만이 아니라, 아버지와 머무시는 가운데 진리이신 분과 연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도는 진리를 삶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이신 분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던 순간순간이 바로 하느님의 자기 계시(Selbstmitteilung)였고, 사람들을 보살피며 아버지께로 나아가고자 하셨던,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현존 앞에서 기도로 아버지를 뵈옵고, 저를 비추는 아버지 진리의 빛을 받으며, 또 메시아 왕국의 기초를 다지는 아버지의 계획에 참여하면서 참된 삶은 다른 곳에 있음을 느낍니다. … 아버지, 저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살피시며, 끊임없이 저희를 바라보아 주십시오.” - 후안 로페즈 베르가라, 『예수님의 기도』, 49-50쪽.

 

예수님의 기도는 모든 피조물을 대신하여 자비를 청하는 겸손한 이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그분의 고독은 자신을 위한 고독이 아니었으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주인이신 그분과의 내밀한 친교 속에서 이루어지는 간절한 청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멀어지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더욱 깊이 사랑하기 위하여 아버지께 가까이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기 위하여 물러나셨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외딴곳에서의 침묵은 세상을 등지는 침묵이 아니라, 세상을 다시 품기 위해 준비되는 침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잠시 멈추어 아버지 앞에 머무는 자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새로운 하느님이 아니라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하느님, 우리가 청하기 이전부터 우리의 삶을 품고 계셨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기도는 바로 그 사랑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만난 사람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이전과 같은 세상이지만 조금 다른 눈으로, 조금 더 넓어진 마음으로, 그리고 누군가를 다시 품을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기도의 모습일 것입니다. 물러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랑하기 위해 물러나는 것. 그리고 그 외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 말입니다.

 

[2026년 9월 27일(가해)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가톨릭마산 4-5면, 이승언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청년사목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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