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 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18: 오디세이아 -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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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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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 (18) 「오디세이아」 : 환대
편견과 조건 없이 베푸는 진심… 이웃 사랑 실천의 핵심 가치
낯선 여행객을 집안에 받아들이고 돌보는 환대의 문화는 인간의 문명이 시작되면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교통수단이나 안전망이 매우 제한적이었던 시대에 여행은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다. 여행자들이 안전하게 쉬어 갈 수 있는 방법은 전적으로 집주인의 친절함에 달려있었다.
기원전 8세기경 호메로스가 지은 「오디세이아」는 인류 최고의 영웅 서사시로 여겨진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가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가는 10년 동안의 여정과 모험을 그리고 있다. 물리적 여정을 통하여 내적 성장으로 나아가는 휴먼 스토리다. 그리고 환대라는 주제가 그러한 과정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환대는 비슷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일단 환영한다. 그리고 자리를 권하고 음료와 음식을 제공하며,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다.
제3권에서 텔레마쿠스는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생사를 알기 위해 필로스 섬의 현자 네스토르왕을 방문한다. 텔레마쿠스 일행이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낯선 이들을 보자 “주위로 몰려들어 손을 맞잡으며 왕 앞으로 인도했다.” 네스토르왕의 아들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맞이한 뒤, 부드러운 양털 가죽 위에 그들을 앉혔다.”
그런 다음 “고기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고, 황금 잔에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충분히 먹고 마신 후에 네스토르왕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손님들께서 식사를 마치셨으니, 그분들이 누구인지 여쭈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 이방인 여러분, 여러분은 대체 누구십니까?“
매우 흥미로운 점은 환대의 순서이다. 어떤 낯선 이가 찾아왔을 때, 일반적으로 제일 먼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본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환대는 손님의 정체성을 알아내기 전에, 먼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접한다. 그러고 나서 손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사람이 해를 끼칠지 혹은 친구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손님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의무감을 보여준다.
즉, 손님의 정체성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한 인간으로서 돌봄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설사 손님이 주인의 적 혹은 원수일지라도, 그 전에 손님은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호받아야 한다. 제우스 신은 손님들의 보호자로서, 환대는 신성한 의무이다. 제8권에서 알키노오스왕은 “손님을 자신의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손님은 가족과도 같은 신성한 관계로 여겨진다.
그리스도교에서도 환대는 그저 예의를 지키거나 손님을 대접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핵심 가치이다. 환대란 소외당한 사람, 가난한 사람, 낯선 사람, 도움을 요청한 사람을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존엄을 지닌 인격적 존재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실천이다.
환대는 하느님과 인간의 상호관계성 안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받아들이고 환영한다. 창조, 용서, 계약, 구원을 통하여 죄인과 이방인, 길을 잃은 이들을 사랑 안으로 받아들이신다. 동시에 인간이 되신 강생을 통하여 인간의 환대를 기대하신다. 강생을 통하여 인간의 취약함과 의존성이라는 조건 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한 아기로, 나그네로, 손님으로, 마침내 죄인으로 고난받는 이로 우리에게 오신다.
「오디세이아」에서 환대는 문명, 사회 그리고 한 가정의 도덕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손님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베푸는 환대는 주인의 윤리적 깊이를 드러낸다. 오디세우스와 여러 등장인물은 자신들의 정체를 의도적으로 숨긴 채 자주 손님으로 나타난다. 에우마이오스는 가난한 모습으로 변장한 오디세우스를 환대한다. 반면 폴리페모스는 환대의 의례를 거부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님들을 폭력적으로 대한다.
특히 20년 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거지 노인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자신의 궁전으로 들어간다. 주인공 가족의 환대를 악용하고 있던 구혼자들에게 음식을 구걸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발로 차이고 비웃음을 당하지만, 분노를 참아낸다. 넘치도록 환대를 받고 있던 그들의 오만함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마므레의 참나무 아래에 세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누구인 줄도 모르면서, 그저 평범한 나그네인 줄 알고, 이 세 명의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한다. 이들은 바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숨긴 천사들이었다. 아브라함의 환대를 받고 나서,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알려준다.
마태오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감추어진 정체성과 환대에 대해 언급한다. 최후의 심판 때, 양과 염소를 가르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고 말한다.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환대를 베푼 것과 같다. 예수님은 도움이 필요한 나그네 안에 현존하신다.
제14권에서 에우마이오스도 제우스 신에 대한 신앙심에 기반하여 나그네를 대접한다. 오디세우스가 거지로 변장한 자신을 극진히 대접해 주는 에우마이오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그네여, 설령 이곳에 당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내가 그를 모욕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오. 모든 나그네와 거지는 제우스에게서 오는 이들이기 때문이오.”
에우마이오스가 보여준 환대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가난한 사람이 베푸는 친절이다. 돼지치기(swineherd)로 일하고 있는 그는 거지로 변장한 오디세우스를 환대하며 자신의 한계를 넘어 아낌없이 베풀어 준다. 고급 침대는 아니지만, 자신이 사용한 가죽과 나뭇잎을 모아 따뜻한 잠자리를 만들어 준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을 제공한다.
즉, 환대는 단지 물질적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자나 부유한 이들의 과시적인 환대와 달리, 돼지치기의 환대는 손님에 대한 순수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부자들이 풍족한 재산 중에서 큰돈을 헌금하는 것보다,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전 재산 렙톤 두 닢이 훨씬 더 크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더욱이 에우마이오스는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고 나서, 손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정서적 교감으로까지 나아간다. 손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주인 오디세우스를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다. 이름 모를 거지를 환대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인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환대는 정서적 친밀감을 통하여 완성된다.
환대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환대를 통하여 나그네는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정체성을 공동체 안에서 회복하고, 주인은 집안에서의 도덕적 품격을 더욱 높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환대는 나그네와 주인 모두를 성장시킨다.
[가톨릭신문, 2026년 9월 13일, 김치헌 바오로 신부(예수회 · 서강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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