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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근대 나주지역 천주교회의 설립과 교육 · 문화 활동

207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15:22

근대 나주지역 천주교회의 설립과 교육 · 문화 활동



1. 머리말

2. 나주지역의 첫 본당 설립

3. 나주읍에의 본당 설립

4. 나주지역 천주교회의 교육·문화 활동

5. 맺음말



국문 초록

 

고려 성종 때부터 전라도 남부의 중심지였던 나주지역에는 1801년의 신유박해 이전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었고, 기해박해와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들의 순교는 나주지역 신앙공동체 형성의 밑거름이 되었다. 박해를 피해 함평에 은거한 정락의 전교로 나주 계량에 천주교가 전파되었고, 신앙공동체가 만들어졌으며, 1908년 계량에 나주지역의 첫 본당인 나주본당(계량본당)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본당신부인 선교사가 동원령에 의해 본당을 떠났고, 오랫동안 계량의 나주본당은 성직자 부재 상황에 놓였고 선교도 침체되었다. 한국인 성직자들이 부임하고 상당 기간을 재임하면서 나주본당은 안정을 찾아갔다. 한편 계량의 나주본당을 통하여 나주군의 각 면으로 천주교가 전파되었고, 1935년 나주지역의 두 번째 본당인 나주읍의 나주본당이 설립되었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계량본당과 나주본당의 선교사들은 국적이 미국이었고, 미국은 일본과 적대 관계였다. 일제는 두 선교사를 감금하고, 곧이어 추방하였다. 계량본당도 나주본당도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외국인 선교사들이 다시 한국에 들어오고 한국인 성직자들이 배출되면서 나주지역의 천주교회는 활기를 되찾아갔다.

 

열악한 상황에서였지만 나주지역의 천주교회는 교육과 문화 활동에도 관심을 두었다. 서양식 사제관과 성당 건립도 나주천주교회가 전개한 문화 활동이었다. 벽돌조의 사제관과 성당, 철망 콘크리트 성당은, 작은 규모의 초가에서 생활하던 한국인들에게 새롭고 놀라웠을 것이다. 나주지역의 천주교회는 계량 지역의 일반 학교 운영에 참여하고, 계량본당 안에서 여성 교육을 하였다. 나주본당 안에 해성학원을 개설하였고, 계량본당에는 신성학술강습원을 설립하여 나주지역의 문맹퇴치에 기여하였다. 또한 나주지역 천주교회는 크리스마스 등에 연극[성극]을 연출하여 신자들과 비신자들에게 문화 향유의 시간을 제공하였다. 수천명의 비신자들도 참석한 성체 거동도 한국인들을 향하여 펼친 종교문화 활동이었다.

 

[교회사 연구 제68집, 2026년 6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윤선자(전남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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