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교리: 혐오가 가득한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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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7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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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혐오가 가득한 세상에서
인터넷을 보면 요즘 우리 사회가 혐오로 가득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 유행어로 사용되고, 밈(Meme)의 형태로 아무렇지도 않게 공유되곤 합니다.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상대를 비난하고 미움을 부추기는 일은 너무나도 흔해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악행임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물론 누군가를 싫어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달라서 답답할 수 있고, 잘못된 행동을 보면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을 모두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며 잘못된 주장이나 행동에 침묵하기 보다는 잘못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정의를 위해 강하게 비판하는 것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잘못을 비판하는 것과 사람을 혐오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어떤 사람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까지 가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혐오는 바로 이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한 사람을 더 이상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저쪽 사람’, ‘틀린 사람’, ‘불행해도 괜찮은 사람’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은 그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능력이 많아서도, 착한 사람이어서도, 나와 같은 편이어서도 아닙니다. 인간은 그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존엄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잘못된 생각에 반대하면서도 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존엄은 지켜줘야 합니다. 즉, 오류를 비판할 수는 있지만 오류를 범한 인간을 조롱하고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한편, 혐오가 언제나 거창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재미있어서 누른 ‘좋아요’ 하나, 공유한 짧은 영상 하나, 별생각 없이 따라 쓴 댓글 하나에서 혐오는 힘을 얻습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작은 조롱들은 어느 순간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 놓고, 스스로 얼마나 어두운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감각은 다시 또 다른 혐오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렇다면 혐오가 넘쳐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소박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험담하지 않는 것, 조롱성 발언을 재미로 퍼뜨리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쾌해하지 않는 것, 가까운 사람이 지나친 말을 할 때 지적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그에게 붙은 수많은 이름표보다 먼저 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고립시키고 분열시키는 사슬을 끊고 그 자리에 다리를 놓는 것이 사랑입니다.”(〈모든 형제들〉 62항) 상대가 어느 편인지 묻기 전에 그 역시 나와 같은 존엄한 한 사람이며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임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혐오로 갈라진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보여야 할 형제애의 모습입니다.
[2026년 9월 6일(가해) 연중 제23주일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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