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지] 세계의 성모 성지: 스페인 과달루페(성모상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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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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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성모 성지] 스페인 과달루페(성모상 성지)
과달루페 성모 왕립 수도원 검은 성모
- 과달루페 왕립 수도원의 전경
- 스페인 과달루페 성모상 1) 성모상의 역사
전승에 따르면 복음사가 루카는 성모상을 제작하였으며, 성 루카가 선종하자 이 성모상은 그의 곁에 놓여 관에 함께 묻혔다고 전해진다. 4세기경 그리스 테베에 있던 성 루카의 유해는 성모상과 함께 콘스탄티노플의 성 사도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교황 펠라지오 2세에 의해 교황 사절로 콘스탄티노플에 파견되었던 추기경 그레고리오는 이곳에서 이 성모상을 접한 뒤 각별한 성모 신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582년 다시 로마로 복귀할 때 이 성모상을 모셔 왔으며, 590년 교황으로 선출되어 그레고리오 1세가 되었다. 교황은 자신이 깊이 공경하던 이 성모상을 세비아의 대주교 산 레안드로에게 하사하여 이베리아반도에서 가톨릭 신앙의 확산을 도모하였다.
성모상은 세비아에서 711년 북아프리카 무어족의 침입이 시작될 때까지 공경받았다. 714년경, 무어족을 피해 세비야에서 피신하던 성직자들은 성모상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시에라 데 알타미라의 과달루페 하천 인근의 땅속에 성모상을 숨겼다. 과달루페는 이 지역의 방언으로 ‘감추어진 땅’이라는 의미다. 1326년 목동 힐 코르데로는 잃어버린 소를 찾기 위해 여러 날을 헤매다가 죽은 소를 발견하였다. 그가 죽은 소 앞에서 성호경을 긋는 순간 소가 살아났으며 이어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다. 성모님은 이곳의 땅을 파면 자신의 조각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조각상을 모실 수도원과 성당을 세우라고 말씀하신 뒤 사라지셨다. 이 소식을 들은 사제 페드로 가르시아는 우선 작은 성모 경당을 세워 성모상을 모셨으나 경당은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서서히 훼손되어 갔다. 14세기 당시 이베리아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1세 국왕은 1335년경 과달루페 근처에서 사냥하다가 우연히 성모상을 모신 경당을 방문하게 되었다. 국왕은 성모님에 대한 전승을 들은 뒤 황폐한 경당을 보고 새로운 성지 건립을 구상하였다.
1340년 그라나다 왕국과 연합한 이슬람 군대가 해협을 넘어 이베리아반도로 침공하자 알폰소 11세 국왕은 전투를 앞두고 여러 차례 과달루페 경당을 찾아 성모님의 전구로 승리를 청하였다. 같은 해 10월 30일, 알폰소 국왕과 포르투갈 왕국의 연합군은 살라도 전투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이슬람 군대를 물리치고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의 팽창을 저지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이 전투로 승기를 잡은 카스티야 왕국은 약 150년 후 그라나다를 근거지로 한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면서 이베리아반도에서의 이슬람 지배를 종식시킬 수 있었다. 알폰소 11세는 살라도 전투에서의 대승을 성모님의 중재로 받아들여 1340년 12월 25일 과달루페 성모 경당을 방문해 성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이후 과달루페 성모님은 위기에 처한 스페인의 가톨릭 신앙을 지켜준 성모님으로 널리 공경받게 되었다. 국왕은 과달루페에 토지와 특권을 하사하고 왕실 수도원을 건립함으로써 과달루페를 카스티야 왕실의 성지로 격상시켰다. 이후 알폰소 11세 국왕을 비롯한 카스티야의 거의 모든 국왕들이 이곳을 순례하는 전통이 형성되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대항해에 앞서 과달루페 성지를 방문해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였으며 나무로 만든 성모상 복제품을 지니고 항해에 나섰다. 그는 카리브해의 섬에 도착하자 과달루페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며 섬을 성모님께 봉헌하였는데 이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톨릭 신앙이 뿌리내리는 상징으로 이해된다. 또한 콜럼버스와 함께 스페인으로 온 일부 인디오들이 과달루페 성당 앞 광장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이 장면은 오늘날 성당 입구의 청동 부조에 새겨져 있다.
- 인디오들에게 세례를 줄 때 사용되었던 야외 세례반(좌), 성당 입구에 있는 인디오 세례 청동 부조(콜럼버스가 참석한 가운데 과달루페 성당과 성모상 앞에서 인디오들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의 청동 부조)(우)
1531년 멕시코의 테페약 언덕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은 자신을 아즈텍어로 ‘테 과틀라소페우’라고 소개하셨다. 시현자인 후안 디에고로부터 이 내용을 전해 들은 스페인 출신의 초대 주교 후안 데 수마라가는 그 발음과 성모님의 살색이 스페인의 과달루페 성모님과 매우 유사하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테페약 언덕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은 ‘멕시코 과달루페의 성모’로 불리게 되었다.
2) 과달루페의 성모 성지
성지는 성모상이 모셔진 15세기의 성당(바실리카), 성당 뒤쪽의 바로크양식의 합창단석, 방대한 소장품을 갖춘 세 개의 박물관, 수르바란의 ‘성 예로니모의 천상 영광’이 있는 성물실, 성모상의 망토를 전시하고 있는 유물실, 14세기에 만든 무데하르 양식의 회랑, 고딕 양식으로 건립된 순례자들의 숙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수 박물관은 전례 의복과 제의가 전시되어 있으며, 조각과 회화 박물관에는 엘 그레코, 고야, 에가스 쿠에만 등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서적 박물관에는 수도원에서 필사된 90권 이상의 귀중한 문헌들이 전시되고 있어 과달루페 수도원의 수준을 보여준다.
- 제단화 ‘성 예로니모의 천상 영광’이 있는 성물실(좌), 무데하르 양식의 회랑(우)
1326년에 발견된 루카의 성모상은 나무 재질로 인해 손상이 너무 심하여 12세기 말에 조각된 성모상이 현재 중앙제단의 제단 벽에 모셔져 있다. 이 제단 벽을 스페인 성당 건축에서는 레타블로(Retablo)라고 부르며 주로 조각물로 구성되어 있다. 과달루페의 레타블로는 총 네 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하단의 중앙에는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성상이, 2단의 중앙에는 과달루페 성모상이, 3단의 중앙에는 성 예로니모의 성상이, 4단의 중앙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화려한 조각물의 조합이 아니라 스페인 가톨릭과 과달루페 성지의 역사와 정체성을 조각으로 표현한 신앙 고백문으로 볼 수 있다.
- 수도원 성당 중앙제단의 레타블로(제단벽)(좌), 성당 입구에 있는 성모상 청동 부조(1907년 알폰소 13세 국왕이 성모님을 엑스트레마두라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한 100주년을 기념하는 청동 부조)(우)
3) 교황과 과달루페의 성모 성지
1928년 교황 비오 11세는 과달루페 성모상에 대한 대관식을 승인하면서 성모님께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교령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0월 12일, 성모님께 대한 대관식이 알폰소 13세 스페인 국왕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국가적 행사로 거행되었다. 10월 12일은 콜럼버스가 스페인을 위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날을 기념하는 스페인의 공식 국경일로, 과달루페에서는 성모상을 모신 행렬이 마을을 순환하는 전통 행사가 거행되고 있다. 1982년 11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스페인 순방 중 과달루페를 방문하여 과달루페 성모 신심의 중요성과 신자 공동체의 삶을 강조하였다. 이후 1993년 유네스코는 과달루페의 왕립 수도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8월호, 최하경 대건안드레아(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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