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앙] 신앙에 주파수를 맞춰요: 신앙과 이성은 서로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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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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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주파수를 맞춰요] 신앙과 이성은 서로 의존한다
신앙(Fides)이란 인식론적 차원에서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특별한 인식이다.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르셨던 분,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고백록」에서 “님”이라고 불렀던 분, 그리고 우리가 항상 기도와 전례 중에 부르는 그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아는 인간의 특별한 인식이 바로 신앙이다.
이성(Ratio)이란 사물과 사물의 이치, 사건과 사건의 의미와 맥락을 받아들이고 알고 인식하는 인간의 개념적 사유 능력이자, 지성 활동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이성을 갖고 있으며 이성은 ‘하느님’이라는 신비(Mysterium)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
인간 정신 속에는 신앙과 이성이 있다. 이 둘은 인간 인식의 두 영역이다. 인간은 신앙으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초자연적 계시인 진리를 인식하고, 이성으로 보이는 사물과 사물의 이치를 인식한다.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은 인간 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려고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신앙과 이성」)
신앙은 이성을 강화하고 순수하게 해주며, 이성은 신앙이 헛된 믿음과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신앙에 빠지지 않도록 인간을 보호해 준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받아들여 그 하느님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신앙인이라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지만 그 신비 주변에 서성이는 사람은 철학자이다. 더 나아가 하느님도 모르고 거룩함도 모르는 사람은 이방인이다.
이상의 고찰을 통해 신앙과 이성은 서로 의존한다. 신앙은 이성을 완전하게 해주며, 이성은 신앙을 받아들여 완전하게 된다.
“이성은 자신이 추구하는 궁극적 진리에 도달하기 위하여 신앙으로 조명될 필요가 있고, 초자연적 진리를 역사적 조건 속에서 수용해야 하는 신앙은 이성의 날카로운 분석과 해명을 필요로 한다.”(이재룡 「회칙 ‘신앙과 이성’의 역사적 의미」 참조)
이렇게 이성은 신앙의 조명과 인도를 필요로 하고, 신앙은 이성의 검증과 도움을 필요로 한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앙과 이성 둘 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따라서 양자 사이에는 어떠한 모순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대이교도대전」 참조)
따라서 교회는 신앙만을 고집하는 신앙주의(fideismus)도, 이성의 자율성과 절대성을 내세우는 이성주의(rationalismus)도 반대한다.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강조한다. 끝으로 신앙 행위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믿어야 할 것이라고 선포된 것이 합리적으로 가능한 것임을 명백히 한다. 둘째, 신앙에서 주어지는 초자연적인 진리를 인간에게 전해주는 존재자는 바로 신 자체임을 명백히 한다. 이것은 곧 ‘신앙의 동기’에 대한 완전한 확실성을 확보하게 해준다는 의미이다. 셋째, 살아가는 동안 어느 순간에 하느님의 말씀이 주어지면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한다. 곧 ‘신앙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해준다. 넷째, 계시된 신비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추구하도록 이끌어 준다.”(김정호 「신을 아는가 믿는가?」 참조)
[가톨릭신문, 2026년 8월 23일, 김석태 베드로 신부(대전교구 도룡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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