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자료실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6년 8월 20일 (목)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가톨릭문화

sub_menu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마음씨 좋은 약방 할아버지, 하느님의 종 김성희 암브로시오

257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8-19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 마음씨 좋은 약방 할아버지, 하느님의 종 김성희 암브로시오(1815-1868)

 

 

2006년부터 20년 동안 연재를 이어오고 있는 아베 야로의 만화 『심야식당』은 일본의 작은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상처를 안고 찾아온 사람들은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열 명도 채 들어오지 못하는 작은 식당은 찾아오는 이들이 위로를 얻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공간이 됩니다. 잔잔하고 따뜻한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문득 내가 머무는 자리는 누구나 찾아와 위로와 치유를 얻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인지 묻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라 치빌타 카톨리카」와의 인터뷰에서 교회를 ‘전투가 끝난 뒤의 야전병원’에 비유했습니다. 야전병원은 완벽한 시설을 갖춘 곳은 아니지만 가장 위급한 사람부터 살리는 곳입니다. 교황은 교회가 상처 입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아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하며, 사목자는 무엇보다 ‘자비의 봉사자(ministers of mercy)’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교황의 인터뷰 이탈리아어 원문은 동사원형(curare)을 반복하여, ‘상처를 치유하는 것’ 자체가 교회의 가장 우선적인 사명임을 힘 있게 전합니다.

 

“상처를 치료해야 합니다. 상처를 치료해야 합니다.”

“Curare le ferite, curare le ferite.”

 

하느님의 종 김성희 암브로시오는 경기도 구산의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외아들로 태어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향을 떠난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스무 살에 조선에 입국한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그는 아버지와 함께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가족과 교우하며, 유방제 신부와 모방 신부, 앵베르 주교가 머물며 쉴 수 있는 장소를 구산에 마련하고 교우촌을 성장시키는 데 힘썼습니다.

 

그러나 1839년 기해박해의 여파는 그의 가문과 구산 교우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둘째 삼촌과 아버지를 1841년에 차례로 순교로 떠나보낸 그는 풍전등화와 같은 현실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한의학을 익혀 약방을 열었습니다. 약방은 가문을 지탱하는 생계의 터전이었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대가 없이 약을 나누는 자비의 자리였습니다. 또한 박해 속에서도 교리를 가르치고 신앙을 나누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 마음씨 좋은 약방 할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1868년, 약방 할아버지 김성희 암브로시오는 막내 삼촌 김윤심 베드로 알칸타라와 여러 친척들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압송되어 순교의 영광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의 병뿐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러 오셨고, 그 치유의 사명을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하느님의 종 김성희 암브로시오의 약방에서 약을 달이는 냄새는 그리스도의 향기였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남긴 가장 귀한 처방은 약재가 아니라 자비였습니다.

 

오늘 내가 머무는 자리는 지치고 상처 입은 이들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돌아갈 수 있는 ‘약방’이 되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종 김성희 암브로시오

저희가 주님의 교회 안에서

‘자비의 봉사자’가 되게 하시고,

아픈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2026년 8월 16일(가해) 연중 제20주일 수원주보 4면, 백정현 요셉 신부(수원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 총무)]  


0 4 0

추천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