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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녹) 2026년 8월 9일 (일)연중 제19주일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영성ㅣ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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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2026-08-09.....연중 제19주일 가해

2609 이철희 [gold] 스크랩 2026-08-08

연중 제19주일 (가해)

 

열왕기상권 19,9.11-13ㄱ      로마 9,1-5      마태 14,22-33

2026. 8. 9.

주제 :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

여름이라서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날씨는 한없이 더워지고 사람이 참고 견디는 일이 힘들다고 할 만큼 자연이 사람에게 큰소리를 칩니다. 이런 때가 되면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서 하소연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알아내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왜 이렇게 바뀌는지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서 도대체 무엇을 하시는지, 또 이 상황을 다르게 만들 좋은 방법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질문하는 것은 사람의 자유이지만, 사람이 하느님을 향하여 자기의 속마음을 드러내면서 책임을 하느님께로 미루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로 이 현상을 바꿀 방법이 사람에게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노력을 들여서 함께할 방법은 분명히 있겠지만, 그 일을 얼마나 인정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을 가리켜서 만물의 영장(靈長,=영묘한 힘을 가진 존재, 인간)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쓰는 표현의 의미를 모를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진짜 세상에 사는 만물의 영장일까요 그런 존재로서 현재 우리가 사는 모습은 얼마나 올바르다고 하겠습니까

 

하느님의 길을 준비하고 선포했던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라는 세상 임금의 시기와 질투로 세상의 삶을 마친 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가르치고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과 놀라운 일을 가능하게 했던 힘으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사람들이 생각하던 일과는 다르게 산으로 올라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야말로 당신이 하신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힘이라고 예수님께서 인정하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시기 오랜 시간의 이전에, 엘리야 예언자도 세상의 임금이었던 아합과 부딪히면서 호렙산으로 피신했고, 거기에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임금과 부딪혀서 도망쳤던 엘리야 예언자가 만난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을까요

 

하느님은 사람이 놀랄 크고 강한 바람이 있는 가운데 계신 것도 아니었고, 세상의 사물이 온통 두려워할 지진의 한가운데에 계신 것도 아니었으며, 만사(萬事)를 허무한 것으로 만들 힘을 가진 불과 함께 계신 것도 아니었으며, 사람의 생각이나 기대와는 다르게 조용한 소리와 함께 계셨다는 놀라운 표현을 열왕기 역사서는 우리에게 전합니다.

 

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을 향하여 여러 가지로 바람을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빼고 나와 함께 계시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살기도 하고, 오로지 나에게만 하느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보여주기를 청하는 마음을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몇 사람을 선정하여, 그에게 놀라운 힘을 보이시는 분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을 놀라게 하고 어지럽게 하는 복잡함에 하느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조용한 소리와 함께 계셨다고 기록하는 열왕기 역사가가 쓴 표현의 의미를 우리는 알아들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당신의 뜻을 어떻게 드러내실까요 하느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당신의 뜻을 드러내는 방법을 우리가 온전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께서도 분명히 세상을 향하여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는 방법은 있을 것이고, 우리가 알아들어야 할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그 방법을 모른다고 하거나 하느님이 선택하신 방법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하여 하느님은 세상을 향해서 무관심하다거나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신다고 말해서는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하느님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럴 뿐입니다. 그 모습을 우리는 첫째 독서에서 엘리야예언자가 호렙산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모습으로 살폈습니다. 사람이 정하고 알아듣는 방법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실까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느님은 세상을 향해서 아무런 방법으로도 당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으신다고 말해도 괜찮을까요 아마도 아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느님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을 향해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을 이해하도록 애쓰면 좋겠습니다. 사람으로 사는 내가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면, 그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어떻게 보이시겠습니까 사람에게 당신의 존재를 알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아듣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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