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영엽 신부의 나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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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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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나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의 의미
“신학교에 가겠습니다.”
“안 된다!”
대학교 진학을 앞둔 어느 날 저녁, 아버지께 사제가 되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단박에 말을 자르셨고 밖으로 나가셨다. 아버지는 크게 화가 나면 집 밖으로 나가시곤 했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내 말을 다 들어주실 정도로 자상하셨다. 그러나 한번 결정하면 절대 바꾸는 법이 없으셨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때 어머니가 따라 들어오셔서 나지막이 나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네 인생은 네가 선택하렴.” 어머니의 이 한마디 말씀이 내 인생의 행로를 결정지었다.
나도 고집이 있어서인지 아버지 몰래 신학교에 원서를 냈다. 이후로 오랫동안 아버지와 나는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몇 년 후 세상을 떠나시기 전 아버지는 나에게 반대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사제의 길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서 너를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네가 어렵게 선택했으니 좋은 신부님이 되어 주려무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는 가끔 생각해 본다. 만일 그날 밤, 어머니의 말씀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살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까? 아마도 나의 결핍을 인정하는 것, 그게 가장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7대째 가톨릭인 우리 집은 형제 세 명이 모두 사제의 길을 걷고 있다. 사제들은 보통 사제품을 받을 때 기념 상본에 성경 구절을 담는다. 나에게도 가슴에 품고 사는 한 구절이 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이토록 그리워합니다.”(시편 42,2)
신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성가책을 펼쳤는데 이 구절이 있었다. 악보 옆에는 물가의 사슴 그림도 있었다. 그냥 가슴에 와닿았다. 신학교 내내 이 구절과 그림을 놓고 묵상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로 시작하는 시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다. 유명한 이 시 덕분인지 사슴은 언제나 고고하고 점잖은 동물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물을 애타게 찾는 암사슴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
은수자이자 수도원장인 성 에지디오(Aegidius)는 사슴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에지디오는 중세 서방 교회에서 널리 공경받던 성인 중 한 명이다. 10세기에 기록된 그의 전기에 의하면, 자신이 행한 기적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고향 아테네를 떠나 마르세유로 피신했다. 은수생활을 했던 그는 사슴의 젖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한 번은 서고트족의 왕 왐바가 일행을 이끌고 사냥을 나갔는데, 포수가 사슴을 명중시키고 달려가 보니 에지디오가 화살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왕은 이를 애통히 여기고 그를 위해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짓고 원장으로 임명했다. 그의 높은 덕을 흠모한 국왕이 그에게 고해성사를 받을 정도로 그의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사슴은 보통 몸이 날씬하며 다리는 길다. 사슴의 큰 특징인 뿔은 형태가 다양해 짧고 커다란 못처럼 생긴 것에서부터 길고 가지가 많은 것까지 다양한 모양이다. 매년 새로운 뿔이 나는데, 성장기에는 ‘녹용 껍질’(velbet)이라는 피부에 덮여 있다. 사향노루와 고라니는 뿔이 없는 대신 윗송곳니가 발달된 엄니를 갖고 있다. 성경에서 사슴은 양과 같이 좋은 동물로 소개된다. 성경에서는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좋은 짐승으로도 소개된다(신명 12,15). 또한 자유분방하게 뛰어노는 동물로,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될 하느님의 백성을 상징하기도 한다(이사 35,6).
물을 애타게 찾는 암사슴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우리들은 나름대로 부족과 한계를 갖고 있다. 처음에는 이 대목이 시적이라 좋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은 사막이라 물을 찾지 못한 사슴은 목숨을 잃는다. 또 사슴이 독이 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도 물이 있어야 해독할 수 있다.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사슴의 목마름이 얼마나 애절한 것인지,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를 말이다. 그런 마음이 드니 이 구절을 놓고 더욱 깊이 묵상하게 됐다.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하는 건 어쩌면 ‘출가’의 의미가 있다. 사제의 삶은 외롭고 고독하다. 그래서 신학생 때 ‘고독’에 대해 많이 묵상했다. 그런데 암사슴이 바로 고독한 존재이며, 인간이란 항상 목마른 존재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하느님을 더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내가 정말 목이 마르구나’ 그걸 알아채야 한다
인간은 무엇에 목말라하는가? 모든 사람은 더 좋은 삶을 갈망한다. 그래서 자신의 욕심을 채워 갈증을 해소하려 한다. 그런데 욕심은 끝이 없다. 자신이 생각한 목표에 도달하면 행복하겠지 한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면 만족을 모른다. 그러니 목마름은 끝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방인인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라고 하신다. 암사슴이 찾는 것은 바로 ‘생명’이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셨다. 율법에선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 길이요, 생명이라고 했다. 나를 따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결국 당신을 보고 배우라는 뜻일 거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목마른 영혼이다. 상처받기 쉽고 결핍된 영혼이다. 불완전하고, 스스로 만족할 수 없고 좌절하기 쉬운 영혼이다. 불쌍한 영혼이다.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니까 하느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영혼이다. 그래서 자신을 먼저 아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말 목이 마르구나’ 그걸 알아채야 한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그건 나의 부족함, 나의 결핍에 대한 인정이다. 그런데 그게 사실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다.
반포성당 보좌신부 시절, 주임이셨던 나상조 아우구스티노 신부님과 둘이 식사할 때면 자주 인생과 깨달음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간 삶의 허무함과 진정한 가치 등 많은 주제들이 오르내렸다. 가톨릭학생회의 뿌리이자 기둥이신 나상조 신부님은 항상 신선한 젊은이의 영혼을 갖고 계셨다. 나상조 신부님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너무 일찍 깨우치게 되면 세상이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요?” 한참을 생각한 나 신부님은 “인간이 그걸 일찍 깨우치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당시 나는 이상하게도 그것이 뭔지는 더 여쭈어보지 않았다. 내가 묵상할 일생의 주제를 주신 것 같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의 의미가 뭘까? 지금도 그걸 화두처럼 마음에 안고 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7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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