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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홍) 2026년 7월 5일 (일)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 신심 미사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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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상징 속 성인 읽기: 성인의 삶과 상징 (6) 밀라노의 성 아퀼리노와 성 베다 존자

256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18:40

[상징 속 성인 읽기] 성인의 삶과 상징 (6)

 

 

목을 관통한 칼: 밀라노의 성 아퀼리노

 

밀라노의 성 아퀼리노는 10세기 후반에 독일의 남부인 바이에른주의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났고, 쾰른에서 신학을 공부한 다음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쾰른 교구의 동료 참사원들이 주교로 추천하자 이를 거절하고 선교 사제이자 순회 설교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쾰른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갔는데, 그곳에서 기적적으로 콜레라에 걸린 사람들을 낫게 해준 일이 있었다. 그러자 파리에서도 성인에게 주교직을 제안했다. 이에 성인은 쾰른에서와 같은 이유로 파리를 떠났고,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의 파비아로 갔다.

 

얼마 뒤 성인은 밀라노로 옮겨가 그곳의 성 라우렌시오 성당에서 지냈다. 당시 이 도시에는 이단인 마니교를 따르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주교직을 마다하면서까지 선택한 순회 설교자로서 카타리파, 아리우스파, 마니교 등의 이단에 반대하고 맞서기를 서슴지 않던 성인은 밀라노에서도 마니교 추종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 밀라노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러다가 동료와 함께 마니교 이단을 따르는 사람이 휘두른 칼에 찔려서 순교했다. 성인의 시신은 어느 배수로에 버려졌다가 뒤늦게 발견되어 성 라우렌시오 성당에 부속된 소성당, 곧 성 아퀼리노 경당에 안치되었다.

 

그런데 성인의 활동 시기와 순교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다른 설이 전해 온다. 하나는 975년경에 태어나서 1015년에 순교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650년경에 아리우스주의 이단에 맞서 싸우다가 순교했다는 것이다.

 

성인을 나타내는 상징은 성인의 죽음과 연관된 칼이고,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는 성인을 칼에 목이 관통된 모습으로 묘사한다. ‘쾰른의 성 아퀼리노’라고도 불리는 성인은 오늘날까지도 밀라노, 쾰른, 뷔르츠부르크에서 공경받는다. 특히 밀라노 지역의 호텔에서 일하는 관리인(또는 짐꾼)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다.

 

 

손으로 받쳐 든 책: 성 베다 존자

 

성 베다 존자는 7세기 말 영국에서 태어나 7,8살 무렵에 친척들에 의해 수도원으로 보내져 교육받았고, 성장한 뒤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자가 되었으며, 19세에 부제품을, 30세에 사제품을 받았다. 성인은 학문 연구를 위해 잠시 다른 지역들에서 체류하거나 로마를 방문한 것을 제외하고는 생애 대부분을 영국의 수도원에서 지내며 성경 연구, 저술 활동, 그리고 교육에 전념했다.

 

평생을 수도원에서 지냈으면서도, 성인은 생전에 이미 유럽 전역(당시로서는 전 세계)에 알려진 유명 인사자 당대 최고의 박학한 사람으로 존경받았다. 성인은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살았지만 라틴어를 익혀서 성경을 주석하며 그 영성적 의미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과 거기에 담긴 의미들을 라틴어를 모르는 평신도들도 큰 어려움 없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선대 교부들의 훌륭한 가르침을 인용해 가며 성경을 풀이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인 성경 주해서들은 유럽 일대에서 가장 권위 있고 중요한 저서로 인정되었다.

 

그뿐 아니라, 성인은 교회의 전례와 의식에서 쓰이는 찬미가들과 시들도 썼고, 서한집, 강론집, 순교록, 전기 등 다양한 저서들을 남겼다. 또한 교황청의 규정을 따르지 않고 부활 대축일을 독자적으로 다른 시기에 지내던 켈트족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같은 시기에 기념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자 서방 교회의 전통에 따른 부활절 날짜 계산 방식을 다룬 저서도 출간했다. 

 

나아가 다섯 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영국 교회사」를 썼는데, 이는 교회의 역사서로서뿐 아니라 일반 역사서로서도 영국 최초의 저술이었다. 이 책은 영국은 물론이고 유럽 전역에까지 알려지고 읽히며 성인에게 ‘영국 역사의 아버지’라는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말년에는 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요한 복음서를 영어로 번역해서 라틴어를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성인은 교회 영역의 저술 외에 세속의 일반 학문에도 관심과 조예가 크고 깊어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많은 책을 라틴어로, 그리고 영어로 집필했다. 음악과 운율학, 자연 과학에 관한 책도, 문법과 작시법, 역사 기록학, 연대기에 관한 책도 썼다. 이렇듯 다양한 부문에 걸친 저작물들은 성인이 당대의 지식을 두루 섭렵했음을 보여준다.

 

성인은 735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생을 기도하고 노동하며 단순하게 살고자 노력한 수도자였다. 8살 무렵부터 오로지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평생을 연구와 저술에 투신한 생애였다. 그럼에도 뛰어난 학문적 업적은 성인의 명성을 좁은 삶의 영역인 수도원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했다. 그리고 교회와 세상은 성인의 크고 높은 지혜와 학문을 인정하여 이름 뒤에 ‘존자(尊者, the venerable)’라는 경칭(敬稱)을 붙여서 일컫기에 이르렀다. 이 호칭은 853년 아헨 교회 회의에서 공식으로 인정되었다. 그리고 1899년에는 레오 13세 교황에 의해 교회 학자로 선언되었다. 그러했기에 성인의 이름이 중세기에는 서방 교회의 4대 교부인 성 암브로시오, 성 예로니모, 성 아우구스티노, 성 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과 세비야의 성 이시도로 다음으로 많이 인용되었고, 단테의 「신곡」 ‘천국’ 편에 영국인으로 유일하게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성 베다 존자는 영국의 작가와 역사가, 성인의 주된 거처이던 영국 타인 위어주의 재로우시, 성인의 이름을 딴 대학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다. 그리고 교회 미술에서는 성인을 평생에 걸쳐 점철된 연구와 저술 활동을 나타내는 책(구체적으로는 ‘영국 교회사’) 또는 깃털 펜을 손에 든 수도승으로 묘사한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6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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